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애플에 대해 시큰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아는 모든 애플 팬은 애플의 신제품에 대해 불만과 걱정, 곤혹감을 표한다. 오래 전부터 익숙한 애플 팬들의 환호와 흥분을 요즘은 거의 들을 수 없다. 사람들은 포트와 동글에 대해 불평하고, 햅틱 버튼과 터치 바를 누가,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신제품이 나와도 과거 모델로 눈을 돌린다. 애플 기기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멋진 일들에 대해 떠들어 대지도 않는다.
몇 년 동안 애플의 모바일 혁신 속도가 둔화되면서 새로 출시하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모델의 업그레이드를 부추기는 매력도 점차 떨어졌다. 예를 들어 아이폰 6s의 3D 터치는 어느 모로 보나 그렇게 열광할 만한 기능은 아니다. 맥의 경우도 2014년 OS X 요세미티부터 맥 OS에 흥미로운 기능이 도입됐지만 그 외에는 몇 년 동안 주목할 만한 혁신은 없었다.
게다가 올해 아이폰 7은 오디오 포트를 제거한 탓에 어댑터를 따로 구입해야 하고,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를 보거나 경우에 따라 전화를 하는 동안에는 아이폰을 충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애플이 오디오 잭 시대를 끝낼 것이라고 약속했던 무선 이어버드는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설계나 제조에 뭔가 큰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이폰 7이 표방한 "혁신"은 경쟁 관계의 고급 안드로이드 모델들이 오래 전부터 제공해온 방수 기능,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더 얇은 두께와 빠른 처리 성능, 높은 품질의 디스플레이였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더 이상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이패드는 더 암울하다. 아이패드 프로는 아티스트와 건축가 외에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올해에는 신제품 없이 아이패드 프로의 소형 버전만 나왔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가 서피스 프로를 내놓자 그냥 반사적으로 출시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아이패드에 착탈식 키보드를 추가한 것을 혁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애플 워치는 지금 구입 가능한 최고의 스마트워치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기기다. 최신 워치OS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 편의성이 높아졌지만 필자가 아는 대부분의 애플 워치 사용자들에겐 딱히 애플 워치를 사용하는 이유는 없다.
iOS에는 주차 위치 기억하기와 같은 여러 가지 소소한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이상한 UI 변경으로 인해 일부 작업은 오히려 더 불편해지기도 했다. 신형 맥북 프로와 그 해괴한 터치 바는 애플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확신만 더해 줄 뿐이다. 특히 여전히 라이트닝 커넥터와 USB-A 케이블을 사용하는 아이폰 7이 출시되고, 한달 후에 나온 신형 맥북 프로가 USB-C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보면 그 느낌은 더 강해진다. 이제 애플의 모바일 그룹과 컴퓨터 그룹이 서로 단절된 채로 일하는 걸까?
결국 사용자들에게 남는 인상은 최고의 제품을 보유한 애플이 아니라 비틀거리는 애플이다. 애플 특유의 과장법은 여전히 온갖 사소한 것들을 놀랍고 혁신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지금 이러한 극단적인 과장은 애처롭게 들릴 뿐이고, 적어도 자신이 한 말은 지켰던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역할도 더 이상 못한다. 애플 사용자 역시 극단적인 과장에는 염증을 느낀다.
그 사이 안드로이드 경쟁 제품들은 더 좋아졌다. 역설적이게도 애플 수준으로 하드웨어 품질을 높이고 안드로이드 OS의 기능을 대폭 다변화하고 강화하는 데 집중한 덕분이다. 여전히 애플이 앞서지만 그 간격은 좁아지는 중이다.
이제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생태계, 즉 애플 제품을 서로 손쉽게 연계할 수 있는 기능이다. 최근 생태계 개선의 대부분은 핸드오프(Handoff) 기술을 활용한다. 핸드오프 기술을 통해 아이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맥에서 받고, 아이패드에서 아이폰의 SMS를 통해 문자를 보내고, 맥과 iOS 기기 사이에서 텍스트를 복사하고, 근처의 사용자와 파일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모르거나 알아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애플 하드웨어 환경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능을 알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핸드오프 기능은 사소한, 즉 놀라울 것 없는 기능일 뿐이다.
게다가 이 생태계마저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iOS 기기와 아이튠즈의 관계는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혼란스럽다. 여러 차례의 아이튠즈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는 변함이 없다. 애플이 기기의 더 많은 부분에 아이클라우드를 융합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튠즈와 아이클라우드의 각자 노선 백업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북마크, 메일 규칙, 와이파이 연결 등의 아이클라우드 동기화는 유용하지만 문제가 자주 발생해서 사용 중인 기기에 따라 예전 설정이 다시 나타나거나 기존 설정이 사라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클라우드와 스트리밍에 관한 애플의 행보(아이튠즈와 아이워크,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와 홈킷, 애플 TV와 뉴스 등)는 이해할 수 없고 그 방향도 불확실하다.
또 다른 현상은 하드웨어 생태계에서의 철수다. 애플은 디스플레이와 와이파이 라우터를 단종시켰다. 애플은 한때 첨단을 내세웠던 이 제품들을 그대로 방치했지만, 썬더볼트 디스플레이의 내장형 멀티포트 도크, 에어포트 익스트림의 손쉬운 네트워크 연결과 관리 등은 지금까지도 딱히 대적할 제품이 없다. 키보드, 트랙패드, 마우스는 아직 만들지만 올해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애플이 계속 고수하는 한 가지 확실한 하드웨어 분야는 바로 동글이다. 애플은 동글을, 그것도 아주 많이 만든다.
애플은 진화해야 하지만 과연 진화를 위한 좋은 계획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애플 팬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큰 걱정거리다. 지금은 혼란스럽고 임기응변식의 소소한 변경들, 속도 개선과 같은 뻔한 변화만 있을 뿐이고 하드웨어와 서비스 단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달리 말하자면 애플의 광채는 군데군데 흐려지는 중이고 애플의 핵심 제품들은 탄성과 방향을 잃은 듯하며 경영진은 판타지 세계에 빠진 듯하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 체제지만, 그 외의 다른 모든 정치 체제보다는 낫다"라는 말을 아는가? 필자 생각에는 애플 사용자들이 애플 제품을 이런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애플 제품은 최악의 컴퓨팅 기기지만, 그 외의 다른 모든 기기보다는 낫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쩐지 애플이 죽어가던 1990년대 후반과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해도, 최고이면서 열정은 느낄 수 없는 회사가 될 위험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폰 7, 아이패드 프로 또는 애플 워치를 구매해도 별다른 흥을 느끼지 못한다. 전에 사용했던 것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애플은 사라진 재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의 모바일 기기는 PC와 같은 상황, 즉 사양을 개선하고 외관을 단장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근본적으로 더 이상 할 게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 완벽을 기한다 한들 즐거움은 없다. 필자는 아직 더 많은 재미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지만 희망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물론 필자 혼자만이 아니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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