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ITWorld 넘버스] 왓 디벨로퍼 원트

박상훈 | ITWorld 2024.01.25
앤디 위어의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지구인 주인공이 오각형 몸통에 발이 5개 달린 외계인을 만나 의사소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파형 분석기를 이용해 한 음절씩 우리말 발음과 외계어 발음의 대응표를 만든 후 오랜 시간 공들여 같은 의미의 다른 두 언어 리스트를 하나씩 늘려 나간다. 시제와 단수, 복수, 조건문 등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언어 비교표와 컴퓨터의 음성 인식 기능을 이용해 자동 번역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렇게 만든 번역기는 조악하다. 별의 이름 같은 고유명사는 제대로 발음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소통도 지구인과 외계인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의기투합하기엔 충분하다.
 
ⓒ ITWorld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개발자 역시 소통이 쉽지 않은 직군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자에 대한 수많은 (과장된) 인터넷 을 보면, 파형 분석기 달린 번역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개발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개발자 설문 조사를 보면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 툴, 임금 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정 언어나 툴, 제품을 더 팔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정작 개발자 자체에 초점을 맞춘 설문은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조사 말미에 재미로 끼워 넣은 몇몇 자투리 설문을 모으면 개발자의 하루를 재구성할 수 있다.
 

후드티 입고 재즈 들으며 일한다

일단 출근 전 옷장부터 열어보자. 흔히 개발자라고 하면 후드티와 체크 남방을 떠올린다. 개발자 교육, 채용 사이트 그렙의 <프로그래머스 데브 서베이 2022>에 따르면, 이런 연상은 편견이 아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검은색 후드티, 회색 후드티가 '각각' 있다고 답했다. 체크 셔츠를 꼽은 응답도 3명 중 1명꼴이었다. 후드티의 장점은 무엇보다 '전천후성'이다. 일하다가 잠시 커피 사러 갈 때 어느 정도 비, 눈은 모자만 휙~ 덮어쓰고 뛰어 가면 된다. 앞주머니가 넉넉해 돌발 상황에서 (모양은 좀 빠지지만) 이것저것 욱여넣고 움직일 수 있다. 더 모양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면, 후드를 뒤집어쓰고 끈을 확! 당겨보자. 순식간에 나만의 간이 동굴이 만들어진다.

그렙의 조사에서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후드티와 체크 남방의 경쟁(?)이 후드티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거의 2배 차이가 난다. 그렙은 이 조사를 매년 하고 있는데, 2021년에는 '나 또는 주변 개발자가 자주 입는 옷을 한 가지만 고른다면?'이라는 질문이 있었다. 설문 결과 후드티가 50.0%, 체크 남방이 8.1%였다. 결국 후드티는 개발자가 색깔 별로 많이 갖고 있으면서 자주 입기까지 하는 옷인 셈이다. 단, 익숙한 후드티라고 코디마저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후드티는 입었을 때 너무 왜소해 보이거나 체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부끄럽다. 이때야말로 전문가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영상을 참고하자.

맵시 있게 후드티를 입고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커피 한잔을 내려 손에 들고 노동요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이번엔 그렙의 2023년 조사 결과를 보자. '개발할 때 들으면 효율성이 수직 상승하는 노동요의 장르를 알려주세요' 질문에 재즈가 16.2%로 1위였다. 케이팝(11.3%), 팝(9.4%), 힙합(9.1%)이 뒤를 이었다. 장르별로 큰 차이 없이 고르게 나뉘었고, '보기에 없다'는 응답도 11.0%였다. 재밌는 것은 연차별로 음악 취향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개발자의 노동요는 경력이 늘어남에 따라 재즈에서 락/메탈/일렉트로닉으로, 다시 락/메탈/일렉트로닉에서 클래식, 발라드로 바뀌었다. 15년 차 이상 개발자는 5명 중 1명이 최고의 노동요로 클래식을 꼽았다.
 

퇴근 후에도 취미로 코딩

회사에서 독방을 쓰는 임원이라고 해도 일하면서 노래를 틀어 놓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적당히, 눈치껏 이어폰으로 나만의 노동요를 즐겨야 한다. '근무 중 에어팟'을 둘러싼 정서적인 찬반은 논외로 하고, 혹시 노동요가 업무 집중력과 생산성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드롭박스의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아서 : 팬데믹 이후의 생산성> 조사 결과를 보면, 개발자와 같은 지식 노동자의 집중력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135조 원이 왔다갔다 하는 '값비싼' 사안이다. 2021년 이화여대 논문에 따르면, 놀랍게도 음악은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드롭박스 조사 결과를 보면, 업무 중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오히려 비생산적인 회의와 메시지다.

후드티 입고 재즈를 들으며 코드의 세계를 탐험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개발자는 어느 순간 커리어의 중대기로에 서게 된다. 한쪽이 계속해서 프로그래밍 실무자로 전문성을 키워가는 길이라면, 다른 쪽엔 실무를 줄이고 관리 업무로 경력을 발전시키는 길이 있다. IT 채용 플랫폼 코더패드의 <2024 IT 채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자의 36.4%는 이런 관리직에 관심이 없다. 현실적으로 후자 쪽에 성공의 기회가 더 열려 있음에도 전자를 택한 이들이다. 다행히 기업 내에 경력 많은 개발 실무자의 공간이 좁지는 않다. 응답자 3명 중 2명은 관리직이 아닌 직급으로 승진할 기회가 있다고 했다. 단, 이는 해외 조사다. 국내 상황은 다를 수 있다.
 
하루 종일 코드와 씨름한 개발자는 업무 시간이 끝나고 무엇을 할까? 스택 오버플로우의 <2023 개발자 서베이>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또(!) 코딩을 한다. 흥미로운 전개는 지금부터다. 그 이유를 물으니 70.4%가 '취미로'라고 답했고 '전문 개발 혹은 온라인 학습'이라는 응답이 36.5%였다. 퇴근 후 취미로 코딩하는 모습은 개발자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구인 구직 사이트 원티드에 따르면, 퇴근 후 코딩은 "일도 쉼도 아닌 시간을 보내는 것"이거나 "미래를 위한 의식적인 학습"이다. "착한 개발자 컴플렉스"라는 해석도 있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개발자에게 코딩은 '징글징글한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 어디쯤이다.
 

왓 디벨로퍼 원트는 없다

영화 <왓 위민 원트>에는 감전 사고 후 여성의 생각이 들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전형적인 마초였지만, 여성의 마음 속 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남녀 역할을 바꾼 후속작 <왓 맨 원트>도 나왔다. 당연히 현실에서 <왓 디벨로퍼 원트> 같은 것은 없다. 개발자에 대한 여러 자료를 봐도 '후드티를 즐기는 직장인' 이상의 특이점이 없다. 어쩌면 유머로 소비하는 개발자 의 편견에서 벗어났을 때 개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업 관리자가 '직장인' 개발자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특별한 게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밝혀낸 팁이 있다면, 행복한 직원의 생산성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13% 더 높다. 


세상의 모든 IT 리서치 자료, '넘버스'

여기서 소개한 모든 자료는 넘버스(Numbers) 서비스에 등록돼 있다. 넘버스는 IT 전문 미디어 ITWorld가 제공하는 IT 리서치 자료 메타 검색 서비스다. IDC, 가트너, 포레스터 등 주요 시장조사 업체의 자료는 물론 국내외 정부와 IT 기업, 민간 연구소 등이 발표한 기술 관련 최신 자료를 총망라했다. 2024년 1월 현재 1,400여 건의 자료가 등록돼 있으며, 매달 50여 건이 새롭게 올라온다. 등록된 자료는 출처와 토픽, 키워드 등을 기준으로 검색할 수 있고, 관련 기사를 통해 해당 자료의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 자료의 원문 제목과 내용을 볼 수 있는 링크, 자료를 발행한 주체와 발행 일자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ditor@itworld.co.kr
Sponsored

회사명 : 한국IDG | 제호: ITWorld |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3, 4층 우)04512
| 등록번호 : 서울 아00743 등록발행일자 : 2009년 01월 19일

발행인 : 박형미 | 편집인 : 박재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정규
| 사업자 등록번호 : 214-87-22467 Tel : 02-558-6950

Copyright © 2024 International Dat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