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canvas
Some text as placeholder. In real life you can have the elements you have chosen. Like, text, images, lists, etc.
Offcanvas
1111Some text as placeholder. In real life you can have the elements you have chosen. Like, text, images, lists, etc.

'세상을 바꾼 기술' IC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며

Dan Nystedt | IDG News Service 2008.09.17

세계의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 이면에 존재하는 기술인 집적회로, 즉 IC가 지난 12일을 기해 50주년을 맞았다. IC의 성공에는 이 기술을 개발한 두 인물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비웃고 매도했던 업계를 설득하기 위해 기울였던 초기의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 두 명의 남자는 바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잭 킬비와 인텔의 공동창업자였지만 IC 발명 당시는 페어챠일드 세미컨덕터 연구개발 책임자였던 로버트 노이스다.

 

IC 산업의 수익은 전세계적으로 3,000억 달러, 한화로는 3조 규모에 달한다. 또 IC가 없었다면 IT 산업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칩은 컴퓨터에서부터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전자제품의 뇌 및 신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동차와 냉장고를 비롯한 모든 전자 장치들 속에 포함되어 이들 장치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1960년의 컴퓨터는 1,000 달러 정도 하는 요즘의 컴퓨터만큼 강력하지도 않고, 방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큰 공간을 필요로 했으며, 가격은 1만 달러나 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IC 덕분에 바뀌게 되었다.

 

◇ 회로를 칩에 결합한다는 아이디어 : 1950년대에는 전자 업계에서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나 다이오스, 저항기 등의 전자 부속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회로는 여전히 크기가 컸고 값도 비쌌다.

 

이 때 킬비가 이 회로를 하나의 칩에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를 착안하게 된다.

 

킬비는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 있었던 강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1958년의 내 목표는 단순했다. 그저 단가를 낮추고 조립을 단순화해서 더 작고 안정적인 것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노이스는 트랜지스터와 다른 부속들을 하나의 실리콘 위에 결합시켜 칩을 만들었다. 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기 전, 페어챠일드는 이미 실리콘 위에 트랜지스터를 만들고는 있었지만, 서로 분리해 별도로 판매했었다.

 

◇ 세계 최초의 칩이 탄생하다 : 킬비가 1958년 9월 12일, TI 중역들 앞에서 최초의 집적 회로를 시연했다. 바로 이 날부터 지난 12일이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노이스와 다른 인텔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를 비롯한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다른 연구원들도 자신들만의 컨셉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고 있었으며, 머지 않아 자신들이 개발한 집적회로를 내놓는 데 성공했다.

 

무어는 킬비의 오리지널 IC보다 노이스의 IC가 더 실용적이고 제조하기도 쉽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발명은 특허 분쟁과 IC의 발명에 대한 공로를 둘러싼, 그리고, 더 나아가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IC의 로열티 소유권을 둘러싼 지저분한 싸움에 의해 손상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먼저 특허를 신청한 것은 킬비였지만, 노이스의 신청이 더 빨리 처리되는 바람에 최초의 IC 특허가 노이스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심사위원회에서 킬비의 연구 공책에 남아있는 기록과 날짜를 근거로 킬비에게 특허권을 주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여를 끈 법정 싸움 끝에 페어차일드측의 변호사가 이겨 다시 특허권은 노이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법정 드라마는 전자 회로를 생산 및 제조하는 최상의 방법에 대한 훨씬 더 광범위한 논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시 IC에 대한 발상 자체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공격 받았었다고 킬비는 회상한다.

 

몇몇 연구자들은 IC의 생산이 어려울 것이라고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전자 회로에 사용 가능한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기술 자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은 IC 때문에 회로 설계자들의 밥줄이 끊기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킬비와 노이스, 무어, 그리고 다른 IC 주창자들은 법정 다툼보다는 새 기술의 수호와 그 잠재력 및 효용의 전파에 바빠지게 된다.

 

이들의 소속 회사인 TI와 페어차일드는 크로스 라이선싱을 통해 재빨리 의견차를 해소하고, 1964년, IC를 탑재한 휴대용 TI 계산기 등의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발명 공로와 로열티가 연관된 분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협력이었다.

 

킬비와 노이스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평도 있다.

 

2000년 있었던 노벨 강연에서, 킬비는 반도체 발명에 있어서의 노이스의 업적을 치하했을 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코퍼레이션에서 일했던 몇몇 무명 연구원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0년 전 노이스가 죽지 않았었다면, 노이스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벨상은 사후 수여되지 않는다.

 

킬비는 또, 이날 강연 마지막에 IC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 육군과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에도 공을 돌렸는데, 주요 정부 프로젝트에 IC가 사용됨으로써 그 효능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육군에서는 냉정 당시 소련의 핵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던 미니트먼 미사일에 IC를 이용했다. NASA에서는 아폴로 달 착륙 작전에 사용했다.

 

현대의 칩이 제작될 수 있었던 데 없어서는 안 될 다른 인물들도 있는데,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그들이다.

 

이들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또, 후에 소니가 된 한 회사의 반도체 연구원이었던 레오 에사키도 있는데, 그 역시 1973년 전자의 너털 효과를 연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나누게 된다. 에사키는 IBM에서도 일했었다.

 

오늘날, IC의 기술혁신 덕에 제조업체들은 더 작고, 더 강력하면서도 가격은 더 싼 전자제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1958년 이래로 IC와 전자업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돌이켜 보며, 킬비는 이 날 강연에서 한 노벨상 수상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것은 마치 비버가 후버 댐을 같이 쓰는 토끼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과도 같다. ‘아냐, 이건 내가 지은 게 아니야. 하지만, 내 아이디어로 만든 것이지.” <IDG KOREA>

 Tags IC 집적회로 50주년

회사명 : 한국IDG | 제호: ITWorld |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3, 4층 우)04512
| 등록번호 : 서울 아00743 등록일자 : 2009년 01월 19일

발행인 : 박형미 | 편집인 : 박재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정규
| 사업자 등록번호 : 214-87-22467 Tel : 02-558-6950

Copyright © 2022 International Dat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