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경영진 프랭크 아조르는 역시 물량이 부족한 RTX 3000 GPU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라이젠 5900X도 실제 출시된 것이 아니라 출시 소식만 들려오는 ‘페이퍼 출시’ 제품이라고 주장한 트위터 사용자와 설전을 벌였다.
아조르는 ‘이른바 페이퍼 런치라고 불리는 현상과 수 톤의 CPU 제품을 출하했는데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응수했다. 신제품 라이젠을 기다리던 AMD 마니아들은 여기에 ‘실제로 제품을 구할 수 없다면 그게 바로 페이퍼 런치’라고 비난했다.
페이퍼 런치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설전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페이퍼 런치는 사전에 정식 등재된 단어는 아니다. 유행어나 축약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어번 딕셔너리에서는 페이퍼 런치를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기 충분치 않음’을 의미하는 신종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이 뜻이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페이퍼 런치는 경쟁사의 신제품이 받을 관심과 주목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실제로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지만 언론만 계획이나 소식을 알려서 지면에서만 언급되는 제품을 의미했다. 예를 들면 우연히 라이젠 5000이 출시되기 직전에 인텔이 11세대 로켓 레이크 데스크톱 칩의 세부 정보를 발표한 것도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로켓 레이크 CPU가 출시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라이젠 5000을 견제하기 위해 세부 정보와 IPC 개선 사항을 몇 달이나 먼저 발표한 것이다. 그저 인텔이 새 소식을 발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발표한 시점이 우연히도 페이퍼 런치의 정의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인텔 10나노 캐논 레이크도 전반적으로 페이퍼 런치라고 간주된다. 제품 생애주기 전체를 통틀어 바라보면 인텔이 이 제품을 아예 출시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UC PC에 탑재돼 판매된 적은 있지만, 인텔이 2018년에 10나노 데스크톱용 칩을 판매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버킷 리스트용 제품이라는 것이 중론에 가깝다.
‘페이퍼 런치’의 이러한 원래 정의는 RTX 3000 시리즈 GPU가 생산과 거의 동시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현상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신제품 GPU 수천 대를 더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엔비디아도 올해 안에 넘쳐나는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인텔 캐논 레이크 NUC PC와는 달리, 엔비디아는 할 수만 있다면 수십 대의 컨테이너 전부를 RTX 3000 시리즈로 채우고 싶어할 것이다.
라이젠 5000은 페이퍼 런치가 아니다
라이젠 5000이 출시된 만큼 이제 아조르가 사용자와의 내기에 질 일은 없게 됐다.만일 페이퍼 런치라는 단어의 정의가 출시 시점에 구입하고 싶지만 재고가 없어 살 수 없는 현상, 또는 모든 구매자의 수요를 바로 충족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지난 10년간 출시된 모든 PC 부품이 다 페이퍼 런치나 마찬가지다.
라이젠 2000도 바로 재고 품귀 현상을 빚었고, 라이젠 3000도 마찬가지였다. 인텔의 코어 i9-9900K와 코어 i7-8700K는 여러 달 동안 구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물론 엔비디아 RTX 3000 시리즈도 구입이 어려운 수준이다. 그 직전 세대 제품인 지포스 RTX 2000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젠 5000은 그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출시되었고, 수많은 사용자가 이 제품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트위터나 각종 포럼, 그리고 소매점에서 사진으로, 후기로 증명된다.
그러니 라이젠 5000이 페이퍼 런치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재고가 부족한 것은 안타깝지만, 페이퍼 런치는 단연 아니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