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ㆍAR / 디지털 디바이스 / 미래기술

블로그 | 비전 프로 키노트에 숨겨진 애플의 소리 없는 아우성

David Price | Macworld 2023.06.13
최근 애플이 WWDC 2023에서 발표한 MR(Mixed Reality)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는 미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 그리고 기기가 보여주는 동영상의 높은 생산성 가치까지 많은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가장 최고의 성과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던 발표자들의 노력이었다.
 
ⓒ Apple

언제나처럼 애플은 MR 시장을 처음 개척한 기업이 아니다(최소한 넓은 의미에서는 그렇다. 물론 비전 프로는 몇 가지 특정 부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제품이다). 2013년 AR(Augmented Reality) 구현을 시도한 구글은 결국 올해 초 글래스(Glass)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했다. 메타버스 현실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페이스북의 경우 CEO만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HTC, HP 등 다른 기업이 분명 가상현실 헤드셋으로 수익을 내고는 있지만 아직 주류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VR 기기는 멋진 사람이 쓰는 멋진 기술이라는 설득력 있는 사례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애플도 분명 이런 역사를 알고 있다. 앞선 경쟁자를 넘어뜨린 함정을 피해가려고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도 놀랍다. 예를 들어, 구글 글래스 사용자는 동의 없는 촬영에 반대하는 행인에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고 신체적인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비전 프로 발표자들은 감시 문화를 떠올리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공간 비디오 기능은 자신의 집 안에 있는 사용자가 행복하고 협조적인 가족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묘사됐다(전체 시연이 실내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상하긴 했다). 비전 프로는 실외 화면으로 촬영을 진행하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영상을 찍을 수 없다는 점을 아주 신중하게 시사한 것이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비전 프로는 불법이나 악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건전한 제품이며, 착용자의 눈(시선)을 볼 수 있다. 즉,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다.
 
ⓒ Apple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은 게이머를 위한 VR 헤드셋이다. VR 게임은 재미있지만, 게임 중 다른 가족에게 주의를 뺏기게 되거나 게임을 멈췄을 때 다른 장소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러운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사용해 본 모든 헤드셋은 필자를 비누방울 안에 가둬 ‘몰입이 전부이지만 외부 세계와 연결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미덕을 만들었다. 이는 곧 외롭고 고립된 괴짜 사용자와 일반 대중의 기술 불가지론적 영역에서 오는 회의주의로 연결된다.

상대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하드코어 게이머를 겨냥하는 것은 소규모 기업에는 효과적일지는 모르지만 애플 같은 기업은 모든 대중이 매력을 느낄만한 헤드셋이 필요하다. 결국 애플이 원하는 것은 비전 프로가 중심 플랫폼 역할을 하는 아이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은 비전 프로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했다. 

비전 프로는 사용자를 외로운 진공 공간 안에 고립시키지 않는다. 웃음을 짓고 있는 모든 친구 무리와 페이스타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해 배경 화면을 없애고 외부 화면을 통해 눈을 보여주며 다른 사람을 환영할 수 있다. 대부분 시연이 사회적 집단이라는 맥락 안에서, 지하실이나 침실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당당히 거실에 위치한 상태로 이루어졌다(그러나 누가 뭐래도 최소한 필자에게 가장 와닿은 사용례는 복잡한 비행기 속에서 주변 환경을 차단한 축복의 시간이었다).

페이스타임 시연이 어색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메타버스 세계와 신중하게 거리를 두었다는 점에서도 놀라웠다. MR 기기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얼굴을 가리는 기기이므로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시스템이 사용자의 인공적 이미지를 재현해야 하는데, 비전OS의 아바타는 메타가 그리는 다리 없는 만화적인 형상보다 훨씬 사실주의에 가까웠다. 모든 사람이 비전 프로를 사용한다면 가상 환경에서 영상 채팅을 할 수도 있고 그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연은 평범한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발표자들은 계속해서 청중에게 비전 프로로 하는 것은 그저 친구와 동료를 집 안에 데려다 놓는 것뿐이다, 이상한 만화식 채팅방이 아니다, 애플은 그런 회사와는 다르다고 안심시켰다.


타인의 실수에서 배우기

비전 프로는 아직 가치를 증명하지 않은 시장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른 애플 제품보다 훨씬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MR이 정말 ‘넥스트 빅 씽(Next Bing Thing)’이 될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의 최선의 대답은 “어쩌면” 정도일 것이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영원히 지배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새로운 다른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품질은 출발점부터 명확했다.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생활 속에 불편함 없이 녹아들고,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기존 기술과 개념적으로 가까웠다. MR은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하드웨어로도 아직 어떠한 매력을 주지 못한다. 헤드셋은 투박하고 무거우며, 배터리 사용 시간도 짧다. 심지어 사용 방법도 기존에 익숙했던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 Foundry

이런 모든 점은 현재 애플이 어마어마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은 단순히 고객에게 특정 제품이 좋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MR에 대한 전체 개념을 이해시켜야 한다. 많은 잠재 고객이 MR에 친숙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미 MR 기술에 친숙한 누군가는 MR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판매 전에 애플은 앞선 기업이 입은 홍보적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

비전 프로 발표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비전 프로는 VR 기기처럼 사용자를 고립시키지 않고 구글 글래스처럼 사생활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가상 상호작용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동시에 마크 저커버그와 메타버스를 떠올리게 하지 않아야 한다. 너무 급격한 변화를 가져와 사용자를 놀라게 할 일이 없으면서 혁명에 가까운 제품이라고 말해야 한다. 수 세대가 지나서야 겨우 빛을 발할 제품의 개념을 판매하는 동시에 어서 이 기술에 달려들어 모멘텀을 만들고 콘텐츠를 생산하라고 개발자를 독려하고 싶다.

이런 모든 부분을 생각해 보면 사실 애플이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editor@itworld.co.kr
Sponsored

회사명 : 한국IDG | 제호: ITWorld |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3, 4층 우)04512
| 등록번호 : 서울 아00743 등록발행일자 : 2009년 01월 19일

발행인 : 박형미 | 편집인 : 박재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정규
| 사업자 등록번호 : 214-87-22467 Tel : 02-558-6950

Copyright © 2024 International Dat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