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의 혁명 : 휴대형 컴퓨터 40년 발전사

1972 : HP-35 휴대용 과학 계산기 1972년 엔지니어들은 세계 최초의 포켓 과학용 계산기가 뿜어내는 붉은 LED에 홀려 계산자를 내팽개쳤다. 한 해 전에 등장한 단순한 휴대용 계산기와 달리 395달러의 HP-35(이 이름은 키의 숫자가 35개인 데서 비롯됨)는 휴대용 컴퓨터와 같이 삼각법, 로그, 코사인 계산이 가능했다. 흥미를 더하기 위해 이 제품은 연산자를 수 뒤에 붙이는 역 폴란드 기술법을 사용했다. 너무 뻔한 '6/3'보다는 '6 3 /'로 쓰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품이 나온 후 엔지니어들은 결과가 0.7734가 되는 여러 계산들을 고안해는 데 재미를 붙였다. 계산기를 거꾸로 들고 이 숫자를 보면 영어 단어 hello로 보인다. 사진 : Seth Morabito (cc-by-2.0)

1979: 밀튼 브래들리 마이크로비전 게임 콘솔 사람들에게 최초의 카트리지 방식 휴대용 게임기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1989년 닌텐도가 출시한 게임보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밀튼 브래들리가 1979년 크리스마스에 출시한 50달러짜리 마이크로비전이다. 1977년 출시된 마텔의 오토 레이스와 같은 단일 게임 기기에서 더욱 발전해 카트리지 교환이 가능한 방식을 채용한 마이크로비전은 진정한 최초의 휴대용 게임 시스템이다. 마이크로비전의 카트리지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CPU도 포함되는 방식이었고 콘솔에는 디스플레이와 입력 버튼, 9V 배터리만 들어가 있었다. 페이저 스트라이크(Phaser Strike)를 즐기면서 우표 크기의 화면에 나타나는 투박한 16x16 LCD 픽셀을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려면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했지만, 퐁(Pong) 세대에게 그쯤은 아무 문제 없었다. 사진 : Evan-Amos (cc-by-sa 3.0)

1980: 탠디/라디오 섁 TRS-80 포켓 컴퓨터 블랙베리 시대가 오기 전부터 탠디는 계산기에 QWERTY 키보드를 달고 볼트 고정식 스토리지를 채택한, 한 손으로 쥘 수 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손과 주머니 모두 조금 커야 하지만)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윈도우 시대가 오기 전부터 탠디는 출시 연도를 제품 이름 뒤에 붙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250달러에 출시된 TRS-80 포켓 컴퓨터(PC1)는 24자 LCD 디스플레이, BASIC 프로그래밍 기능, 영수증 테이프를 사용한 도트 매트릭스 방식 인쇄용 포트와 사용자의 BASIC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외부 스토리지(카세트 녹음기)에 저장하기 위한 포트를 탑재했다. 사진 : Oldlaptop321 (GPL 1.2, cc-by-sa 3.0)

1984: 사이온(Psion) 오거나이저 영국에서 99.95파운드에 출시된 사이온 오거나이저는 플랫 파일 데이터베이스와 확장 가능한 EPROM 데이터팩 스토리지를 탑재했으나 운영체제는 없었다. 이 제품의 광고 문구는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포켓 컴퓨터"였다. 약 14x7.5x2.5cm 크기의 기기에 장착된 키보드는 별난 모양이었다. 문자는 알파벳순으로 6x6 배열에 따라 배치되었고 몇 가지 컨트롤 키가 있었다. (숫자 키를 누르려면 Shift 키를 눌러야 함) 이 제품은 2년 후 2세대 제품인 오거나이저 II(사진의 제품)가 나올 때까지 소매점과 창고, 정부 기관에 많이 보급됐다. 이후 오거나이저 제품군은 펼쳐서 여는 방식의, 오늘날의 넷북과 비슷한 컴퓨터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1997년 인기리에 출시된 시리즈 5는 두 개의 AA 배터리로 20시간 동안 소프트웨어 구동이 가능했다. 사진 : Boris Cornet

1989: 포켓(Poqet) PC 1980년대 말은 기업에서 IBM 호환성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에 휴대용 기기 제조업체들이 MS-DOS를 채택해서 로터스 1-2-3, 워드퍼펙트와 같은 당시의 필수 소프트웨어를 구동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2,000달러에 출시된 포켓 PC가 바로 그랬다. VHS 테이프 크기에 무게는 0.4kg인 이 폴더형 컴퓨터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용량인 640K RAM과 확장 가능한 스토리지를 탑재한,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입력하도록 고안된 서브노트북이었다. 통신 기능까지 내장하고 있어 RS232 포트를 통해 전화 접속 온라인 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했다. 또한 포켓 PC에는 오늘날의 휴대용 기기 대부분이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이 있었다. 즉시 켜진다는 점, 그리고 AA 배터리 두 개로 50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진 : Sandos (GPL 1.2, cc-by-sa 3.0)

1993: 애플 뉴튼 메시지패드 스타 트렉의 트라이코더와 같이 생긴 700달러짜리 뉴튼 메시지패드는 초신성처럼 시장에 등장했다가 초기의 스타 트렉 시리즈처럼 빠른 속도로 사라진 제품이다. 무게 0.4kg, 크기 17.8x1.4cm에 압력 감지식 방식의 336x240 디스플레이와 간결하고 멋진 애플리케이션 이름(노츠, 네임즈, 데이츠)이 특징인 이 컴퓨터가 등장한 후 사전에 개인 정보 단말기(PDA)라는 용어가 등재됐다. 그러나 메시지패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스티브 잡스 없이 존 스컬리가 애플을 이끌던 당시, 설익은 필기 인식 기능을 탑재한 채 출시된 뉴튼의 단점은 만화 심슨과 둔즈베리에서 조롱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뉴튼 프로젝트는 충분한 인기를 끌지 못했고 결국 애플은 5년 후 뉴튼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다른 업체들에게 휴대용 기기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적어도 한동안은). 사진 : Rama & Musée Bolo (CeCILL, cc-by-sa-2.0-fr)

1996: 팜 파일럿 팜 파일럿(이후 팜파일럿으로 개명)은 한때 제록스, 크리넥스, 구글처럼 하나의 상표가 그 업계 전체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된 이름 중 하나였다. 팜 파일럿의 시초는 U.S. 로보틱스의 자회사인 팜 컴퓨팅에 근무하던 3명의 엔지니어가 개발 중이었던, 필기 인식 소프트웨어인 그래피티를 위한 휴대용 시스템이다. 그렇게 해서 출시된 것이 300달러짜리 파일럿 1000 PDA이다. 160x160 픽셀의 모노크롬 디스플레이와 펜 입력 방식을 채택한 이 제품은 애플 뉴튼에 비해 크기는 2/3, 무게는 1/3에 불과했다. PC 및 맥과 매끄럽게 동기화되는 개인용 일정 소프트웨어라는 킬러 애플리케이션도 있었다. 팜 OS는 PDA, 그리고 향후 스마트폰을 위한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플랫폼을 제공했으며, 유비쿼터스 휴대용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 사진 : 팜

1996: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 요즘 시각으로 보면 호신용으로 써도 될 정도로 묵직해 보인다. 그러나 1997년의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는 안쪽에 QWERTY 키보드와 640x200 해상도 화면이 숨겨진, 스마트폰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이전의 스마트폰이었다. 운영체제인 GEOS에서 개인용 일정 소프트웨어 구동이 가능했으며, 팩스, 이메일, SMS는 물론 완전한 인터넷 접속 기능까지 제공했다. 커뮤니케이터 시리즈는 몇 년 동안 발전했으며 여러 영화에 멋진 첨단 기기로 등장했다. 영화 “세인트”에서 발 킬머가 9000을 사용했고, 터미네이터 3에서는 터미네트릭스가 9210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기들은 잠시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이후 등장한 제품들에 밀려났다. 사진 : oldmobil and krystof k. (GPL 1.2, cc-by-sa 3.0)

1999: RIM 블랙베리 작은 모노크롬 모니터와 QWERTY 키보드를 탑재한 RIM의 블랙베리는 모양으로 보나 작동 방식으로 보나 양방향 호출기였다. 그러나 이 기기에는 PDA 기능도 있었으며 이메일을 직접 사용자에게 포워딩하는 킬러 앱이 포함되어 있었다. 2003년 들어 블랙베리 제품군은 더 커진 컬러 화면과 쿼드밴드 통신, SMS, 웹 브라우징 등의 기능을 추가하면서 스마트폰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 등장한 시점부터 블랙베리는 특히 기업 사용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개인용 일정 관리 기능과 통신 기능의 조합은 중독성이 강했다. 2000년대 초반 직장인에게 가장 괴로운 징계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고 해서 일명 크랙베리(CrackBerry)로 불린 블랙베리를 압수당하는 것이었다. 사진 : RIM

2000: 컴팩 아이팩(iPAQ) 한 글자만 바꿨다면 컴팩은 10년 전 애플에 선수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컴팩의 걸작 휴대용 기기 이름은 아이패드가 아니라 아이팩이었다. 아무튼 이 PDA는 한때 최고의 휴대용 기기로 인기를 끌었다. 400달러에 출시된 아이팩은 모바일 버전의 윈도우와 오피스가 포함된 마이크로소프트 포켓 PC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다. 컬러 화면과 미디어 재생 기능을 탑재했고, 후기 모델은 와이파이, VoIP, 앱 마켓까지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TV 리모트 컨트롤러 등의 기능도 추가할 수 있었다. 이름만 아이패드와 비슷했던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방향도 같았다. 아이팩에 반한 HP는 2001년 컴팩을 인수한 후 직접 만들었던 경쟁 제품인 조나다(Jornada)를 폐기 처분하고 아이팩을 자사 제품으로 수용했다. 사진 : Andreas Steinhoff

2004: OQO 모델 01 PDA는 성능이 떨어졌고, 노트북/태블릿 하이브리드 PC는 너무 컸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위치하는 제품이 있었을 법도 하다. OQO의 1,500달러짜리 모델 01이 바로 그런 제품이었다. 모델 01은 문고본 책 크기의 태블릿 PC로, 슬라이딩 방식의 백라이트가 들어오는 키보드를 탑재했다. 12.7x8.9x2.5cm의 날렵한 패키지에 20GB의 디스크를 내장했으며, 운영체제는 윈도우 XP였다. 또한 블루투스, 와이파이, 파이어와이어, USB 연결이 가능했고 후기 모델은 윈도우 비스타를 탑재했다. 모델 01은 완전한 기능의 컴퓨터 중 가장 작은 크기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으며, 모바일 인터넷 기기(MID), 인터넷 태블릿 또는 울트라모바일 PC(UMPC)라고 불리는 "중간층" 기기를 위한 시장을 개척했다(물론 일각에서는 이 시장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지만). 삼성 Q1, 노키아 770, 그리고 다수의 아코스 제품들이 이 시장에 진출했으나, 곧 '다른 무언가'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사진 : OQO

2007: 애플 아이폰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 카메라 폰, 게임기, 컴퓨터, GPS 네비게이터, PDA, 심지어 스마트폰까지, 모두 2007년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4GB와 8GB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애플 스토어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인파는 마치 아이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항변하는 듯했다. 물론 사람들은 600달러라는 가격과 AT&T 통화/데이터 요금에 대해 불평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아이튠즈 재생 목록과 유튜브 비디오 스트리밍 소리에 파묻혔다. 출시 즉시 혁신적인 요소로 인정받은 아이폰의 제스처 인식 터치 인터페이스와 앱스토어 모델은 이후 출시될 스마트폰의 표준을 정립했다. 그로부터 4년 반에 걸쳐 4개의 모델이 나온 지금까지 아이폰은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으며, 애플 수익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사진 : 애플

2008: HTC 드림/T-모바일 G1 원래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한다. 구글이라는 거대 기업이 뒤에 있긴 했지만,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스마트폰의 골리앗 아이폰에 대항하는 보잘 것 없는 다윗의 위치에 있었다. 최초로 출시된 안드로이드 폰은 HTC 드림(다른 이름은 T-모바일 G1)으로, 가격은 공짜나 다름없는 150달러(2년 약정)였다. 아이폰을 겨냥한 HTC 드림은 더 긴 배터리 지속 시간, 저렴한 가격, 슬라이딩 방식의 QWERTY 키보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당시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미디어와 앱 분야에서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안드로이드는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다. 애플은 1/3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 RIM의 점유율은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도 12%로 추락했다. 사진 : Axel Boldt (cc-by-sa 2.0)

2010: 애플 아이패드 근시인 사람, 손가락이 두꺼워서 화면을 조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겐 휴대용 기기 혁명이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애플은 전화 기능이 빠진 아이폰, 즉 아이팟 터치의 덩치를 키워서 '손이 큰 사람을 위한 휴대용 기기'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고, 아이패드는 태블릿 컴퓨팅을 주류 산업으로 이끌었다. 아이패드는 9.7형 멀티터치 디스플레이와 와이파이/3G 연결 기능, 그리고 iOS 마켓을 통해 제공되는 수많은 앱에 힘입어 탁월한 미디어 플레이어, 전자책 리더, 웹 서핑 도구로 부상했다. 2세대 아이패드에는 전후면 카메라가 추가되었는데, 덕분에 공연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촬영하느라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사진 : 애플

2010: 삼성 갤럭시 탭 애플이 태블릿을 만들자 구글은 그것보다 더 작고 가볍고 저렴한 기기에 안드로이드를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맛깔스러움을 더하기 위해 새로운 안드로이드 버전의 이름은 모두 디저트 이름을 따서 짓기로 했다. 최초의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삼성의 갤럭시 탭이었다. 400달러에 출시된 7형 태블릿으로, 선명한 1024x600 디스플레이와 플래시 지원, 파노라마 사진 촬영 기능, 자동 사진 지오태깅과 같은 부가 기능을 탑재했다. 갤럭시 탭을 필두로 모토롤라의 500달러짜리 줌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태블릿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곧 200달러 미만에 고품질의 하드웨어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향후 40년 동안 휴대용 컴퓨팅 시장은 상당히 흥미롭게 전개될 것 같다. 사진 : 삼성 그런데 잠깐, 이건 뭐지? 1617년의 휴대용 컴퓨터라고? 다음 슬라이드를 보자.

보너스: 네이피어 계산봉 40년이라는 세월은 휴대용 컴퓨팅의 조상인 네이피어 계산봉에겐 아주 짧은 시간이다. 존 네이피어가 1617년에 개발한 계산봉은 숫자가 새겨진 10개의 나무, 뼈 또는 상아 막대로, 휴대용 틀 안에 꼭 맞게 들어간다. 새로운 것을 즐겼던 괴짜들은 이 막대를 회전시키는 방법으로 곱셈, 나눗셈, 심지어 제곱근 풀이까지 해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계산자와 상용 로그표가 계산봉을 대체했지만 네이피어의 강력한 수학 막대는 단연 최초이자 가장 멋진 휴대용 계산 장치였다. 사진 : 컴퓨터 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