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던 휴머노이드 로봇은 발과 구부러지는 다리, 몸통, 손과 손가락이 달린 팔, 머까지 갖춘 사람처럼 생긴 자율 AI 기반 기계다. 이런 휴머노이드 로봇은 실제 업무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다.
- 아마존은 물류 작업에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디짓은 빈 상자를 부품으로 다시 채울 수 있도록 옮기는 데 사용된다.
- 메르세데스 벤츠는 앱트로닉(Apptronik)과 협력해 제조 분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폴로(Apollo)의 활용을 모색하고 있다. 아폴로는 생산 라인에 조립 키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에 위치한 공장에서 피겨 AI(Figure AI)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피겨 01(Figure 01)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로봇은 부품을 지그에 옮기고 부품 배치를 수정하는 데 사용된다. 피겨 AI는 최근 첫 번째 로봇보다 훨씬 더 인간과 비슷한 피겨 02 로봇을 공개했다.
- 현대자동차는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를 통해 제조 공장에 아틀라스(Atlas) 휴머노이드 로봇을 배치하고 있다. 목표는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 테슬라는 옵티머스(Optimus)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 이미 2대를 공장에 배치했다. 주로 배터리 셀 분류에 사용하고 있다.
- 유비테크 로보틱스(UBTECH Robotics)의 워커(Walker) 로봇은 중국 자동차 공장 2곳에서 차량에 자동차 로고를 부착하고 품질 검사를 수행하는 등 다양한 반복적인 제조 작업에 활용되고 있다.
현재로서 이런 로봇은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솔루션이거나, 로봇의 가격에 비하면 가치가 없는 사소한 작업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앞으로 로봇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왜 휴머노이드인가?
공장에서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로봇은 휴머노이드가 아니다. 산업용 로봇은 성능이 매우 뛰어나며, 최근에는 생성형 AI로 프로그래밍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테슬라의 공장은 로봇 공학 그 자체다. 비휴머노이드 로봇의 능력이 이토록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를 비롯한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봇 크기와 일반적인 모양, 부품을 사람의 신체 부위처럼 설계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건물, 차량이 사람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인체를 기반으로 로봇을 설계한다는 것은 로봇이 문을 열고, 의자에 앉고, 계단을 오르는 등 일반적으로 사람을 위해 설계된 모든 장소나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언뜻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이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사실상 그렇지 않다.
공장과 같은 작업 공간은 사람과 기계 모두를 위해 설계됐다. 예를 들어 공장 바닥은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단단하고 평평하며 매끄럽다. 두 발로 걷기 위해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휴머노이드 로봇보다는 구르는 로봇이 공장에서는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런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보다 훨씬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고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며, 훨씬 더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용하는 주된 목적이 인간 중심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면, 디짓 로봇의 크고 하얀 눈이 깜빡이는 목적은 무엇일까? 피겨와 옵티머스에 사람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머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휴머노이드 로봇은 왜 인간처럼 다섯 손가락을 가지고 있을까?
인간의 몸과 마음은 구석기 시대부터 수백만 년에 걸쳐 사회적 협력, 식량 공유, 도구 및 불 사용을 기반으로 한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공장 작업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석기 시대 원시인의 신체를 기반으로 공장 로봇을 설계하려는 것일까?
로봇 설계자는 인간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로봇에 열망을 가지고 있다.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을 가진 로봇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능적으로 보이는 생성형 AI 인격을 만들기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럴까?
휴머노이드 로봇의 함정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다른 로봇과 매우 다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과 같은 감정과 행동을 보이면 사람은 자신에게는 없는 정신 상태를 로봇에게 부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현상을 "인지적 의인화(cognitive anthropomorphism)"라고 한다.실제로 제노바 대학교와 이탈리아 공과대학의 연구팀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비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물로 인식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또는 '사회적 대리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행위는 심리 생리적 연결 혹은 유대감을 이끌어낸다. 핀란드 탐페레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로봇과 눈을 마주쳐도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또한 이탈리아 IRCCS 센트로 뉴로레시 보니노 풀레호(IRCCS Centro Neurolesi Bonino Pulejo)에서 실시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정서 지능"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특히 의인화된 특성을 보일 때"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UC 샌디에이고의 전기 및 컴퓨터공학과 교수 샤오롱 왕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춤을 추고 신체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왕은 Computerworld와의 인터뷰에서 "표현력이 풍부하고 인간과 더 유사한 신체 동작을 통해 신뢰를 쌓고 로봇이 인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옵티머스 로봇이 "잘 생겼으면 좋겠다"라며 사람이 로봇을 "꽤 애착이 가는" "친구"로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머스크는 옵티머스와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 200억 대가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미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다른 로봇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구로서의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다. 말하고, 사회적·정서적 신호를 인식하고, 공감과 신뢰를 끌어내고, 눈 맞춤을 통해 심리적 반응을 유발하고, 내면의 생각과 의도, 심지어 감정까지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사람을 '속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류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착각에 기반한다. 이런 기계(실제로는 도구)는 인간의 뇌를 의도적으로 '해킹'하고 속여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취급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즉, 휴머노이드 로봇의 목적은 과거에는 인간 사이에서만 가질 수 있었던 감정적 연결을 기계와 갖도록 인간을 유인하는 것이다.
특정한 기능에 맞게 설계된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속이기 위해 설계된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로봇은 잘못된 감정과 신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설계된다. 로봇은 단지 기계일 뿐, 도구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보존하는 것이 무슨 해가 될까? 왜 인간의 마음을 속이고 인간의 공감을 가로채는 기계로 이런 생각을 가로지르는 것일까? 도구가 인간 사회와 가족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안드로이드 로봇이 흔하게 등장하는 SF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누군가는 이런 비전을 실현하고 싶어 할 것이다. 또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피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로봇이 사람처럼 여겨진다면 로봇 제작자가 로봇을 만들 때 자신을 신처럼 느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동기가 무엇이든 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을 위해 설계된 환경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자가 사람을 속이는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로봇은 그저 기계일 뿐이다. 기계에 두 개의 다리와 열 개의 손가락, 얼굴을 부여한다고 해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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