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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 브리핑 | 애플 vs. FBI, 디지털 시민권 vs. 국가 안보

허은애 기자 | ITWorld 2016.03.04
애플은 현재 흥미로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이었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던 한 부부가 총기를 들고 난사해 14명이 사망했고 전 미국에 충격을 안겼다.

일견 IT 업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는 테러였으나 불똥은 애플에까지 튀었다. 용의자의 휴대폰이 iOS 9를 탑재한 아이폰 5c로 밝혀지면서 FBI가 애플에 데이터 잠금 해제 및 우회 소프트웨어 개발을 요청한 것이다.

애플은 2014년 iOS 8부터 사용자 외 타인이 잠금 상태의 아이폰에 접근하기 어렵게 보안을 강화했다. 일반적으로 FBI 등의 수사 기관은 무차별 대입 공격이라는 방식을 사용해 비밀번호가 풀릴 때까지 다양한 숫자 조합을 계속 입력하는 방법을 써 왔다. 그러나 IOS에서는 10번 이상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할 경우 기기 내 데이터가 완전히 삭제되므로 이 방법을 쓸 수 없었다.

FBI는 아이폰의 비밀번호 보호를 무력화할 수 있는 별도의 운영체제를 개발해 제공할 것을 애플에 요청했다. 당연히 애플은 이를 거부했고 FBI는 이 문제를 법원에 가져갔다. 그리고 지난 2월 16일 연방지원판사 쉐리 핌은 애플에 수사 협조를 명령했다.

미 법원 “아이폰 잠금 풀어라”…팀 쿡, 즉각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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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World 용어풀이 | 백도어


FBI가 요구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미국 기관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보안 기능을 피하거나 없애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암호화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우회 운영체제, 즉 백도어를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애플 CEO 팀 쿡은 “어떤 형태를 띠든 결국 백도어”라고 단정 지었다. 쿡은 법원의 판결 직후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사용자의 자기정보통제권이 위기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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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요청은 주로 모든 영장 법(All Wrist Act)에 기반을 두고 있다. 170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법으로 법 원칙과 용도가 적절한 경우 정부가 필요한 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애플의 주장은 명료하다. 보안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용자 기기에서 우회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라는 수사 기관의 요청이 언론의 자유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IT 관계자들의 권리와도 관계가 있다. 과거 소프트웨어 코드를 하나의 발언이나 표현으로 판단한 판례가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 애플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미국 법은 판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만일 애플의 수사 협조 취소 신청이 기각될 경우, 현재 심사 중인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고, 판결 결과를 근거로 많은 범죄 수사에서 유사한 보안 우회 소프트웨어 개발을 요청할 우려가 있다. 애플로서는 샌 버나디노 판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단 선례가 형성되면 수사기관의 요청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며 이런 요청이 기업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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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 주요 인사들도 속속 견해를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전 CEO 빌 게이츠는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후, FBI의 주장에 제한적으로 찬성하며 올바른 안전장치를 둘 경우 테러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부 활동에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구글 CEO 순다 피차이, 트위터 CEO 잭 도시, 모질라 재단 이사 마크 서먼 등은 일제히 애플의 대응에 전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빌 게이츠는 FBI 편?”…백도어 논란에 대한 IT 주요 인사 찬반 입장 정리
페이스북 CEO 주커버그 “애플에 동의, 백도어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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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순다 피차이, 애플 지원 나섰다…”IT 업체의 해킹은 위험”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거대 기업들은 법원에 애플을 지지하는 내용의 법정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들 업체는 데이터 암호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사용자 정보 보안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이 사용자 권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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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에서 IT 업체에 정보 제공이나 수사 협조를 요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글뿐 아니라 애플도 과거 적법한 수사 요청에 여러 차례 응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단 기업이 정부에 개인 데이터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사용자들의 불신이 잇따를 것이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중지 등의 행동을 취하는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사회 전체의 정보 보안망에 구멍이 뚫리고 만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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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논란이 한참 진행 중인 3월 4일에는 유사한 사건을 다룬 뉴욕 주 지방 법원에서 수사 기관의 아이폰 데이터 접근 요청을 기각해 향후 미칠 파장이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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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는 애플의 힘겨운 승리를 예상한다. 만일 이번 판결에서 패소하더라도 애플은 이후 이어질 다른 소송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수백만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만큼 놀라운 광고 효과를 얻었다고도 평한다. 정부기관도 뚫지 못하는 철통 같은 보안을 증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판결 이후 곧바로 취소 신청을 낸 상태이며, 사건을 담당한 미국 연방법원 판사 쉐리 핌은 3월 22일 애플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그러나 결국 대법원까지 사건이 확대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법정 공방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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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 사건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분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 전체가 개인의 정보와 공동체 안정을 위한 국가 권력 간 경중에 대해 고민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기술이 사회의 주요 인프라로 자리 잡은 현재, 디지털 시민권과 개인 정보 보안, 인터넷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 구성원 간의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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