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11월 2일 애널리스트 대상 행사는 달랐다. 경쟁사를 멋지게 압도했다.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이유가 '궤적 관리(trajectory management)'라는 마케팅 원리와 관련돼 있다고 본다. 최근의 영업 프로세스를 보면, 일련의 단계를 통해 ‘잠재 고객’을 ‘고객’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IT 기사나 애널리스트 보고서에서 언급된 것을 본 후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업체 웹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후 업체의 영업 담당자와 대화하며 실제 판매가 성사되는 식이다. 최근에 열린 애널리스트 행사에서 주니퍼는 대담한 마케팅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진행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행사의 기조연설에서 주니퍼의 CEO 라미 라힘은 단순히 주니퍼가 경쟁에서 앞섰다고 말하는 대신 경쟁사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사용자의 요구에 대해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경쟁자가 '문자 그대로' (혹은 은유적으로) 주니퍼가 보는 것을 못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니퍼는 운영 프로세스가 네트워크에서 수집한 원격 측정값을 매우 신뢰한다. 모든 주니퍼 기기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작동한다. 어체는 이 데이터를 클라우드 네이티브 저장소를 옮겨 AI로 처리하는 방식을 통해 네트워크 운영 방식 자체를 전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니퍼는 이를 '경험 우선(Experience-First)' 네트워킹이라고 부른다. 물론 경쟁사는 제공할 수 없다고 첨언했다. 이날 행사에 등장한 다른 연사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쟁사의 AI와 개방성을 지적하며 주니퍼의 데이터 중심적인 비전이 우월하다는 것을 반복해 강조했다. 마치 과거 주니퍼 마케팅의 전성시대, 즉 만화의 시대로 복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서 나온 몇 가지 주제는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니퍼가 강조한 '경험 우선', '정보, 개방성'은 모두 운영과 관련된다. 네트워크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의 네트워크에는 기기와 기능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졌고, 그만큼 네트워크가 더 많은 일을 처리한다. 운영 요구사항이 증가하면서 비용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위한 모든 투자가 하나의 통합된 모델로 통합되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계층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여전히 사용자 경험을 네트워크 운영과 연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주니퍼는 자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를 2가지 제시했다.
하나는 주니퍼의 경험 우선 스토리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지난 분기의 구체적인 영업 데이터였고, 다른 하나는 업계 애널리스트와 전문가에게 제품 및 기능 수준에서 이 사안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정리된 자료를 제공했다(주니퍼는 근래에 이런 적이 없었다).
이 자료는 주니퍼가 성공한 이유를 인공 지능과 SSR(Session Smart Routing) 등 2가지로 집중해 설명했다. 주니퍼는 인수를 통해 이 두 영역에서 많은 기술을 확보했고, 최근 분기에서도 바로 이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경험 우선 스토리가 확산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며, 이를 중시하는 흐름이 주니퍼의 모든 제품에 녹아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자동화된 WAN,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 지향적 기업 등 경험 우선 전략의 핵심 기술도 함께 보여줬다. 이들은 AI 지향적 운영과 주요 데이터를 통해 통합된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에는 다양한 업체 제품과 기술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주니퍼는 앱스트라(Apstra)를 인수해 기기가 주니퍼 제품이 아니어도 최고 수준의 경험 요건을 템플릿으로 활용해 의도 기반으로 운영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적인 운영 모델을 손에 넣었다. 템플릿에 기초한 하향식 데이터센터 운영을 정의해, 이제 기업은 운영 모델을 만들어 모든 데이터센터에 적용해 데이터센터 수준에서 네트워크 운영을 표준화 할 수 있게 됐다.
SSR은 주니퍼가 128 테크놀로지(128 Technology)를 인수하면서 확보한 엣지 기술이다. 이를 이용하면 각 사용자와 애플리케이션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허용되고 어떤 비즈니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도 규명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주니퍼 마케팅 전략에서 '경험'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트래픽이 아니라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네트워크 조건이 아니라 비즈니스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경험 우선' 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통합과 통일 측면에서 보면 이전과 차이가 있다. 즉, 더 많은 네트워크 데이터를 수집하면 네트워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여기에 데이터에 경험과 연결된 세션 정보까지 포함하면 네트워크가 직원과 비즈니스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데이터, AI, 세션 인식의 조합을 통해 기업은 기기로부터(위로) 또는 경험으로부터(아래로) 시작해 네트워크를 관리할 수 있으며,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같은 데이터 포인트와 인사이트 세트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주니퍼가 발표한 마비스(Marvis)의 대화 능력을 활용할 수 있으며(마비스는 여러 주니퍼 서비스의 핵심이 되는 자연어 처리 엔진이다) 심지어 스마트폰 가상 비서 같은 조언도 얻을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모든 주니퍼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결합하고 경험 인식을 확보하는 것이 왜 강력한 조합인지 알 수 있다. 독창적이라는 주니퍼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주니퍼는 필자가 그동안 생각했던, AI를 네트워크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요건을 모두 확보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충족하고 이번 행사를 통해 이를 확실하게 외부에 공표한 것이다.
단, 여기에는 필자가 앞서 언급한 '궤적 관리'의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통일, 화합, 정보, 개방성의 테마를 다시 떠올려 보자. 주니퍼의 웹 사이트에서 이런 중요한 요소를 찾을 수는 있지만, 필자가 애널리스트 행사에서 발견했던 응집력 있는 메시지는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렇다. 주니퍼는 이 행사를 통해 기자와 애널리스트를 통해 언급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다음 단계, 즉 이 언급을 통해 흥미를 느낀 사람이 주니퍼 홈페이지를 방문했을 때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누군가 이번 행사 관련된 보고서나 기사를 보고 주니퍼 웹 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배치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주니퍼와 다른 기업들이 생각해야 하는 구매 과정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영업 담당자와 제공업체는 ‘영업’을 특정 제품에 집중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구매 과정은 단일 제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생태계로써 구매하고 생태계처럼 운영돼야 하는 협력적이고 총체적인 관계다. 따라서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즉, 웹 사이트의 테마를 통합하는 것이 더 좋다.
다행히 이런 경쟁에서 주니퍼에 좋은 소식이 있다. 기술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마케팅과 포지셔닝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주니퍼는 경쟁사가 이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테마를 활용할 수 있다. 주니퍼의 새롭고 대담한 마케팅이 궤적 관리 포지셔닝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네트워크 운영 전략을 찾고 있는 기업과 이를 제공하려는 업체 모두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게 될 것이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