‘10년 주기’ 반도체 시장 반등 가시화…“특정 제품 아닌 AI 개념이 성장 주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AI 기술에 대한 수요 폭증에 힘입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는 2023년 11월 전 세계 반도체 산업 매출액이 48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2년 11월의 456억 달러 대비 5.3% 증가했고 2023년 10월의 460억 달러에 비해 2.9% 늘었다. SIA 회장 존 네퍼는 "11월에 전년 동기 대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이 2022년 8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반도체 시장이 계속해서 더 견조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두 자릿수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만 반도체 제조 기업 TSMC의 4분기 매출이 예상치를 뛰어넘었고, 그 전에는 SEMI가 "2024년에는 시장 성장이 다시 시작되고 2025년에는 반도체 장비 시장이 사상 최고치인 1,2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IDC를 포함한 다른 시장조사 기관도 반도체 시장 전망을 수정해 올해 시장이 회복되고 성장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의 수요 동력이 과거와 다른 이유 

이런 반도체 시장 회복에는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주요 업체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추진력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와 AMD 모두 데스크톱 컴퓨터를 위한 새로운 AI 칩을 발표했다. 인텔도 이 분야를 전략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용 AI 칩을 출시했다. TSMC의 실적 개선을 견인한 요소 역시 AI에 대한 강력한 수요다. 

현재 시장 동력이 과거와 비교해 차이가 분명하다. 분석가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이 10년 주기로 특정 제품이 산업을 주도하는 형태를 취해왔다. 그 제품은 노트북이었다가 이후 스마트폰으로 넘어왔고 그 사이사이 게임, 그래픽 칩도 있었다. 반면 현재 상황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변화를 견인하는 AI는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일종의 개념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차별화된다.

독립 시장 분석가인 아룬 맴파지는 "지금의 트렌드는 AI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전 트렌드와의 차이다. 이전의 동력은 스마트폰, 게임 칩 등 제품 기반이지만 AI는 개념 기반이다. 개념이 반도체 수요를 촉진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AI 기반 자동차부터 차세대 스마트폰 AI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떻게 전개되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단, AI가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에 대한 우려도 있다. 맴파지는 "AI는 시장을 견인하는 주된 동력이다. 제품이 아닌 개념 기반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트렌드와 다르다. 수그러들지 계속 성장할지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테크인사이트(TechInsights)의 반도체 분석가인 매니시 라왓은 칩 제조사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려면 AI 워크로드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 개발과 칩 최적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실시간 처리 요구가 커져 엣지 컴퓨팅으로 전환하면서 엣지 기기를 위한 전력 효율적 CPU 개발에 관심을 갖는 제조사가 많다.

라왓은 "AI 애플리케이션에는 맞춤 솔루션이 필수적이고, AI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며, 스타트업과 교육 기관 간의 협업이 혁신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AI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하드웨어 기반 암호화와 같은 보안 수단을 구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AI가 주도하는 미래의 장기적인 발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글로벌 공급망 관리, 그리고 윤리적 측면을 반영하는 규정 준수가 필수적이다. 반도체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절한 포지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능성과 어려움을 잘 조율해야 한다. 
 

어려움과 기회가 공존 

AI 애플리케이션에는 GPU, TPU와 같은 특수한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이는 반도체 제조업체가 연구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맞춤형 칩을 설계하고 제조하려면 AI 알고리즘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는 AI 섹터의 빠른 확장과 AI 모델 및 알고리즘의 발전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라왓은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유연한 제조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정학적 긴장과 세계적인 여러 사건으로 인해 반도체 섹터에서 공급망 중단이 일어날 수 있다. AI와 관련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공급망 안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중단 가능성을 줄이고 회복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업체를 다변화하고 필요한 원자재 수급 방안을 확보하고 백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기업이 적절한 인력을 채용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AI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첨단 반도체 기술 전문 인력의 부족은 혁신과 제품 개발을 지연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반도체 기업에는 AI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많은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AI 산업에 집중함으로써 더 큰 시장에서 수익과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라왓은 "AI 업체와 협력하고 동맹을 구축하면 제품을 강화하고 혁신을 가속화하고 시장 수요에 더 충실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제품을 확장해 AI 산업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응하면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고 고객 기반을 더 넓힐 수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 양자 컴퓨팅과 같은 최첨단 기술에 투자해서 경쟁 우위를 얻고 AI 혁신의 선두에 설 수 있다. AI 개발과 반도체 설계에서 선두를 유지하려면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 제품 확대, 공급망 회복탄력성 강화,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과 발전 상황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시장 지배 계속된다

최근 반도체 제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가 계속해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SIA에 따르면 지역별 연간 매출은 중국에서 7.6%, 그 외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7.1% 증가했고 유럽과 미주 지역은 각각 5.6%, 3.5% 늘었다. SEMI는 중국, 대만, 한국이 2025년까지 장비 투자 규모에서 상위 3개국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장비 투자 급증세가 이어짐에 따라 이 기간 동안 중국이 선두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맴파지는 최근 미국 내 제조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단기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삼성, TSMC, 인텔의 노력에 따라 매출 기준으로 미국 내 제조 비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이 세 기업은 선단 공정(advanced node)에 집중하므로 아마 이익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제조 영역에서 재도약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 성장 중에서 전적으로 미국 기업에 의한 성장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