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탄생: 인텔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

Benj Edwards | Computerworld 2008.06.29
1978년 인텔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 출시는 퍼스널 컴퓨팅에 있어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이 기사를 읽기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가 어떤 컴퓨터든(윈도우, 맥, 리눅스?) 그 중심에는 8086의 DNA가 새겨져 있다. 또한 8086을 통해 인텔은 흔해 빠진 칩 업체 중 하나에서 세계 최대의 칩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8086의 엄청난 성공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8086이 처음 고안되었을 때 이러한 성공을 기대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혁명적 프로세서의 역사는 재능 있는 몇 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에게 혁신적인 자유를 부여할 때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다.

1976년 5월 8086 개발이 시작된 당시 인텔 경영진은 그것이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대수롭지 않은 임시 프로젝트로 생각했다. 인텔 경영진은 8800이라는(후에 iAPX 432로 출시됨), 전혀 다르고 더 복잡한 프로세서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대부분의 칩이 여전히 8비트 데이터 경로를 사용하던 시절에 8800의 32비트는 급작스런 도약이었다. 8800은 운영 체제를 실행하는 프로그램 코드의 양을 줄이도록 고급 멀티태스킹 기능과 메모리 관리 회로를 CPU에 직접 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8800 프로젝트는 순조롭지 못했다. 인텔 엔지니어들은 당시의 칩 기술로는 복잡한 설계를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지연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텔은 전 인텔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자일로그의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자일로그는 Z80 CPU를 통해 중급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1976년 7월 출시된 Z80은 사실상 퍼스널 컴퓨터 혁명을 촉발한 인텔의 성공작인 8080을 더욱 강화한 복제판이었다. 당시 인텔은 Z80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8086 설계자의 출현
8800에 대한 인텔 경영진의 신념은 변치 않았지만 자일로그의 위협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들도 인식하고 있었다. 인텔 경영진은 8800 프로세서의 설계 결함에 대한 핵심적인 조사 자료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36세의 전기 엔지니어 스테판 모스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이들은 모스를 8086의 단독 설계자로 임명했다.

모스는 이후 한 인터뷰를 통해 “8086 아키텍처가 많은 세대를 거쳐 지금의 프로세서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리란 사실을 인텔 경영진이 어렴풋이나마 예견했다면 이 작업을 한 사람에게 일임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모스를 선택한 것이 놀라운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그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 인텔에서 CPU 설계는 오로지 하드웨어 엔지니어의 영역이었다. 모스는 “인텔은 처음으로 소프트웨어 관점에서 프로세서 기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며 “관건은 ‘어떤 기능을 넣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효율성을 더 높이려면 어떤 기능을 넣어야 하는가’였다”고 말했다. 이후 이러한 소프트웨어 중심적 접근 방식은 업계에서 혁신적인 방식으로 판명됐다.

8086은 모스의 프로젝트였지만 그 혼자 작업하지는 않았다. 모스 팀에는 빌 폴먼, 짐 맥케빗, 브루스 레브널 등의 다른 인텔 직원들도 참가했는데, 이들은 모두 1978년 여름 8086을 시장에 내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8086 설계에 대한 요구 사항으로 인텔 경영진은 당시 인기가 높았던 8080 칩용으로 작성된 소프트웨어와 호환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128KB의 메모리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 기본적인 몇 가지 부분만 전달했고 나머지는 모두 모스의 손에 맡겼다. 모스는 “8086 설계가 장수할 것으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덕분에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촐한 등장
모스의 작품은 출시될 때 컴퓨팅 업계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당시 중급 퍼스널 컴퓨터 시장은 Z80을 달고 1970년대 후반 유행했던 OS인 CP/M을 구동하는, 똑 같은 모양으로 찍어낸 듯한 비즈니스 시스템 투성이었다.

8086은 눈에 띄지 않는 몇몇 PC와 단말기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휴대형 컴퓨터 시장에서 80C86 형태로 약간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다 마침내 마이크로컨트롤러 및 임베디드 애플리케이션 분야에도 채택되었는데, 그중에는 나사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오늘날까지도 고체 로켓 부스터 검사를 제어하는 데 8086 칩을 사용한다. 나사는 이 프로세서를 구하기 위해 이베이에서 고물 전자 제품들을 구입하고 있다.

1979년 3월 모스는 인텔을 떠났다. 이후 언뜻 하찮아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면서 8086은 명실상부한 산업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모스가 회사를 떠난 몇 주 후 인텔은 모스가 “거세된 8086"이라고 불렀던 8088을 발표했다. 모스가 이렇게 부른 이유는 8088이 8086의 16비트 기능을 반쪽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시스템이 여전히 8비트였기 때문에 8088은 두 번의 8비트 사이클로 16비트 데이터를 전송했으며 이를 통해 8비트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유지했다.

2년 후 IBM은 저렴한 기성 부품만으로 구성되는 최초의 IBM PC인 모델 5150 작업에 착수했다. 이전까지 IBM은 다른 이들을 모두 배제하는 독자적 기술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의외의 시도였다.

물론 기성품 시스템에는 기성품 마이프로프로세서가 필요했으므로 IBM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IBM은 일찌감치 새 시스템에는 16비트 프로세서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모토로라 68000(최초의 매킨토시에 들어간 강력한 16비트 프로세서), 인텔 8086, 그리고 8086의 “거세된” 사촌인 인텔 8088, 이렇게 3개로 후보를 좁혔다.

IBM 개발 팀에서 일했던 데이빗 J. 브래들리에 따르면 IBM은 인텔 프로세서에 더 친숙하다는 이유로 모토로라 칩을 고려 대상에서 빼버렸다. 거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8086, 그리고 8086과 동일한 기반 코드를 공유하는 8088용으로 사용 가능한 베이직 인터프리터를 준비해 놓았다는 사실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IBM에게 남은 선택안은 8086과 8088 두 가지였다. 최종적인 판단은 칩 수 줄이기라는 단순한 경제적 기준에 따라 내려졌다. IBM은 8088을 선택했다. 8088은 8086에 비해 더 적은 롬 모듈과 더 적은 램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결정을 통해 IBM은 더 저렴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브래들리는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IBM이 어떤 인텔 칩을 선택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두 칩 모두 스테판 모스가 작성한 기본 8086 코드를 사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칩에서 표준으로
8086은 어떻게 해서 산업 표준이 되었는가? 그 답은 IBM 5150 자체가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에 내포되어 있다. 참고로 5150은 PC 월드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25개의 PC 중 6위에 올라 있다.

1980년대 초반 PC 산업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후 수많은 공화국들이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갔던 동유럽과 같은 상황이었다. 여러 제조업체가 내놓은 수십 가지의 컴퓨터 플랫폼이 난무했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그리고 주변기기를 여러 시스템에서 그대로 사용하기를 갈망했던 사용자들은 컴퓨터 시스템들 간의 비호환성에 끊임없이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PC 세계의 각기 다른 구성품들은 서서히 5150을 구심점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5150의 성공을 이끈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시스템에 찍힌 IBM이란 이름이다. IBM 브랜드는 기업 구매자들 사이에서 라디오 ?r이나 애플과 같은 경쟁 기업들보다 명성이 더 높았다.

브래들리는 “당시의 선택은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IBM)의 컴퓨터를 사느냐, 아니면 무슨 과일 이름을 딴 회사의 컴퓨터를 사느냐의 명료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또한 IBM이 기성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은 복제판을 만들 수 있었다.

IBM PC가 빠르게 시장을 석권해 나가자 인텔은 이 기회를 타고 80186을 필두로 80286, 80386, 80486, 펜티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8086의 개량형을 개발했다. 대부분의 CPU 이름 끝부분에 86이라는 공통적인 숫자가 들어간 덕분에 이러한 일련의 프로세서들은 “x86”으로 불리게 됐으며, 이는 인텔이 숫자에서 펜티엄, 셀러론, 센트리노 등 상표권 등록이 가능한 명칭으로 전환한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른 CPU 제조업체들도 곧 인텔이 이끄는 대세에 합류했다. AMD, 사이릭스, NEC, 그리고 IBM까지 자체 x86 호환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PC 표준으로서 x86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우연과 행운의 결과
모스와 브래들리에 따르면 x86에 대한 현재의 절대적 의존도는 대부분의 측면에서 우연의 소산이다. 모스는 “나는 그저 운 좋게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며 “실력 있는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그 프로세서를 설계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명령어 세트를 만들었겠지만, 그렇게 됐다면 지금의 모든 PC는 바로 그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IBM의 브래들리는 “IBM이 IBM PC의 프로세서로 모토롤라 68000을 선택했다면(실제로 몇몇은 그렇게 하자고 주장했다) 아마 지금의 윈텔 대신 위놀라(WinOla)라는 쌍두마차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x86의 진정한 힘은 CPU를 움직이는 특정 연산 코드가 아니라 공통 컴퓨터 표준이 갖는 추진력에 있다. 8086이 길을 닦았고, 이 길 위에서 동일한 목표를 가진 수많은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에 의해 컴퓨터 속도, 용량, 가격대 성능비의 급격한 향상이 이루어졌다.

모스의 소박한 8086 명령어 세트는 옵테론, 애슬론, 코어 2 쿼드에 이르기까지 현재 사용되는 거의 모든 PC CPU의 심장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x86이라는 표준이 얼마나 견고한지 실감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1978년 당시 인텔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용으로 작성된 모든 어셈블리어 프로그램은 인텔의 최신 코어 2 익스트림 CPU에서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실행된다. 다만 실행 속도가 18만 배 더 빠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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