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SOA, 게이츠보다 발머를 신뢰하는 이유
전 세계 마이크로소프트 고객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건 중 하나는 빌 게이츠의 은퇴이다. 원한다면 필자를 비난해도 좋다. 동료 기자들이나 오픈소스 진영은 놀랄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고객들에게 전반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게이츠가 아직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얼마나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CEO직에서 퇴진했다고 해서 게이츠의 영향력이 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아직도 스티브 발머가 내리는 중요한 결정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발머 역시 이사회 내에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한 만큼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발머가 회장직에 있지 않더라도 그의 의견들 중 일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통적 사업모델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얘기다.
빌 게이츠가 물러나고 스티브 발머가 새로운 수장이 된 것이 SOA(Service Oriented Architecture)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필자는 인간적으로 발머를 좋아한다.
필자가 발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발머가 자신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소재로 한 농담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에 필자가 그런 농담을 했을 때 웃어 넘겼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발머의 웃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 관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곤 했던 기자에게 가식으로 평화를 제안하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웃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스티브 발머는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자신의 느낌을 숨기는데 능숙하지 못하다. 거짓을 말한다면 아마추어들조차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이 바로 발머가 필자에게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인간적인 사람으로 다가왔던 이유이다. 또한 생각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도 충분히 알고 지내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마이크로소프트를 대화의 소재로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필자는 발머를 존경한다. 발머는 몸 안에 정직한 뼈를 적어도 하나 이상 갖고 있다. 필자는 스티브 발머가 윈도우 95가 미래의 추세임을 확신시키기 위해 인포월드를 방문했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발머는 인포월드의 편집자들과 전문 기술진들로 가득 찬 방 안에서 IBM의 OS/2가 윈도우 95보다 낫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윈도우 NT가 OS/2보다 우수하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발머가 이처럼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을 말했던 때들을 기억한다. 만약 필자처럼 마케팅 담당자들이나 경영자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졌다면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발머는 틀을 깰 때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마케팅 담당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말을 하긴 해도, 회사에 최고의 이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진다면,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환영 받지 못할 결정까지도 내리려는 사람이다. 때문에, 필자는 향후 언젠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소스와 공개 표준에 대해 립 서비스 이상을 제공할 것으로, 그리고 발머가 적어도 이 같은 변화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MS 오피스를 오픈소스로 내놓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MS 오피스가 비공개 소프트웨어로 남아있다고 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악의 정점으로 섣불리 단정 짓지는 말기 바란다. 정확히 말하면, IBM 역시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오픈소스로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종종 기업들의 오픈소스 및 리눅스 채택 뒤에 숨은 최고 수혜자들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점이 서비스 지향 아키텍쳐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백엔드 서비스 부문에서 유닉스와 리눅스의 존재로 인해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 점점 높아지는 SOA의 인기는 서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최고의 티켓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닷넷과 더불어 우수한 SOA를 개발할 수 있는 견고한 소프트웨어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해야 할 일이란 기존의 제품들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한편, 이들을 바탕으로 공개 표준과의 호환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발머야 말로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이츠 체제 하에서 SOA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발머 체제 하에서만큼은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게이츠를 진심으로 존경하지만, 그는 모든 경쟁을 차단하고 사용자들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계에만 가둬두는 데 눈이 멀어 있었다. 발머 역시 어느 정도는 게이츠에 동의하겠지만, 그는 게이츠와 달리 “One Microsoft Way”라는 상표가 붙은 상자 바깥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이다. 그는 업체들 간의 경쟁이 더 큰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에서 유일한 주자가 될 필요가 없을 가능성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불완전한 소프트웨어를 출시하고, OOXML의 국제 표준화를 추진하는 등 지금까지 끼친 피해를 탕감하거나 봐주자는 의미에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SOA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완전히 제외시키지는 말길 바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풍부한 재능을 갖고 있는 강력한 기업이자, 해를 끼칠 수 있는 만큼 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능력 또한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발머의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과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 노선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부 괘씸한 언행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도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다. 필자는 발머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다. <IDG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