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주 오스틴은 평소에도 좀 특이한 곳이지만, SXSW(South by Southwest) 기간 중에는 그 특이함이 배가 된다. 기술 전문가들, 아티스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메이저 기업들과 새로운 앱을 소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의 관심 경쟁이 뜨겁기 때문이다. 올 해에는 브랜드 경쟁은 과거보다 조금 잠잠해진 느낌이었지만, SXSW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풍경들은 그대로였다. SXSW에서 마주친,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8가지 풍경을 소개해 본다. editor@itworld.co.kr
거리 위의 시녀들
길을 걷다가 문득 메이드 코스튬을 입은 채 “찬양하라”를 외치는 무리와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기괴한 경험이 있을까? SXSW 참가자들 중에는 이 붉은 색 코스튬이 마거릿 앳우드의 명작 소설 ‘시녀의 이야기(The Handmaid’s Tale)’를 훌루(Hulu)가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친 이들도 있었지만, 내게는 아주 인상 깊은 모습이었다.
브레이킹 배드의 그 치킨
이번 SXSW에서는 밥 오든커크의 연설 및 코미디 쇼가 큰 볼거리였지만, 이번에 오든커크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마 로스 폴로스 허마노스(Los Pollos Hermanos)에서의 식사가 그것을 보상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스틴 시내의 이 식당에서는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 시즌 3을 홍보하기 위해, ‘브레이킹 배드’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치킨 요리를 선보였다고 한다. 치킨이 너무 빨리 동나 나중에는 감자튀김만 먹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발상이다.
자동차 자판기
처음에 카바나(Carvana)의 거대한 ‘자동차 자판기’를 봤을 때만 해도 대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 회사가 이런 자판기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카바나가 실제로 오스틴에서 중고차 거래를 하는 딜러샵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조금 더 이해가 됐다. 오스틴 컨벤션 센터에서 봤던 그 자판기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카바나는 실제로 자판기에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온라인에서 구매할 차량을 선택한 후, 카바나 매장에 실제 차를 받으러 가는 식이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자판기 유리 너머로 내가 고른 자동차가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가장 특이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실제로 이 거대한 자판기를 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심 속 파도타기
평상시 오스틴의 콩그레스 애비뉴를 거닐 때 주로 보이는 것은 고층 빌딩과 술집이다. 하지만 SXSW 기간에는 여기에 더해 TNT의 ‘애니멀 킹덤(Animal Kingdom)’을 홍보하기 위한 파도타기 풀장이 설치된다. TNT는 거대 규모의 플로우라이더(FlowRider) 서핑 시뮬레이터를 설치한 후 지나가는 행인들을 초대해 파도타기를 하고 가라고(혹은 다른 파도 타던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구르는 모습을 구경하라고) 호객 행위를 한다.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수영복을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 하에 참가자들이 입을 수 있는 수영복까지 제공했다. 결과는 대 성공 이었다.
자동차 커스터마이징
구글은 이번 컨퍼런스에 두 가지 콘텐츠를 가지고 참가했다. 하나는 구글과 리바이스의 재커드 콜라보레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MyAndroid Taste Test 를 홍보하기 위한 #myAndroid truck 이었다. 마이 안드로이드 테이스트 테스트란 사용자에게 일련의 질문을 던져 그 답을 가지고 사용자의 취향에 부합할 안드로이드 론처, 월페이퍼, 아이콘 팩 등을 추천해 준다. 마이 안드로이드 트럭 역시 사용자가 원하는 LED 전등으로 자동차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SXSW의 다른 이벤트들에 비하면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벤트였지만, 안드로이드의 기능 하나를 프로모션 하기 위한 방법 치고는 상당히 특이했다고 생각한다.
하얀 버팔로
오스틴 컨벤션 센터를 향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처음 마주친 것은 커다란 뿔이 달린, 거대하고 새하얀 버팔로였다. 택시를 타고 시저 샤베즈(Cesar Chavez)를 지나던 나 역시 이 광경을 보고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중에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는데, 닐 게이먼(Neil Gaiman)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타즈(Starz)의 쇼 ‘아메리칸 갓(American Gods)’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메리칸 갓은 다음 달 첫 방영을 앞두고 있어 SXSW를 절호의 홍보 기회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측면도 있었지만, 애초에 버팔로가 아니라 쇼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상관 없을 듯하다. 이 역시 SXSW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스트립트(Get stripped)
오스틴에서 이국적인 댄서들을 마주칠 기회는 없었지만, 브라보(Bravo)가 새로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스트립트(Stripped)’를 홍보하기 위해 기획한 60여 명의 플래시몹을 목격하기는 했다. 플래시몹에 참가한 모델들은 빗속에서 투명 우산을 들고, 배에는 홍보를 위한 #Stripped라는 글자를 새긴 채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스트립트는 참가자들이 3주 동안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경쟁 형식으로 진행 된다. 실제로 이 플래시몹은 상당한 눈길을 끌었으며 기사화 되기도 했지만,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로봇들의 수다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로봇이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아 지는 날이 올까? 먼 미래에는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어려울 듯하다. 필자가 SXSW에서 목격한 로봇들의 괴상한 대화를 보면 말이다. 오사카 대학에서는 로봇과 로봇 간 대화를 가능하게 만든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두 명(?)의 로봇을 데리고 행사에 참석했다. 궁극적으로는 로봇과 인간 간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인지 어설픈 부분이 많았다. 우선 목소리부터가 차가운 금속이 연상되는 로보틱한 목소리였고, 대화 주제와 내용 역시 부자연스러운 데다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 이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도시 속 가드닝과 농촌의 농업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기대가 되는 기술이지만, 적어도 이번 행사에서 보여준 로봇들의 대화는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