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 기업 문화

“불명예의 전당” 최악의 IT CEO 9인

Florian Maier | COMPUTERWOCHE 2024.05.17
실수는 병가지상사이다. 그러나 경영진의 경우 실수, 오해 또는 단순한 어리석음으로 인해 잘 나가던 기업이 순식간에 몰락하거나 정리해고의 파도에 휩쓸리는 등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범죄에 연루된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직접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관리자라면, 보통 훌륭한 경력이 끝나고 많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후보자들은 보통 앞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IT 업계에서 오명이 자자한 9명의 탁월한 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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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 마이크로소프트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만큼 재임 기간 동안 거센 역풍에 직면한 CEO는 많지 않다. 2012년 포브스의 기자 아담 하퉁은 발머를 당장 해고해야 마땅한 최고 경영자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발머는 혼자의 힘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에서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델, HP, 노키아 같은 파트너의 성장과 이익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아담 하퉁은 “발머의 형편없는 리더십은 주가와 일자리 파괴라는 측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까지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몇 가지 대실패는 분명 발머를 비난할 만하다. 윈도우의 실패작인 윈도우 비스타와 윈도우 8, 고객들로부터 경멸을 받았던 아이팟 경쟁 제품 준(Zune, 그리고 윈도우 폰과 노키아 인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발머의 리더십 아래 있는 동안 IT 산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지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리눅스를 암이라고 하거나 애플 아이폰이 기업 고객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등 거친 '발언'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2013년 발머가 CEO에서 물러난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급등했다. 하지만 후임자인 사티아 나델라는 모바일 재난을 수습하는 대규모 정리 작업을 해야 했다. 2014년에는 거의 1만 8,000명의 직원이 노키아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유망한 기업 궤도에 올려놓았다. 

반면 발머는 CEO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 감독위원회에서 물러났고, 그 직전에 NBA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인수했다. 발머는 NBA 우승이란 야심찬 목표를 내세우며 새로운 '동기 부여 연설'에 박차를 가했지만, 우승을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포브스는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다면, 발머의 손가락은 반지 무게 때문에 밑으로 처질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브스에 따르면,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는 세계에서 9번째로 부유한 사람이다.
 
 

케이 R. 휘트모어 : 코닥

케이 R. 휘트모어는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단 3년 동안만 코닥의 CEO를 역임했지만, 그럼에도 코닥의 중간 쇠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문제는 휘트모어가 디지털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거싱 휘트모어가 1990년 빌 게이츠와의 회의에서 코닥 사진 CD와 윈도우의 통합 가능성을 논의하던 중 잠이 들었다고 알려진 이유일 수도 있다.

휘트모어는 코닥의 미래가 디지털 사진이 아니라 아날로그 필름과 사진 사업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것은 코닥의 엔지니어였다. 그리고 1989년 최초의 디지털 SLR 카메라도 코닥이 시장에 출시했는데, 사실 이 분야에서도 시장 리더가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사업 노력의 부족으로 이후 니콘과 같은 경쟁사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휘트모어는 1993년 해고됐다. 그의 후임자 조지 피셔는 디지털 비즈니스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주로 실패한 제품만 만들어냈다. 그 후에도 코닥은 오랜 기간 동안 시대를 내다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2012년 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코닥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암호화폐, 인쇄 기술, 제약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휘트모어는 이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하고 2004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칼리 피오리나 : HP

칼리 피오리나는 1999년에 HP의 CEO로 임명됐다가 내부 논란과 열악한 성과로 인해 2005년에 해임됐다. 피오리나가 재임한 6년 동안 HP는 기업 가치의 절반가량을 잃었다. 2001년 그녀가 주도한 컴팩과의 합병은 시장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무적으로 실패한 합병으로 평가된다.
 

컨설팅 회사인 PwC를 인수하려던 시도는 이사회에 의해 무산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오리나에게 호의적인 시선이 쏠린 것은 아니었다. 또한 피오리나는 비용 절감(또는 일자리 감축)을 노래하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과도한 보너스를 지급했다. 최고 경영자로서 불명예스러운 피오리나의 마지막은 2,100만 달러가 넘는 퇴직금으로 달콤하게 마무리됐다. 이후 칼리 피오리나는 자서전을 집필하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치 활동은 2015년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불운한 노력으로 정점을 찍었다. 피오리나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무엇보다도 리더로서의 자질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는 다양한 매체에서 피오리나가 휴렛팩커드의 전 CEO로서 쌓은 불명예스러운 '실적'을 더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즈의 마이클 바바로는 “그녀는 회사의 가치에 충성을 맹세하고 회의에서 겸손한 창업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직원 사보 소개에서 자신이 15미터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3만 명의 직원이 다운사이징 전략의 일환으로 점차 일자리를 잃었다. 해고 통지는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전달됐으며, 일부 직원은 전화로 해고됐다”라고 썼다.

그러나 마이클 바바로는 기사 후반부에서 피오리나가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HP 구조 안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도 피오리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피오리나는 당시 필요한 파괴적인 리더였지만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놓쳤다. 즉, 직원 개개인과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와 헌신을 잃었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어쨌든 칼리 피오리나는 HP의 '통치' 이후 CEO로 일할 수 없게 된 것은 확실하다.
 

존 스컬리 : 애플 

존 스컬리는 1990년대 초 애플을 거의 폐업 직전으로 몰고간 것뿐만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스티브 잡스를 해고한 것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1985년, 스컬리는 이사회를 설득해 경쟁자인 스티브 잡스의 모든 관리 직무를 박탈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품 디자이너이자 마케팅 매니저 중 한 명을 회사에서 쫓아냈다"고 썼다.

그보다 2년 전인 1983년, 존 스컬리는 애플의 CEO로 임명됐다. 당시 스컬리는 기술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음료 제조업체 펩시(PepsiCo)에서 영리한 최고 경영자이자 마케팅 천재임을 입증했다. 그후 몇 년 동안 애플의 전략적 방향에 대해 스컬리와 잡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존 스컬리는 2013년 포브스 매거진 컨퍼런스 행사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컬리가 이후 CEO로서 애플을 한 번의 실패에서 다음 실패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CNBC는 “스컬리는 펩시에서 뛰어난 마케팅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기술 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는 참담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재임 기간은 관리자 간의 내부 분쟁과 애플 뉴턴처럼 시장에서 실패한 값비싼 프로젝트로 기억된다”고 평가했다. 



실패의 연속과 함께 당시로서는 과도한 연봉을 고려해 애플 이사회는 1993년 스컬리와 결별했다. CNBC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스컬리는 연봉 220만 달러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관리자였다. 이후 스컬리는 더 이상 CEO직을 맡지 않고 대신 정치와 개인 투자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에 다시 애플의 CEO가 됐고, 이후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통해 현재 애플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조나단 슈워츠 :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

조나단 슈워츠의 출발은 유망했다. 맥킨지에서 잠시 근무한 후 소프트웨어 회사인 라이트하우스 디자인(Lighthouse Design)의 CEO가 됐는데, 라이트하우스 디자인이 1996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인수됐다다. 1년 후, 슈워츠는 수익성 높은 거대 기술 기업이었던 썬의 마케팅 디렉터로 재직 중이었고, 설립자 스콧 맥닐리는 썬을 서버 및 프로세서 분야의 거물로 키워냈다. 2006년에 슈워츠를 자신의 후계자이자 썬의 새로운 CEO로 선임한 것도 맥닐리였다.

이후 불행한 경제 상황과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Sun은 오라클, HP, IBM에 막대한 시장 점유율을 잃었고, 슈워츠는 이런 하락세를 막을 수 없었다. 2007년 말에는 회사 가치가 급락했고 그 결과 6,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자바의 지속 가능한 수익화 모델을 찾던 중에 시도한 MySQL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슈워츠가 썬의 CEO로 재임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오라클에 74억 달러에 인수됐을 때는 썬의 힙한 말총머리 CEO 조난단 슈워츠가 회사의 앞날을 너무 망쳐놓은 상태라 인수가 최후의 수단이었다. 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프라이즈 기술 업체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지만, 슈워츠는 래리 엘리슨과 달리 이 기회를 놓쳐버렸다.”

슈워츠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을 떠나면서도 자신의 노선에 충실했고, '혁신'으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바로 트위터에 하이쿠 형식으로 퇴사를 발표한 것인데, 이는 IT 업계에서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현재 슈워츠는 자신이 설립한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회사 케어존(Carezone)에서 여전히 최고 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조지 샤힌 : 웹밴(Webvan)

1990년대 말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인터넷 스타트업 중 하나였던 웹밴은 1996년부터 인터넷 기반 음식 주문 서비스를 통해 슈퍼마켓 사업 그 이상의 혁신을 일으키고자 했다. 1999년까지 경영 컨설팅 회사인 앤더슨 컨설팅(현 액센츄어)의 CEO였던 조지 샤힌이 이 대혁신을 책임지게 됐다.

앤더슨에서 약 6만 5,000명의 직원을 관리하며 4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연봉을 받던 샤힌이 무명의 스타트업인 웹밴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1년 매니저 매거진이 제안한 것처럼, 샤힌은 스톡옵션과 닷컴 붐의 결합에 유혹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2000년부터 웹밴은 사업 확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직원 수는 전성기에는 4,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식품 산업에 대한 샤힌의 경험 부족은 점차 문제가 됐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샤힌을 특히 나쁜 경영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웹밴은 온라인 식료품 사업을 구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고, 2000년 6월에 홈그로서를 인수했다. 이는 웹밴의 현금 보유액을 고갈시킨 실수였으며, 이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시키기 위해 갖춰야 할 물류 요구사항은 악몽과도 같았다. 샤힌은 이 업계의 유통업체들이 최소 마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웹밴은 이를 바꿀 수 있는 고객 기반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실수는 웹밴의 IPO를 승인한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3억 7,5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투자자에게 돌아간 것은 거의 없었다. 샤힌은 앤더슨의 임원으로서 자신을 역대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꼽았기 때문에 최악의 CEO 중에서 매우 특별한 사례이다. 그러나 샤힌은 웹밴의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거나 이사회 및 경영진 동료들과 협력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샤힌은 앤더슨의 수석 컨설턴트였을 때도 한 직원이 몰래 만든 만화 패러디에서 풍자될 정도로 양극단의 인물이었다. 샤힌은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기 직전인 2001년에 웹밴에서 게스트 출연을 끝냈다.

샤힌은 2005년에 시벨 시스템즈(2006년 오라클에 인수됨)의 CEO로 임명됐고, 2013년부터 AI 스타트업 [24]7.ai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회사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경력에서 일부러 웹밴 에피소드를 지운 것으로 보인다.
 

샘 뱅크먼-프리드 : FTX

'암호화폐 천재', '제2의 워렌 버핏', '암호화폐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칭송받으며 포브스와 포춘의 표지를 장식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설립자이자 전 CEO인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이다. 하지만 2022년부터 심각한 하락세에 들어섰다. FTX와 계열 헤지펀드인 알라메다 리서치 사이의 수상한 거래에 대한 소문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고객들이 자산을 인출하거나 인출을 원했다. 당시에도 뱅크맨프리드는 이 모든 것을 경쟁사가 FTX를 해치기 위해 시작한 작전으로 묘사했다. 

지금은 삭제된 트윗에서 뱅크먼프리드는 "FTX는 괜찮다. 자산은 안전하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얼마 후 주요 경쟁사인 바이낸스의 FTX 인수가 실사 실패로 무산되면서, 그리고 FTX와 알라메다의 사업 관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드러나면서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허언이었는지 밝혀졌다:
 

현재까지도 불법 행위를 부인하고 있는 샘 뱅크먼프리드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세를 낮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여러 인터뷰와 팟캐스트 등에 출연해 언론인, 인플루언서, 투자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뢰할 수 없는 결백 주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대화 중에 비디오 게임을 하는 무례한 모습으로 더욱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2022년 말, 전 FTX CEO는 마침내 바하마에서 체포되어 미국으로 인도됐다. 그 결과 간절히 기다리던 미국 의회에서의 인터뷰는 실현되지 못했다. 후임자인 전 엔론 파산 관리인 존 레이는 FTX의 충격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 직업 경력에서 이 정도 규모의 실패는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기업 통제와 신뢰할 수 있는 재무 정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손상된 시스템, 해외의 부실한 규제 통제, 경험이 부족하고 단서가 없으며 잠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소수의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황까지 더해졌다. FTX 그룹은 현금에 대한 중앙 집중식 통제가 없었다 ... 회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 현재까지 FTX는 전체 직원 명단을 작성하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직원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직원을 찾으려는 반복적인 시도는 실패했다 ... FTX.com 비즈니스의 심각한 단점 중 하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추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뱅크먼-프리드는 메시지를 받은 후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설정된 앱을 통해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고,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했다.”

미국으로 인도된 후 뱅크먼-프리드는 2억 5,0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석방됐다. 미국에서의 재판은 2023년 10월 3일에 시작되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배심원단이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림으로써 끝났다. 형량은 2024년 3월 판결에서 25년형과 110억 달러의 벌금이 부과됐다. 물론, 뱅크먼-프리드는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뱅크먼-프리드의 전 FTX 가까운 동료들이 유죄 판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롤라인 엘리슨(전 알라메다 리서치 CEO)과 게리 왕(전 FTX CTO)은 각각 미국 검찰과 양형 협상을 체결하고 뱅크먼-프리드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창펑 자오 : 바이낸스(Binance)

FTX의 붕괴 이후, 바이낸스(2017년 설립)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로 부상했다. 바이낸스의 창립자이자 CEO인 창펑 자오는 2022년 한 행사에서 FTX 붕괴와 관련해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몇 년을 후퇴했다. 이제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 산업을 훨씬 더 엄격하게 판단할 것이며, 이는 솔직히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바이낸스 CEO가 실제로 얼마나 정직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그는 바이낸스에서도 모든 것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당국이 바이낸스의 비즈니스 관행을 면밀히 살펴보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반복적으로 떠돌았다. 결국, 2023년 6월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바이낸스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했고, 그 결과 여러 고위급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2023년 11월 말에 밝혀진 바와 같이 자오의 암호화폐 제국 내 부정행위는 FTX만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법무부가 45분간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사안은 심각했다. 미국 법무부는 바이낸스와 바이낸스 CEO에게 엄중한 벌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회사와 창펑 자오 본인 모두 미국 금융법, 제재 및 테러 방지 조치 위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바이낸스에는 43억 달러의 벌금과 5년 동안 독립적인 모니터링 기관의 감독, 이전보다 훨씬 더 엄격한 보고 의무가 부과됐다. 설립자 겸 CEO인 자오에게는 1억 5,000만 달러의 벌금과 최대 10년의 징역형, 3년간 회사 운영 금지가 예상된다.

미국 당국은 조사 과정에서 자오를 비롯한 바이낸스 경영진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미국 금융법과 제재를 회피한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법무장관 메릭 갈랜드는 기자회견에서 “바이낸스는 규정을 준수하는 대신 수십억 달러의 암호화폐를 규제 없이 전송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또한 미국 사용자와 제재 대상과의 거래도 조장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 직원들도 바이낸스 플랫폼이 범죄자들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19년 2월, 한 바이낸스 규정 준수 담당 직원이 채팅에서 '요즘 마약 자금 세탁이 너무 어렵다면 바이낸스로 오세요'라고 적힌 새로운 광고 배너가 필요하다는 농담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바이낸스는 고의적으로 미국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범죄자들이 훔친 돈을 쉽게 세탁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기자회견 후반부에 “바이낸스는 아동 성학대에서 불법 마약 밀매, 테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법 활동을 지원했다. 여기에는 이슬람 지하드, 알카에다, 이슬람 국가와 같은 단체와 연계된 거래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자오는 약 150억 달러에 달하는 순자산을 고려할 때 1억 5,000만 달러의 벌금은 가소로운 수준이다. 하지만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자오가 미국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로스틴 벤햄 위원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오가 유죄 판결 후 실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갈랜드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당국이 단기간에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두 곳의 CEO를 성공적으로 법정에 세웠다며, "신기술을 이용해 법을 어기는 사람은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강조했다.
 

마르쿠스 브라운 : 와이어카드(Wirecard)

와이어카드는 한때 독일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이었으며 1999년 설립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DAX 상장 그룹으로 성장했다. 2020년 중반, 정치인과 투자자들의 구애를 받던 와이어카드가 무너졌다. 특히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자들은 몇 년 동안 와이어카드의 비리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지적해 왔다. 이는 2019년 와이어카드가 파이낸셜 타임즈를 상대로 허위 보도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런 정보에도 불구하고 독일 은행 감독 기관인 바핀(2018년부터 2021년까지 올라프 숄츠 당시 사민당 재무장관에게 보고한 기관)이나 검찰은 어떤 수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이후 밝혀진 심각한 실책은 와이어카드의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인식된 약 19억 유로가 2020년 중반에 사라졌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CEO 마르쿠스 브라운은 기자 회견에서 회사가 "상당한 규모의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얼마 후, 브라운은 체포되어 현재 거의 3년 동안 구금되어 있다. 독일 뮌헨주 검찰은 브라운과 다른 피고인들을 상업적 조직 사기, 단체 자금 횡령, 대차대조표 위조 및 시장 조작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브라운과 회사의 다른 전직 관리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와이어카드에 대한 형사 재판이 시작되자 브라운은 " 위조나 횡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이 소송은 와이어카드 파산으로 인해 총 200억 유로에 가까운 손실을 입은 수많은 소액 투자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소송은 아니다. 2020년부터 10년간 와이어카드의 재무제표를 감사했던 EY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형사 소송에서 밝혀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사라진 약 20억 유로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위장 거래였는지 여부이다. 만약 그렇다면 18년 이상 와이어카드를 운영한 사람이 실제로 피해자이며 20억 유로 규모의 사기를 인지하지 못했을까? 공동 피고인인 올리버 벨렌하우스(전 와이어카드의 중동 사업 책임자)는 자백을 하고 브라운을 고발했다. 현재 러시아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도주 중인 전 COO 얀 마르살렉도 와이어카드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살렉은 변호사를 통해 뮌헨 검찰청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브라운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뮌헨 제1 지방법원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브라운은 와이어카드 사건에 대한 독일 의회 조사위원회 출석을 거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독일 연방하원의 와이어카드 스캔들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플로리안 톤카는 “와이어카드 사건은 금융 중심지로서 독일에 재앙이며, 관련 감사원과 감독 당국은 파산 선언을 한 셈이다”라고 참담한 결론을 내렸다.

한델스블라트의 2022년 보도에 따르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 와이어카드 CEO 마르쿠스 브라운 박사는 개인의 재정적 안녕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한다. 브라운은 총 7,500만 유로에 달하는 자산이 압류됐지만, CEO로 재직하는 동안 주로 뮌헨과 비엔나의 고급 부동산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압류로부터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와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일부 자산을 옮긴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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