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구매한 기계식 키보드가 바밀로(Varmilo) 제품이었다. 바밀로는 탄탄한 부품과 심플한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중국 브랜드다. 굉장히 튼튼해 지금까지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최신 제품 리뷰를 통해 지난 몇 년 동안 바밀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매우 기뻤다.
디자인
미니로 VXB67은 아주 작으면서도 매력적인 키보드다. 미묘한 색조의 고품질 플라스틱과 과하지 않은 조명 효과가 매력적이다. 또 컴팩트하지만 고품질의 플라스틱 몸체와 커스텀할 수 있는 정전 용량 무접점 스위치 같은 고품질 부품을 고수하고 있다.디자인상 단점은 기능 키의 혼란스러운 위치인데, 게다가 키를 다시 프로그램할 수도 없다. 다른 소형 키보드와 비교할 때, 미니로의 학습 곡선이 더 가팔라지는 원인이다. 키보드가 사용자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키보드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점을 감수한다면 그리고 쉬운 커스텀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바밀로 미니로 키보드는 고만고만한 게임 및 타이핑 전용 키보드의 홍수 속에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지텍 MX 메카니컬이나 키크론의 Q시리즈 같은 실용적인 디자인이나 아니면 조명 효과가 화려한 게이밍 키보드와 비교하자면 미니로는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플라스틱 케이스는 흰색을 기본으로 하며, 여기에 키를 감싸는 민트 그린색이 덧씌워졌다. 컴퓨텍스에서 출시된 프랙탈 디자인(Fractal Design)의 민트색 PC 케이스 ‘테라(Terra)’ 옆에 두면 멋질 것 같다. 이 유칼립투스 버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홍색 버전의 멘도자(Mendozae)도 있다.
멋진 디자인은 키보드의 다른 부분에도 적용됐다. 오른쪽 하단의 로고에 조명이 들어오고(원한다면 끌 수 있음), 민트색 뒷면에는 제조사와 제품 정보가 음각으로 새겨진 금속 배지가 있다. 이 밖에 2단으로 된 키보드 다리는 매우 놀라웠다. PBT 대신 ABS 소재를 사용한 키캡은 살짝 아쉬웠다.
키 배열은 인기 있는 65% 배열의 변형인데, 몇 가지 키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삭제 키가 오른쪽 상단이 아닌 화살표 키 바로 위에 있다. 일부 기능이 매핑된 키도 약간 이상하다. 상단의 F 키는 그나마 눈에 잘 띄지만, 누가 L에서 프린트 스크린 키를 찾을 수 있을까? 또 T키부터 P키에 미디어 관련 기능이 있으리라 생각할까? 조명 제어나 블루투스 페어링 등 더 복잡한 하드웨어 기능은 사용 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면 이 키보드에는 전원 스위치가 없다. 사용하지 않은 지 30분이 지나면 자동 절전 모드가 되고, 스페이스 바를 2번 누르면 다시 켜진다. 흰색 LED 조명을 끄려면 Fn + X를 눌러야 하고, 새 블루투스 기기를 연결하거나 기존에 페어링된 기기를 바꾸려면 Fn + Q, W 또는 E를 눌러야 한다. 그러면 1, 2, 3 숫자 키에 표시등이 깜빡이는데, 실제로 누른 키와 다른 키에 불이 들어온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맨 위의 행을 기본 숫자키에서 기능 키로 전환하려면 Fn + Page Down을 눌러야 한다. 이 사용법은 키캡 자체에는 쓰여 있지 않다. 그런데 제품 박스 안에도 설명서가 동봉돼 있지 않다. 바밀로의 지원 사이트에서 직접 설명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이다.
아마도 가장 큰 단점은 이 사전 프로그램돼 있는 기능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2023년 출시된 제품이다. 호평을 받은 G.스킬 KM250(G.Skill KM250) 같은 저가형 키보드라면 용납할 수 있겠지만, 바밀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편안하고 직관적인 레이아웃이 사용성에 가장 핵심인 소형 키보드라면 더욱 용서가 어렵다. 이 가장 큰 단점만 없었다면 아주 훌륭한 키보드였을 것이다.
스위치
이 키보드에는 바밀로에서 독점 설계한 스위치가 탑재돼 있다. 바밀로의 ‘자스민(Jasmine)’ 스위치는 상당히 독특한 정전 용량식 무접점 스위치다. '정전 용량식'은 스위치와 회로 기판 사이에 슬라이딩 스템(sliding stem)과 고무돔을 넣은 설계를 말하며, PFU의 해피해킹 키보드가 인기를 얻은 비결인 독특한 키감을 낸다.물론 바밀로의 정전 용량 스위치는 조금 다르다. 고무돔이 없고, 각 스위치는 자체 제작한 체리 MX(Cherry MX) 스타일의 하우징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의 정전 용량식이란 스템과 리프 설계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MX 스타일의 스위치처럼 직접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만 닿아도 압력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은가? 짧고 쉽게 요약하자면, 이 키보드에 탑재된 EC V2 스위치는 매우 부드럽다. 바밀로의 자스민 축은 단순히 키보드 색상과 어울리게 지은 이름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입력되는 리니어 축을 의미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스위치보다 조금 더 가볍게 느껴진다. 키를 꽉꽉 누르지 않고 가볍게 타이핑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이 스위치가 만족스러울 터다.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슷한 가격대의 대부분 키보드에는 스위치를 사용자가 커스텀할 수 있는 핫스왑 스위치 소켓이 제공되는데, 바밀로 미니로에는 이 선택지가 없다. 바밀로가 인색한 것은 전혀 아니다. EC 스위치는 다른 MX 스타일 스위치 설계와 호환되지 않는다. 스위치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원한다면 표준 MX 스위치, 핫스왑 소켓, RGB 조명, 2.4GHz 무선 동글을 지원하는 조금 더 비싼 미니로 모델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미니로의 자스민 축은 매우 뛰어나다. 박스형 스템, 플라스틱 몸체, 플레이트와 PCB 사이의 실리콘 덕분에 이 키보드는 저소음 스위치가 없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소음이 적다. EC V2 스위치나 핫스왑 소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은 아쉬웠다.
경쟁 제품과 비교한다면?
바밀로 미니로 VXB67은 웹사이트에 110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라와 있으며, 여러 정전 용량식 스위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표준 MX 스위치, 핫스왑 소켓, 무선 USB 동글 연결, RGB 조명 등을 지원하는 모델은 5달러 더 비싸다. 하지만 미국까지 배송되는 비용이 상당히 든다는 점을 유의하라. 필자는 총 150달러가 들었다. 아마존이나 전문 사이트(MechanicalKeyboards.com) 등에서 서드파티 벤더를 통해 구매하면 아마도 어떤 스위치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110~130달러로 예산을 줄일 수 있다.미니로는 중급 가격대 제품에 속하며, 키크론 K6 프로 같은 비게임용 무선 키보드와 경쟁한다. 이 맥락을 고려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분명하다. 매우 예쁘고 품질은 좋지만 프로그래밍을 포함해 커스텀할 여지가 거의 없는 키보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매력은 덜하지만 마음껏 커스텀할 수 있는 키보드를 원하는가?
이 질문은 사용자가 직접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핫스왑 옵션 대신 정전 용량 스위치를 채택한 것은 일단 제쳐두고, 프로그래밍 옵션을 없앤 바밀로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키보드를 자신의 방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가격대의 모든 키보드가 최소한 몇 가지의 프로그래밍 선택지를 (심지어 로지텍마저도)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단점을 수용할 수 있다면 바밀로 미니로 VXB67은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가방에 편안하게 잘 어울리는 작고 뛰어난 키보드다.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주는 키보드를 기대하지만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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