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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칩스법’을 가로막는 장애물, 그리고 청사진

Lucas Mearian | Computerworld 2023.04.10
지난 2년 동안 이어진 마이크로칩 부족 사태로 미국의 외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드러났고 그 결과 칩스법(CHIPS ACT)까지 등장했다. 칩스법은 미국에 새로운 설비 공장을 짓는 칩 제조업체에 수백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MIT 공학부 교수이자 운송 및 물류 센터 책임자인 요시 셰피는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미 잘 구축된 제조 공급망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꺼려지는 대단히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셰피는 칩 제조에 있어 다른 국가, 특히 중국과 대만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는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칩스법의 목표는 수긍이 되지만, 공급망 관점에서 이 법이 기업을 움직여 제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도록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진단했다.
 
ⓒ GlobalFoundaries

최근 ‘매직 컨베이어 벨트: 공급망, A.I.와 일의 미래(Magic Conveyor Belt: Supply Chains, A.I., and the Future of Work)’라는 책을 펴낸 셰피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미국 외 지역에 엄청나게 투자해왔다는 점, 그리고 미국으로 제조 기반을 다시 옮기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셰피는 “전체를 미국으로 옮기면 모든 달걀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게 되므로 일부 위험이 더욱 커진다. 다른 국가, 특히 적대적 국가에 대한 의존 위험은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의 복귀와 우호국 위탁을 조합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칩 공급량의 37%를 생산했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컴퓨터 칩의 비중은 약 12%에 불과하다.

2021년 전 세계를 강타한 공급망 위기를 계기로 미국 내의 빈약한 칩 생산량이 드러나면서 미국으로 제조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싣자 인텔, 삼성, 마이크론, TSMC와 같은 기업은 미국에 새로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퀄컴 역시 글로벌바운드리와 함께 42억 달러를 투자해 뉴욕 몰타 설비의 칩 생산을 2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애리조나 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의 오코틸로 캠퍼스의 면적은 약 283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인텔은 2021년 이 캠퍼스에 팹 52와 팹 62, 두 개의 새로운 제조 설비를 짓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 Intel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일명 칩스법에 서명했다. 칩스법에 따라 반도체 연구, 개발 및 제조 분야에서 미국의 입지를 “되살리기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에 투자할 527억 달러의 예산이 미 상무부에 배정됐고 지난 2월에 총 390억 달러의 1차 인센티브가 편성됐다.

기본적으로 칩스법의 취지는 한국, 대만, 중국과 같은 국가와의 비용 차이를 좁혀 미국에서 생산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비율을 늘리자는 것이다. 세 국가의 정부는 반도체 제조업체에 이미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반도체 5대 생산국인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미국은 모두 기술의 최대 소비국이기도 하다(중국은 주로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보다는 성숙한 단계의 칩 기술을 제조한다).

마이크로칩은 산업용 장비부터 데이터센터와 자동차, 스마트폰, 게임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매출이 가장 크게 일어날 분야는 서버, 데이터센터, 데이터 스토리지이며, 그 외에 스마트폰, 산업용 전자장비, 자동차 산업, PC 등이 있다.
 
ⓒ Foundry

셰피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최종 제조 단계만이 아니라 원자재 수급처, 전문 공급업체, 주요 장비 제조사 등 공급망 전체를 옮겨야 한다는 점”이라며, “어느 상품이든 경쟁력 있는 품질과 가격으로 대규모로 제조하기 위해서는 전체 생태계, 즉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클러스터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옮기는 일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막중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장애물, 숙련된 인력의 부족

또 다른 문제는 새 설비를 구축하고 해외 설비와 경쟁하기 위한 미국 내 공급망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다. 또한 팹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인력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셰피는 이민법을 개정해 다른 나라의 숙련된 인력이 미국에서 더 쉽게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는 내부적 해결책이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유동적 인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꺼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트너 연구 부문 부사장 밥 존슨은 “칩스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조항은 연구개발 및 인력 육성에 132억 달러, 국제 정보 통신 기술 보안 및 반도체 공급망 활동에 5억 달러 지원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인력 교육 및 육성에 상당한 자금이 투입된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사는 학생이 이 분야로 진출하도록 장려해왔다. 존슨은 “인텔은 2년 전부터 포틀랜드와 애리조나의 지역 전문대학에서 관련된 활동을 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론과 뉴욕주는 마이크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신규 반도체 제조 설비를 구축하고, 그 기간 동안 소외 계층에 초점을 둔 지역사회 및 인력 개발에 5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이 뉴욕주 오논다가 카운티에 건설할 예정인 팹 설비 조감도. 미식축구장 40개 크기의 설비로, 약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 Micron Technologies 

칩스법에서 중요하지만 간과되는 경우가 많은 또 하나의 조항은 미국 팹 파운드리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소규모 원자력 발전소 연구 지원금으로 10억 달러가 책정됐다는 점이다.

칩스법에는 수십억 달러의 인센티브가 책정돼 있지만,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는 미국에서 차세대 칩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앞으로 10년에 걸쳐 1,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인텔이 애리조나에 짓는 두 개의 신규 설비에만 약 300억 달러가 소요된다.

일반적인 첨단 마이크로칩 제조 설비를 짓는 데는 약 150억 달러가 들어간다. 현재 건조 중인 최첨단 항공모함인 제럴드 R. 포드의 건조 비용 133억 달러보다도 큰 금액이다.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4년이다. 반면 존슨은 인텔, 삼성과 같은 제조업체는 맨땅에서 시작해 약 2년이면 팹 설비를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칩스법은 효과가 있을까?

그렇다면 칩스법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미국에 새 설비를 건축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존슨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텔, TSMC, 삼성,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신규 반도체 공장 발표는 모두 칩스법이 통과되기 전에 나왔다. 유일한 예외는 마이크론으로, 이 회사는 10월에 뉴욕에 팹 설비를 짓는 데 2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마이크론은 향후 20년 동안 이 설비를 확장하는 데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지난 9월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위치한 본사 근처에서 메모리 제조 설비 공사에 착공했다. 이는 마이크론이 미국에서 20년 만에 처음 짓는 메모리 제조 공장이다.
 
ⓒ GlobalFoundaries

존슨은 칩스법에 포함된 내용과 같은 미국 반도체 칩 제조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와 투자는 오랜 기간 반도체 산업의 일부분이었다면서 “많은 정치인이 첨단 반도체 제조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겠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미 한참 전부터 그래왔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업체 입장에서 정부의 금전적 지원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지정학적인 변화다. 대만은 모든 전자제품 공급망을 틀어막을 수 있는 목지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홈 컴퓨터, 데이터 센터를 불문하고 모든 전자 부품에는 대만을 통과하는 핵심 구성요소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존슨은 “대만 해협 건너편에는 중국이라는 초거대 국가가 ‘대만은 우리 것이다.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직접 빼앗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TSMC 팹이 파괴되면 반도체 업계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이 2012년 주석에 오르기 전까지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 비교적 건강한 무역 관계를 유지했지만 시진핑이 주석에 오른 다음부터 갈등이 증폭됐다.

존슨은 “시진핑이 집권하기 전에는 무역 관계가 좋았고, 중국을 성숙한 파트너로 대하면 중국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판단으로 드러났다”면서 “그래서 전체 공급망을 미국으로 가져오자는 것이지만 아마 현실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은 “그러나 최대한 중국에서 벗어나 다변화할 방법은 찾아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을 떠난 적이 없다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회사는 인텔, 삼성,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3개 회사다. 존슨은 그러나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를 위한 장비와 노하우를 포함한 첨단 마이크로칩 기술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과 유럽, 일본이 지배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인텔, 엔비디아, 퀄컴이 첨단 칩 레이아웃과 아키텍처를 주도한다.
 
뉴욕주 몰타의 글로벌파운드리 본사 전경. 이 회사는 올해 미국 칩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42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GlobalFoundaries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칩 위탁 제조업체지만, 그 기반은 결국 다른 기업들의 기술을 위한 파운드리다. 즉,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 및 테스트하는 것은 인텔, 퀄컴, 엔비디아, AMD와 같은 기업이고 TSMC는 이들이 그 이후 제조를 맡기는 업체다. 존슨은 “인텔은 칩을 내세우고 TSMC는 제조를 내세운다. 제조가 TSMC의 먹거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존슨에 따르면, 미국은 마이크로칩 연구와 설계 분야에서 항상 세계를 선도해왔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인텔은 오리건주의 최대 고용 기업으로, 이곳에서 마이크로칩 공정을 개발하고 테스트를 위해 소량 생산한 다음 제조는 해외로 보낸다. 인텔은 작년에 30억 달러를 들여 오리건주 힐스버러의 글로벌 기술 개발 제조 설비를 확장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신규 공장 건립을 장려하고 있지만 연구 및 설계 시설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시설은 애초에 미국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텔은 2022년 9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인근에 8개의 칩 공장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반도체 ‘메가 사이트’를 착공했다. 인텔은 새 메가 사이트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서 생산량을 늘려 새로운 반도체 기술에 대한 수요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 아이폰 프로세서의 95%를 생산하는 TSMC는 작년 말 2024년부터 N4 공정 기술을 생산할 예정인 애리조나주의 첫 팹에 이어, 2026년부터 3nm 공정 기술을 생산하기 위한 두 번째 팹 건설에도 착공했다고 발표했다. TMSC가 두 개의 신규 공장에 투자하는 금액은 약 400억 달러로, 이는 애리조나주 역사상 가장 큰 해외 직접 투자이며, 미국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투자 중 하나다.

애리조나주의 두 TSMC 팹은 4,500개의 TSMC 직접 고용 일자리를 포함해 약 1만 개의 첨단 기술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공장은 완공 시 매년 60만 개 이상의 웨이퍼를 생산하게 되는데, 여기서 추산되는 최종 제품 가치는 400억 달러 이상이다.

존슨은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을 떠난 적이 없다. 뉴욕주 몰타의 글로벌파운드리 설비나 애리조나, 뉴멕시코, 오리건주의 인텔 팹, 유타주의 마이크론, 텍사스의 삼성과 TI 등을 둘러보고 나서도 미국에서 제조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은 “전체를 다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보안 문제다. 불안정한 세계 정세에서 핵심 자산의 일부를 미국에 둔다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 있는 생각이다. 리더십은 양이 아니라 누가 기술을 지배하느냐로 결정된다. 누가 기술을 지배하는가? 주요 칩 기업은 모두 미국 기업”이라고 말했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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