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경쟁 수준 높인 비자, 결제 서명 필요성 없애
비자를 우선 살펴 보자. 많이 늦었지만 의미가 크다. 비자는 지난 주(1월 12일) 다른 카드 브랜드인 마스터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디스커버에 이어 결제 서명의 종말을 선언하고, 4월부터 결제 서명을 없앤다. 비자는 서명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소매 업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서명을 없애 달라고 요청해왔고 결국 여름이 오기 전에 미국에서는 결제 서명이 사라지게 된다.
이 결정 뒤에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EMV, 매장 내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한 구매 추적, POS의 서명 분석 기능 부재 등) 서명을 최종적으로 절벽 아래로 밀어낸 것은 바로 모바일이다.
Computerworld는 EMV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한 2016년 5월에 이미 이 터무니없는 상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쇼핑객은 지문 스캔으로(지금은 서서히 얼굴 인식 도입 중) 모바일 결제를 인증할 수 있지만, 당시 분석했듯 EMV 변화 때문에 쇼핑객은 POS에서 구매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입학 시험을 기억하는가? ‘A와 B의 관계는 C와 ___의 관계와 같다’는 문제가 나오곤 했다. 그 문제를 여기 대입하자면 생체 인증과 서명 인증의 관계는 핵탄두와 스핏볼의 관계와 같다. 사실 공정하지 않은 비교다. 스핏볼은 순간적인 통증이라도 일으키는 반면, 2018년의 서명은 어떠한 인증 기능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에 서명을 감정할 필체 전문가가 몇 명이나 근무하고 있을까?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다시 돌아와서 서명하라”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진짜 문제는 결제 방법에 대한 시야의 부재에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된 이후 서명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서명은 오랜 기간 무의미한 상태로 사용됐지만, 훨씬 더 우월한 모바일 결제 인증이 나오면서 이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작년 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디스커버 모두 기존 서명의 종말을 선언했고, 결제 브랜드 중 단연 가장 큰 기업인 비자가 1월까지 버티다 드디어 동참했다. 모든 신용카드 브랜드가 모바일 결제와의 싸움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아직 덜 배운 크로거
그런데 크로거는 아직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2,800개에 육박하는 매장을 보유한 1,150억 달러 규모의 소매업체 크로거는 지난 10월 인상적인(인상적일 만큼 막연한) 여러 가지 기술 계획을 발표했다. “크로거는 사물인터넷 센서 네트워크, 비디오 분석, 머신 러닝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구축하고, 로봇 및 인공 지능으로 이러한 혁신을 보완하여 고객 경험을 바꿔 나갈 것”이라는 계획이다. 크로거 대변인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분야, “현재 20개 매장에 적용된 스캔, 백, 고(Scan, Bag, Go) 파일럿을 2018년 400개 매장으로 확대하는 것을 포함하여 프론트 엔드를 재설계해서 매장의 셀프 체크아웃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어느 정도의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 파일럿 프로젝트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음과 같이 전했다. “쇼핑객은 크로거가 제공하는 휴대 스캐너 또는 스마트폰에서 ‘스캔, 백, 고’ 앱을 사용해서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이 기술은 쇼핑객의 총 주문액을 추적하고 적용 가능한 쿠폰을 제공한다. 또한 고객이 쇼핑 목록에 있는 상품을 지나칠 때 이를 알려주는 기능도 한다. 고객이 쇼핑을 마치면 셀프 체크아웃 등록기로 가서 주문 금액을 결제할 수 있다. 곧 쇼핑객들은 이 단계도 생략하고 앱을 통해 결제할 수 있게 된다.”
이 스마트폰 앱을 자세히 살펴보자. 크로거 쇼핑객의 대다수는 이미 스마트폰을 소지한 채로 매장에 들어가므로 굳이 다른 기기를 사용하도록 할 필요가 없다. “고객이 쇼핑 목록에 있는 상품을 지나칠 때 알려준다”는 개념은 좋은데, 그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 상품 수준 RFID를 사용해서 모든 SKU를 확인하는지, 아니면 실제 상품의 위치가 아닌 단순히 상품의 정해진 자리를 보여주는 매장의 상품진열도를 사용하는지 불분명하다. 특정 제품(250g 통에 든 라즈베리맛 콘프레이크)의 재고가 소진되면 알림을 보내는지, 재고가 없는 상품을 찾아 헤매는 상황을 유발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차치하고 일단 첫 단계로서는 나쁘지 않다다. 필자의 질문은 이런 수준까지 실행하면서 모바일 결제를 처음부터 포함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다. 달리 말하면, 편리한 모바일 결제 옵션이 몇 년 전부터 이미 나와 있는데도, 스마트폰으로 모든 상품을 스캔하고 총계를 내고, 쇼핑객이 또 다시 줄을 서서 결제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크로거 경영진이 참여율을 기반으로 모바일 결제 전환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건 무슨 논리인가? 참여율이 저조하면(“저조하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 실패로 간주되고 폐기된다. 시작부터 모바일 결제를 사용해서 최신 기술과 편리한 쇼핑을 포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필자는 크로거 측에 모바일 결제를 늦추는 이유를 물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솔트레이크 시에 소재한 분석 업체 인모멘트(InMoment)의 부사장 리사 데이비스는 크로거가 이와 같이 “더 불편하고 성가신” 방법을 택하는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데이비스는 IT 못지않게 LP(손실 방지)가 큰 장애물일 것으로 추측했다. 고정된 보안 카메라, 셀프 체크아웃에서 절도를 감시하는 직원이 포함된 크로거의 LP 메커니즘은 통로 내 체크아웃 시스템에서는 비효율적이다. 즉, 크로거의 LP 인프라가 모바일 결제를 아직 지원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데이비스는 “크로거는 기술을 구현할 때 고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 여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접점을 놓친 것”이라면서 “프로세스를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스의 관점에는 일리가 있다. 크로거와 같은 기업은 더 나은 쇼핑 방법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이를 수용하기 위한 모든 프로세스를 변경해야 한다.
오늘날 소매점의 선택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비자처럼 마지못해 모바일을 수용하거나, 모바일이 기존 소매 인프라를 수용하도록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후자는 크로거가 취하는 방식이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