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지난해 여름 고성능 M1 맥스 칩이 등장하면서, 이제 칩 시장의 주요 기업들은 애플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자사의 최신 제품이 애플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지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누구도 애플이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최근 열린 CES 행사에서 인텔과 AMD, 엔비디아의 모습이 딱 이것이었다. 이들 모두가 자사 제품이 애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미 애플이 자신의 시장에 들어와 경쟁하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CPU
이들 기업 3곳 중 가장 크게 소리를 높이는 곳이 바로 최근까지 애플의 파트너였던 인텔이다. 인텔은 최근 노트북용 프로세서, 엘더 레이크(Alder Lake) 시리즈를 공개했는데, 최고 성능 모델은 '역대 가장 빠른 모바일 프로세서'라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 대상 행사에서 벤치마크 결과를 공개했는데, 같은 테스트에서 코어 i9-12900HK 프로세서가 M1 맥스를 약간 앞섰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테스트에서는 가뿐하게 M1 맥스를 제쳤다.물론 칩 제조사의 벤치마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들 칩을 맥에서는 테스트할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인텔의 자료에서는 중요하게 봐야 할 요소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전력이다. 코어 i9-12900HK 프로세서의 성능이 인상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칩이 소비하는 전력은 35W 이하에서 시작해 75W까지 치솟는다. M1 맥스보다 월등히 많다. 또한, 이 칩을 맥북 프로에 넣으면 다른 장점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애플이 성능을 더 개선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그런 장점이다.
그래픽
한편 애플 실리콘이 일종의 '경고'가 된 산업은 컴퓨터 프로세서만이 아니다. M1 맥스와 M1 프로 관련해 주목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래픽 성능이다. 과거에 애플은 오랜 기간 AMD(GPU 업체인 ATI를 2006년에 인수했다)와 엔비디아 등 주요 그래픽 카드 업체와 협업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올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애플을 겨냥했다.먼저 그래픽 카드 거인 엔비디아는 CES 키노트를 통해 포문을 열었다. 신형 RTX GPU를 이용한 노트북이 M1 맥스를 장착한 16인치 맥북 프로보다 최대 6배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단, 엔비디아가 사용한 벤치마크 중 상당수는 애플 실리콘에서 네이티브로 실행하는 것을 베타로만 지원했고 심지어 네이티브 실행이 전혀 불가능한 테스트도 있었다. 더구나 블랜더 사이클(Blender Cycles) 패키지 같은 일부 벤치마크는 애플의 메탈(Metal) 그래픽 프레임워크를 지원하지 않는다. 성능 비교에서 M1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AMD는 애플의 칩을 전력 효율성을 공격했다. 새로운 라이젠 6000 칩을 사용한 일부 노트북의 배터리 사용 시간이 영상 재생 기준 최대 24시간이라고 주장했다(솔직히 애플도 자체 배터리 성능 테스트에서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이 거대 그래픽 업체의 새 경쟁사는 애플만이 아니다. 인텔은 올해 신형 외장 그래픽 카드 '아크(Arc)'를 공개하며 GPU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인텔과 애플의 시장 잠식과 계속되는 공급망 문제로 인한 제품 부족 등을 고려하면, AMD와 엔비디아 모두 올해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낙승?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제 막 다른 시장에 진출한 애플이 어떻게 칩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일단 현실적으로 보면 애플이 기존 칩 업체에 뒤처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총은 이미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외면 외에 애플 실리콘이 이제 1세대 제품이라는 특징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즉, 애플은 지난 10여 년 동안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와 그래픽 칩을 개선하며 설계하고 꾸준하게 개량해왔다. 이렇게 차근차근 쌓은 기술을 마침내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에 적용한 것이 바로 M1이다.
이 과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실리콘에 전문성을 가진 기업을 꾸준히 인수했는데 2008년에는 애플 프로세서의 기반이 된 PA 세미(PA Semi)를 사들였고, 2018년에는 다이얼로그 세미컨덕터(Dialog Semiconductor)를 일부 부서를 합병했다. 이메지네이션 테크놀로지(Imagination Technologies) 같은 그래픽 기업에도 대규모 투자도 했다. 이러한 투자는 모두 특정한 요건에 최적화된 것이었다. 바로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최고의 성능을 내도록 한 것이다.
결국 지난 45년간 애플은 '장기 경쟁'의 절대 강자였다. 핵심 기술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수년에 걸쳐 완성도를 높인 후 공개하는 방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제품을 보면 마치 놀라운 마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공들여 개발한 결과였다.
더구나 한 가지 더 잊어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이 PC 대신 맥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성능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플이 맥 게이밍에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는 지와 관계없이 맥에서 PC로 전화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맥의 경험을 더 선호하는 사용자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설사 애플 실리콘의 성능이 경쟁사보다 떨어지는 날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리하면 지금 시점에서 애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맥 플랫폼이 경쟁사를 압도하는 사용자 경험과 만족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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