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ㆍAR

[ITWorld 넘버스] AR/VR 세상에서 일한다는 것

박상훈 | ITWorld 2023.09.15
구글은 망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길을 잃었다. 메⁠타는 꾸역꾸역 전진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 사명까지 바꾸는 승부수에도, 폭발적인 확산은 없었다. AR/VR, 메타버스, 공감 컴퓨팅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이야기다. 구글은 2012년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로 이 시장을 개척했지만, 올해 초 공식 단종시키고 소프트웨어로 방향을 틀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부터 홀로렌즈(HoloLens)를 개발했는데, 현재는 팀리더가 회사를 떠나고 개발조직이 공중분해되는 등 개점 휴업 상태다. 메타는 2019년부터 퀘스트(Quest)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활용성에서 여전히 의문 부호다. 이 사업의 누적 적자는 40조 원이 넘고,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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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벌 IT 기업의 무덤'에 애플이 뛰어들었다. 지난 6월 AR 신제품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12개 카메라와 5개 센서, 6개 마이크 그리고 M2 프로세서가 사용된 이 '머리에 쓰는' 제품에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2개가 들어가 있다. 4K 해상도 영상을 보여주고 텍스트는 어느 각도에서나 선명하다. 입력 시스템은 눈과 손, 음성이다. 원하는 앱을 바라보면 기기가 앱 아이콘을 강조하고 손가락을 꼬집어 실행한다. 화면을 키우거나 스크롤하는 것도 손가락으로 할 수 있다. 초기 리뷰어는 매끄럽고 자연스럽다며 합격점을 줬는데, 이런 마술 같은 경험을 누리려면 (최소) 3,499달러, 우리 돈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가장 범용적인 AR/VR 기기의 등장

애플이 이 AR/VR 무덤에서 살아남을지 알 수 없지만, 비전 프로의 시장 전략이 기존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현재 AR/VR 제품은, 주로 게임, 영상을 즐기는 저렴한 엔터테인먼트 기기와 의료, 제조 현장에서 업무에 쓰이는 초고가 기업용 기기로 양분돼 있다. 비전 프로는 가격만 보면 후자에 가깝지만, 활용 측면에서는 전자처럼 범용적인 기기를 지향한다. 실제로 비전 프로를 이용하면 맥의 화면을 그대로 AR/VR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 4K 모니터 여러 대를 허공에 띄워 놓고 모든 맥용 앱과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다. 더구나, 애플 실리콘 맥에서는 iOS 앱을 실행할 수 있다. 사실상 애플 생태계 속 모든 앱과 콘텐츠를 비전 프로에서 즐길 수 있다.

기존에도 PC 화면을 AR/VR 공간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있었다. 스페이스톱 같은 기기가 대표적이다. 화면 대신 글래스가 달린 노트북인데, 글래스를 쓰면 100인치 크기 가상 화면이 눈앞에 나타난다. 리뷰를 보면, 시야각과 화면 선명도 측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는 물론 메타 퀘스트 프로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용 운영체제라는 한계가 있고, 브라우저와 워드에서 텍스트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비전 프로가 주목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가격으로는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거의!) 없겠지만, '증강현실 PC(AR PC)' 혹은 공간 컴퓨팅 개념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지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아태지역은 AR/VR '기회의 땅'

그렇다면, AR/VR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실제로 어떨까? 일단 AR, VR, 혼합현실(MR), 메타버스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조사결과를 보면, 많은 기업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팀뷰어의 '산업용 메타버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1/4이 산업용 메타버스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있고, 1/5은 생산 로봇 도입만큼 파괴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5월에 나온 '메타버스의 경제적 잠재력' 보고서를 보면, 메타버스 기술은 2035년까지 매년 3.6조 달러 GDP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단, 이 보고서는 메타버스에 회사 운명을 건 이해당사자인 메타가 돈을 내 만들었다). 이중 아태지역이 1.4조 달러로 가장 많다.

AR/VR의 가장 유망한 활용 업무가 몰입형 분석이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할 때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헤드셋, 디스플레이 같은 하드웨어와 솔루션, 서비스를 포괄한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의 '전 세계 몰입형 분석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장은 2028년까지 연간 51.7%씩 성장해 67억 달러 규모가 될 전망이다. 산업별로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가, 시장 점유율에서는 의료 부문이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 역시 아태 지역의 성장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밀도가 높고, 1인당 소득이 증가하고 있으며, 대규모 산업화로 도시화 지역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보고서를 보면 현재 기업이 AR/VR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코카콜라의 창고 노동자는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한 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스마트 글래스가 상품을 다루는 데 필요한 정보를 보여주고, 음성 제어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와 자동화된 QR 코드 스캔으로 필요한 상품을 찾을 수 있다. 독일철도(Deutsche Bahn)는 교육 센터에서 이 기술을 사용한다. 교육 참가자는 가상 신호기를 보면서 이를 운영, 수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더 적은 강사가 더 많은 교육생을 가르칠 수 있고, 경력자의 노하우도 빠르고 쉽게 전사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두 기업 모두 실제 외부 환경에 가상 객체를 투사하는 MR 방식을 도입했다.
 

AR/VR 기기 쓰고 주 40시간 일해 보니

여기까지가 AR/VR 업계가 환영할 내용이라면 이 기술을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기업과 사용자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한 숫자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코버드대학 등이 메타 퀘스트 2 헤드셋을 착용하고 주 40시간 일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게임이나 영상 이외에 AR/VR로 업무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검증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부정적이었다. VR 환경은 물리적 디스플레이 한계를 넘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업무량이 35% 늘어났고 안구 피로가 48% 증가했으며 삶의 질이 20% 떨어졌다. 참가자 11%는 종일 VR 기기를 착용하는 데 실패했고, 일부는 실험 첫날 연구소를 뛰쳐 나갔다.

AR/VR을 둘러싸고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직원 감시다. 익스프레스VPN이 조사한 결과, 노동자 63%가 "메타버스에서 고용주가 자신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을 우려"했다. 사실 고용주 73%는 이미 직원을 감시하고 있다. 메타버스까지 도입하면, 노동자들은 실시간 위치, 실시간 화면 모니터링 등 감시가 강화될까 두려워했다. 노사 관계가 아니어도 메타버스는 프라이버시 사각지대다.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리듬 VR 게임 '비트 세이버' 플레이 영상을 분석했는데, 100초 분량 동영상 만으로 94% 정확도로 게이머를 구별해 냈다. 머리와 손 움직임 같은 모션 데이터는 지문, 얼굴에 버금가는 고유 식별자인 셈이다.
 

스마트폰의 기시감

애플 비전 프로를 통해 AR/VR에서 일하는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왔다. 그러나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일상과 업무 대부분을 AR/VR로 옮긴다는 것은 과대망상에 가깝다. 성능과 착용감 같은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프라이버시라는 근본적인 경계심까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CCS 인사이트의 레오 게비는 "한때 노동자는 퇴근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내장된 데다 근무 시간 이후 업무에 연결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이제는 24시간 스마트폰을 쓴다. AR/VR도 비슷할 것이다. 처음엔 거부감이 있겠지만 점차 경계심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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