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버튼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라. 윈도우 8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윈도우 3.1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의 그래픽 쉘인 윈도우 3.1을 발표했다. 윈도우 3.1은 새로운 PC에 탑재되어 널리 사용된 최초의 윈도우 버전으로, 향후 윈도우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20주년을 맞아 윈도우 3.1이 가져다 준 화려한 GUI 환경과 수많은 혁신에 대해 짚어보겠다. editor@itworld.co.kr
프로그램 관리자
윈도우 탐색기 이전에는 프로그램 관리자가 있었다. 여기서 원하는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을 그룹으로 묶을 수 있었다. 컴퓨터 상에 있는 파일을 보기 위해서도 파일 관리자를 실행해야 했다. 동작은 잘 되었지만, 수많은 윈도우를 다루는 것은 다소 까다로웠으며, 프로그램 그룹 50개면 화면이 꽉 찼다.
파일 관리자
파일 관리자는 디렉토리 트리 구조와 아이콘 기반의으로 컴퓨터의 파일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했다. 드래그 앤 드롭으로 폴더 간의 파일 복사가 쉬웠다는 점이 많은 초보 PC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에서부터 파일 관리자와 프로그램 관리자를 합쳐서 윈도우 탐색기를 만들어 냈다.
트루타입 폰트
윈도우 3.1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중요한 혁신은 아마 트루타입 폰트일 것이다. 믿지 않을 수 있지만, 트루타입 폰트는 애플이 개발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에 무료로 라이선스를 줬다. 왜? 당시 애플은 디지털 서체를 어도비가 독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각형 모양의 픽셀을 사용하는 비트맵과는 달리 트루타입 폰트는 곡선과 직선으로 표현되어 크기를 키워도 매끄러운 모양을 유지했다. 이는 놀라운 품질의 출력 문서를 만들어 냈는데, 윈도우 3.1이 데스크톱 출판 플랫폼으로 인기를 누린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윈도우 3.1에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15종류의 폰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장 화면 보호기
윈도우 3.1 이전에 모니터를 아껴 사용하려면, 필요할 때마다 모니터만 끄거나 애프터 다크(After Dark)같은 서드파티 화면 보호기를 설치해야 했다. 윈도우 3.1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화면 보호기를 내장했으며, 검은 색 빈 화면이나 날아다니는 윈도우 로고, 사용자가 원하는 문장을 입력하는 등의 기능을 제공했다. 물론 서드파티에서도 다양한 화면 보호기를 내놓았으며, 홍보용으로 만들어져 화면 보호기의 원래 기능을 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지뢰찾기와 카드놀이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유명인사의 블로그를 쉽게 접속할 수 없었던 시절, 많은 사무직원들은 지뢰찾기나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일각에서는 윈도우의 카드놀이가 다른 어떤 PC 애플리케이션보다 더 많은 업무 생산성을 허비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레지스트리의 탄생
윈도우 3.1은 여러 가지 향상된 기능을 담고 있었는데, 특히 많은 윈도우 사용자를 파멸로 몰아갔던 레지스트리가 있었다. 이제 사용자들은 이 숨겨진 시스템 설정이 얼마나 쉽게 헝클어지고 망가지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불만 속에서도 레지스트리는 계속 살아남았는데,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윈도우 8에도 레지스트리는 숨어있다.
제어판
윈도우 3.1 시절로 돌아가 보면, 제어판에는 딱 12개의 아이콘 밖에 없다. 현재 필자의 윈도우 7 제어판에는 52개의 아이콘이 있다. 물론 윈도우 3.1은 11MB 용량이었고, 윈도우 7은 23GB나 되니 운영체제가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임베디드 이미지
윈도우 3.1은 OLE(Object Linking and Embedding)라고 부르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쉽게 말해 페인트로 그린 비트맵 파일을 워드패드 파일에 내장시킨다. 하지만 이 비트맵 파일은 링크가 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해당 비트맵 파일을 수정하면, 문서 파일 내의 비트맵도 연동되어 변경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한 기능이지만, 20년 전에서는 엄청난 발전이었다.
통일된 열기/저장하기 대화상자
윈도우 3.1 이전에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파일 열기/저장하기 대화상자를 각각 만들었어야 했다. 이 때문에 개발자에 따라 대화상자는 각양각색으로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3.1부터 시스템 전반에 적용되는 열기/저장하기 대화상자를 도입했으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그저 이를 자신들의 제품에 연결하기만 하면 됐다.
멀티미디어 지원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발표된 윈도우 3.0에서 멀티미디어 확장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음향과 동영상 재생을 을 지원했다. 하지만 최신형 시스템에서만 가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윈도우 3.1에서 표준 기능으로 만들었으며, 사용자는 사운드블래스터 프로 같은 사운드 카드를 사용하면 고품질 디지털 오디오를 재생하고 녹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디어 플레이어로 AVI 파일도 볼 수 있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시스템의 성능이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냐가 문제였다.
노트패드와 계산기
이 두 가지 액세서리는 윈도우 3.1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트패드의 모습은 최신 윈도우 사용자에게도 친근하겠지만, 여러 색상에 평평한 버튼이 있는 계산기는 다소 낯설다. 3년 후 윈도우 95에서 훨씬 윈도우 같은 모습의 계산기가 도입된다.
작업 관리자
요즘 사용하는 윈도우에서는 Ctrl-Alt-Dell 버튼으로 작업 관리자를 불러올 수 있다. 윈도우 3.1에서는 Ctrl-Esc으로 태스크 리스트(Task List)를 불러올 수 있었다. 기능은 작업 관리자와 마찬가지로 열려 있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고, 문제가 되는 것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 유용하지는 못했는데, 당시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 충돌은 윈도우 자체를 종료시켜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