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2년 3월 애플의 피크 퍼포먼스(Peek Performance) 행사에서 존 터너스는 애플 프로세서 맥 프로를 굳이 한 번 더 언급했다. 당시 새로 발표된 맥 스튜디오와 이 제품에 탑재된 막강한 M1 울트라 칩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시스템이 나올 것이라는 가슴 벅찬 루머를 마치 인정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애플 반도체 맥 프로는 여전히 출시되지 않았다.
맥 프로 출시 시점에 대한 가장 안전한 전망은 WWDC다. 지난 3개의 모델도 각각 2006년, 2013년, 2019년 WWDC에서 발표됐다. 애플은 맥 프로를 요란하게 발표하기를 좋아하는데, 궁극의 CPU 성능을 요구하는 전문가를 위해 만들어진 맥에 기꺼이 789만 9,000원을 지출할 준비가 된 사용자들이 청중으로 모이는 WWDC 키노트는 그야말로 목적에 딱 맞는 무대다.
새로운 맥 프로가 맥 피라미드 맨 윗자리를 당당히 탈환할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해도, 성능상의 우위는 이전 모델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맥 스튜디오에 탑재된 M1 울트라는 무려 20코어 CPU, 64코어 GPU다. 그러자 믿기 힘든 48 CPU와 152 그래픽 코어를 탑재한 익스트림 칩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상위 맥 스튜디오의 CPU보다 2배 이상 더 강력한 사양이다. 애플 반도체의 성능을 모두에게 과시하며 사실상 적수가 없는 새로운 맥 프로의 시대를 열 만한 프로세서다. 그런데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은 최근 기사에서 애플이 워크스테이션급 익스트림 칩을 버리고, 그 대신 울트라 프로세서를 약간 더 강화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강화된 울트라 프로세서도 분명 고성능이지만, 맥 스튜디오와의 차이는 맥 스튜디오가 향후 1년 동안 M1 칩을 그대로 사용한다 해도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도 맥 라인업에서 최상위 성능 모델이 아니고, 올 하반기에 출시될 새 모델 역시 엄청나게 빠르지 않다면 애초에 맥 프로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맥 프로의 흔들리는 정체성
거먼의 기사에 따르면, 맥 프로에는 24코어 CPU와 76코어 GPU로 구성된 M2 울트라 프로세서가 장착된다. 케이스 디자인은 현재 모델과 동일하고 스토리지와 그래픽, 미디어, 네트워킹 카드를 위한 슬롯은 있지만 메모리 슬롯은 없다. (애플의 시스템온칩 구조에서 그래픽 확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아직 확실치는 않다. 거먼은 이전에 맥 프로가 메모리 추가를 위한 간편한 확장성을 지원할 것이라는 기사를 쓴 적도 있으므로 취재원이 이번 그래픽 카드 지원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맥 프로에서는 확장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40Gb/s의 썬더볼트가 있는 만큼 내부 업그레이드는 더 이상 예전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맥 프로에서 사후 RAM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는 것은 이제 애플에는 사용자가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맥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더 중요한 질문은 ‘맥 프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이다. 맥 프로는 매혹적이지만, 불편한 원통 디자인부터 현재 모델의 첨단 열 설계와 87만 9,000원짜리 바퀴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애플의 가장 혁신적이고 강력한 데스크톱의 위치를 지켜왔다. 그러나 애플 프로세서 전환이 시작된 이후 맥 프로의 타당성과 가격에 부합하는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이제 새로운 활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며, 변화의 시점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 모델이 맥 스튜디오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르고 맥북 프로보다 아주 조금 더 확장성이 높은 수준이라면, 그걸 맥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애플은 애플 프로세서 전환 과정에서 이미 아이맥 프로와 27인치 아이맥을 냉혹하게 없앴다. 없어진 두 제품처럼 맥 프로도 ‘스스로의 유산을 이어갈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이라는 논리에 부합한다.
24인치 아이맥과 맥북 프로가 애플의 새로운 칩에 맞춰 훌륭하게 다시 설계된 것을 본 후, 필자는 맥 프로에 탑재될 첫 애플 프로세서는 몇 년의 개발과 전환의 대미에 걸맞은 소개가 필요한,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프로세서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로 그것이 맥 프로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정말 맥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맥 스튜디오가 맥 프로 업데이트 사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임시방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신이 없다. 애플 프로세서 맥 프로라면 당연히 새로운 급의 프로세서와 과격할 정도의 새로운 폼팩터, 그리고 화려한 복귀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춘 혁신적인 제품이어야 한다. 애플은 맥 프로의 디자인과 속도로 모두를 감동시키고 MPX 모듈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맥 스튜디오가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 모델인지도 모르겠다.
애플 프로세서 맥 프로의 가격이 789만 9,000원으로 유지되고 최고 사양의 맥 스튜디오에 비해 약 30% 더 빠른 정도라면 남는 건 더 큰 케이스와 내부 확장성이다. 135만 원을 더 지출할 만큼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애플은 획기적인 성능과 폭넓은 주변기기 연결성, 완벽한 환경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듈형 시스템을 갖춘 맥 스튜디오를 이미 판매하고 있다. 따라서 맥 프로가 성능과 디자인, 확장성에서 큰 도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2가지 모델이 모두 존재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답이 영영 없을 수도 있다. 맥 프로의 업데이트 주기로 볼 때 애플이 올해 출시하는 모델은 앞으로 3년 동안 업데이트 없이 유지된다. 애플이 지금 시점에도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수준의 맥 프로라면 2026년의 시점에서 보면 어떤 상태일까? 소문이 사실이고 맥 프로가 애플이 원래 품었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름만 유지하기보다는 아예 라인업에서 제거하는 편이 애플 입장에서 최선일 수 있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