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이버펑크 2077 팬텀 리버티 리뷰 : 사랑하거나 혹은 이해하거나

허은애 기자 | ITWorld 2023.10.05
사이버펑크 2077를 만든 CD 프로젝트 레드는 현재 가장 복잡하고 심층적인 RPG 세계를 만들어내는 개발사다. 전작 더 위쳐 3도 수많은 사이드 퀘스트와 여러 인물 간 다면적 관계,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분기가 갈리는 멀티 엔딩으로 유명하다. 

지난 9월 26일 출시된 사이버펑크 2077의 대규모 DLC '팬텀 리버티' 역시 개발사의 장기가 유감 없이 발휘된 게임이다. 인물 간 대화와 선택지, 처한 상황을 살피고 여기 저기에 널려 있는 데이터(샤드) 형태의 문서를 읽으면서 플레이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에 점점 몰입하게 된다.

엔딩을 본 후에도 자연스럽게 '재정주행'하기 위해 세이브를 불러온다. "만일 그때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결말이 달랐을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은 다회차 플레이뿐이다.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주인공은 머리 속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뇌관이 든 채로 고군분투하는 나이트시티 최고의 용병 V다. 본편 메인 스토리가 90% 진행된, 엔딩과 마지막 퀘스트 직전 시점에 V는 알 수 없는 인물에게서 도움 요청을 받는다. 나이트 시티 남쪽 애니멀과 부두보이즈가 세력다툼을 벌이는 지역인 패시피카 너머 군벌이 장악하고 있는 '도그타운'에 가서 NUSA의 대통령을 구출해달라는 요청이다.

요청을 보낸 사람은 한국인 넷러너인 송버드다. 그러나 해킹 과정에서 위험을 무릅쓴 송버드와 연결이 끊기고, V는 전직 FIA 요원인 솔로몬 리드와 협력하면서 대통령을 구출하고 송버드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애쓴다.

송버드가 "머릿속 시한폭탄을 제거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송버드가 살아야 V도 산다. CD 프로젝트는 한국 지사와의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국인 넷러너 송버드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처음이자 마지막 대규모 확장팩인 '팬텀 리버티'의 주무대는 도그타운이다. 출시 전 미디어 사전 플레이에서 먼저 경험한 도그타운은 곳곳에서 형광색 포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DLC를 설치하고 플레이하자 바로 두어 달 전의 첫인상이 흐려졌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파란 하늘 아래 고장난 대관람차, 폐허가 된 거대 쇼핑몰 등 어딘가 나른한 패시피카와 닮았다. 그러나 제대로 포장된 도로나 멀쩡한 주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군사기업의 착취가 심하고, 곳곳에서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이 짙게 배어 나와 나이트시티 내의 천민부락처럼 느껴졌다.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맵 자체는 작지만, 2차례의 더 위쳐 3 DLC에서 본편 못지 않게 플레이타임을 꽉 채워 높은 평가를 받았던 CD 프로젝트 레드는 여전히 같은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 도그타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수수께끼의 픽서 '미스터핸즈'가 주는 일반 사이드 퀘스트, 새로운 타로 카드 그래피티 찾기, 산토 도밍고 지역 픽서인 엘 카피탄이 수주하는 자동차 절도 퀘스트 등 주요 줄거리 외에도 할 일이 한가득이다.

본편처럼 역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사이드 퀘스트가 많았다. 청부살인이나 복수, 데이터 탈취 등 거의 불법 행위인 퀘스트 수행 과정에서 표적의 PC나 샤드를 훔쳐보면 더 많은 정보를 엮을 수 있다.

일례로 적대세력을 피해 여행사에 일정이 가장 빠른 여행 상품을 문의하는 이메일을 읽어 보면, 여행사가 표적에게 빠른 답변을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 업그레이드와 일반 이코노미 상담을 안내한다. 프리미엄 업그레이드를 거절한 표적은 무려 8810번이라는 대기번호를 받는다. 여러 번 이메일을 되풀이해 읽었지만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모자, 고글 등 게임 의상에 있었던 속성은 거의 삭제되거나 재배정됐다. 특성과 특전이 달라지고 '렐릭'이라는 새 특전 트리가 생겨서 포인트를 새로 입력해야 한다.

주요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플레이어는 등장인물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도 극초반의 낯선 이질감을 약간만 인내하면, 등장하는 모든 NPC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해하게 된다.

퀘스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심지어는 도그타운을 장악한 핸슨 대령의 행동까지도 어느 정도는 납득하게 됐다.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 CD Projekt Red

멀티 엔딩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최소한 3가지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 분기점마다 세이브하면서 최대한 많이 경험할 계획을 세웠는데도, 대화 선택지를 앞에 두고는 누구를 선택하고 어떤 결정을 지지할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고민해야 했다. 각 인물의 주장과 근거가 너무나 설득력 있어서 이미 모두의 입장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잡하고, 결정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모든 것은 다면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면 게임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음악과 장면 전환, 연출도 본편 못지 않게 아름답다. 특히 엔딩으로 치닫는 몇몇 퀘스트에서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반하는 줄거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면 연출 등은 장편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비교해서도 장르적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감동을 전달했다.

이미 다른 DLC는 없다는 발표가 있었으므로 V와 조니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팬텀 리버티'에서 일단락되지만, 독창적인 이야기와 세계를 만들고 풍부하게 가꾸는 방법을 잘 아는 CD 프로젝트 레드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erin.hur@foundryco.com
Sponsored

회사명 : 한국IDG | 제호: ITWorld |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3, 4층 우)04512
| 등록번호 : 서울 아00743 등록발행일자 : 2009년 01월 19일

발행인 : 박형미 | 편집인 : 박재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정규
| 사업자 등록번호 : 214-87-22467 Tel : 02-558-6950

Copyright © 2024 International Dat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