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vs. 2015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 성능 대결

1995년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한 해였다. 발 킬머가 주연한 배트맨 포에버가 박스 오피스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L.A. 램스는 세인트 루이스로 본거지를 옮겼고, O.J. 심슨의 살인 혐의를 둘러싼 재판은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발칸반도에서 보스니아 내전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은 것도 1995년의 일이다.

1995년에 이처럼 다양한 사건으로 시끌벅적 했던 것은 비단 일반 사회의 일만은 아니다. IT 업계에서도 역시 위대한 슈퍼컴퓨터들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역사를 써 내려갔다.

1995년의 슈퍼컴퓨터 상위 500위 목록을 보면 인류의 기술 수준이 불과 20년 만에 얼마나 놀랍게 발전해왔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당시의 컴퓨터 성능 지표는 테라플롭이 아닌 기가플롭 단위로 제시되고 있었다. 1995년과 올해의 상위 500위 목록에서 각각 10위를 차지한 기록을 비교해보면 20년 사이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약 8만 4,513배 빨라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 1995년과 2015년의 가장 우수한 슈퍼컴퓨터들을 나란히 비교해보며 변화를 실감해보자.

10위:
1995년- 크레이(Cray) T3D-MC512-8, 피츠버그 슈퍼컴퓨팅 센터, 50.8 GFLOP/S
2015년- 벌칸(Vulcan), 로렌스 리저모어 국립 연구소, 429만 3,300 GFLOP/S
피츠버그 슈퍼컴퓨팅 센터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명문 슈퍼컴퓨팅 센터다. 다만 오늘날 대표작으로 꼽히는 3대 시스템인 셜록(Sherlock), 블랙라이트(Blacklight), 안톤(Anton)은 아직 톱 500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피츠버그 슈퍼컴퓨팅 센터의 작품이 마지막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린 해는 2006년으로, 당시 빅 벤(Big Ben)으로 256위를 기록했다. PSC의 알파서버 SC45(AlphaServer SC45)는 2001년 7,266기가플롭의 기록으로 목록에서 2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슈퍼컴퓨터 주퀸

9위:
1995년- 크레이 T3D-MC512-8,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 50.8 GFLOP/S
2015년- 주퀸(JUQUEEN), 포슌젠트룸 율리히, 5,008,900 GFLOP/S
맞다, 10위와 9위는 같은 모델이다. 당시의 슈퍼컴퓨터는 각자의 포지션이 확실한 맞춤형 시스템이라기보다는 크레이나 인텔 같은 업체에서 구매하는 상용품의 성격이 강했다. 주퀸의 경우는 512코어 기기로 크기는 대형 캐비넷 한 쌍 정도이며, 95년의 T3D-MC512-8와 비교하면 9만 8,600배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5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유럽 슈퍼컴퓨터 중 하나로, 생물부터 에너지, 기후 연구 영역에 사용된다.

8위:
1995년- 씽킹 머신(Thinking Machines), CM-5/896 미네소타 슈퍼컴퓨터 센터, 52.3 GFLOP/S
2015년- 스탬프드(Stampede), 텍사스 어드밴스드 컴퓨팅 센터, 516만 8,100 GFLOP/S
씽킹 머신은 보스톤 기반의 초창기 슈퍼컴퓨터 제조사로, 1995년 6월 슈퍼컴퓨터 톱 500 목록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미 파산을 선언한 상태였다. 이들 지분 대부분은 1996년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실질적으로 인수됐다. 미네소타 대학의 HPC 사업부는 현재 미네소타 슈퍼컴퓨팅 협회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그들의 신형 메사비(Mesabi) 시스템은 2015년 슈퍼컴퓨터 상위 500위 목록에서 141위에 이름을 올렸다.

7위:
1995년- 후지쯔 VPP500/42, 일본 원자력 에너지 연구소, 54.5 GFLOP/S
2015년- 샤힌 II(Shaheen II), 킹 압둘라 공과 대학, 553만 7,000 GFLOP/S
후지쯔는 슈퍼컴퓨터 상위 500위 목록이 처음 발간된 1993년 이후 한 번도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시장의 강자로, 1995년에는 상위 10위 가운데 세 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일본 원자력 에너지 연구소의 경우에는 2008년 이후 순위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곧 화려한 복귀가 기대되는 연구소다. 최근 일본 원자력 에너지 연구소는 이론적으로 현존 최고인 2.4페타플롭의 연산 속도를 기록한 실리콘 그래픽스 아이스 X 시스템(Silicon Graphics ICE X system, 올해 목록에서는 25위권을 살짝 벗어난 순위를 기록)의 구매 계약 체결을 발표했다.

6위:
1995년- 팅킹 머신 CM-5/1056,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 59.7 GFLOP/S
2015년- 피즈 다이언트(Piz Diant), 스위스 국립 슈퍼컴퓨팅 센터, 621만 7,000 GFLOP/S
20년 사이 컴퓨팅 성능은 10만 배의 진보를 이뤄냈다. 이러한 격차에는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코어 수의 차이 역시 영향을 미쳤다. 1995년 6위에 오른 CM-5는 1,056개의 코어를 적용했으며, 한 계단 아래 후지쯔의 컴퓨터는 단 42개 코어만으로 동작했다. 코어 당 성능도 확연히 발전했지만, 전체 성능의 막대한 격차를 가져온 더 큰 요인은 프로세서 코어 수다. 2015년 리스트에 오른 시스템 가운데 가속기를 포함해 18만 9,792개 이하의 코어를 장착한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슈퍼컴퓨터 미라

5위:
1995년- 후지쯔 VPP 500/80, 일본 국립 소립자 물리학 연구소, 98.9 GFLOP/S
2015년- 미라(Mira), 아르곤 굴립 연구소, 858만 6,600 GFLOP/S
80개의 코어를 적용한 후지쯔의 VPP 500/80 시스템에서 역률은 8만 7,000 선까지 떨어졌고 퍼포먼스는 100기가플롭을 눈 앞에 두게 됐다. VPP 500/80 모델은 1999년까지 계속해 90위권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4위:
1995년- 크레이 T3D MC1024-8, 익명의 미 정부 기관, 100.5 GFLOP/S
2015년- 후지쯔 K 컴퓨터, 린켄 선진 컴퓨터 과학 협회, 1,051만 100 GFLOP/S
익명의 미 정부 기관이 채택한 T3D MC1024-8 시스템은 1995년 100기가플롭의 벽을 깬 첫 번째 슈퍼컴퓨터로, 2001년까지 상위 500위 목록 안에 자리를 지켰다. 올해 같은 순위를 차지한 K 컴퓨터 역시 2012년 이후 4년째 톱 5를 지키며 후지쯔의 새로운 간판 시스템으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3위:
1995년-인텔 XP/S-MP 150, 오크 릿지 국립 연구소, 127.1 GFLOP/S
2015년-세콰이어(Sequoia),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 1,717만 3,200 GFLOP/S
슈퍼컴퓨터 시장에서 에너지국이 차지하는 지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막대하다. 1995년과 2015년 상위 10대 목록에서 에너지국이 관리하는 시스템은 각각 4개씩을 기록했다. XP/S-MP 150 시스템의 프로세서 수는 같은 해 10위에 오른 크레이의 솔루션 보다 약 3배 많은 3,072개였다. 앞으로의 개발 시장 변화를 한발 앞서 예견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2위:
1995년- 인텔 XP/S140, 산디아 국립 연구소, 143.4 GFLOP/S
2015년- 타이탄(Titan), 오크 릿지 국립 연구소, 1,759만 GFLOP/S
3위에 이어 한번 더 인텔 시스템이 이름을 올렸다. 두 시스템의 차이는 코어 수로, XP/S140 시스템에는 3,608개의 코어가 적용됐다. XP/S-MP 150보다 더욱 현대적인 슈퍼컴퓨터의 모습이다.

슈퍼컴퓨터 텐허 2

1위:
1995년-후지쯔 뉴메리컬 윈드 터널(Fujitsu Numerical Wind Tunnel), 일본 국립 항공 우주 연구소, 170 GFLOP/S
2015년-텐허 2(Tianhe 2), 중국 국립 슈퍼컴퓨터 센터, 3,386만 2,700 GFLOP/S
뉴메리컬 원드 터널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우주 항공 분야에서의 유체 역학 시뮬레이션을 목적으로 개발된 특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전통적인 윈드 터널 테스팅 방식을 따르며 안정성 과 기체에 가해지는 다방면의 압력을 측정한다. 그리고 2015년 1위는 이보다 20만 배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 중국의 텐허 2가 차지했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