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병원의 삐삐를 대신할 수 있을까?
에모리 서던 대학 병원의 의사들은 페이저(pager), 일명 삐삐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진력이 났다. 대신 블랙베리, 아이폰, 안드로이드에서 호출 메시지를 받고 싶어했다. 아름다운 터치스크린 위에서 수많은 메시지를 교환하고 멋진 앱을 실행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에 비해 삐삐는 마치 골동품처럼 보였다.
의사들은 병원의 IT부서에서 왜 휴대폰으로 호출신호를 보낼 수 없는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다. 아틀란타 소재 에모리 서던 대학의 메시징 팀 수석 책임자인 제이 플래너건은 이에 대해 “해결해야 할 내재적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플래너건은 호출 메시지를 휴대폰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줄곧 연구해왔다. 현재 이 대학 병원의 의료진이 대부분 사용하는 6,000여대의 호출기를 폐기하는 3년 프로젝트가 중간 단계에 이르러 있다. 850명의 사용자가 이 프로젝트의 시범 운용 단계에 현재 참여 중이다.
시간이 3년이나 걸리는 이유가 뭘까? 병원(캠퍼스) 내의 불규칙한 전파 커버리지, 메시징 신뢰성, 디바이스 교체 정책 등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아서다.
이 대학의 호출 메시지 사업자인 앰컴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기술 상의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앰컴의 크리스 하임 CEO는 “스마트폰이 의료계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면서 “앰컴 모바일 커넥트에 앞으로 2~3년 동안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들은 신기술에 거부감을 갖는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스마트폰에 대해서만큼은 이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해 시장조사단체인 맨해튼 리서치는 미국 내 의사 중 64%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맨해튼은 이 수치가 2012년에는 81%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의사의 상징은 청진기와 함께 지능형 모바일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퍼 스마트 스마트폰
에모리 서던 대학 병원의 의사들은 스마트폰을 사랑한다. 초기 의학 저술 검색 컬렉션인 ‘Hippocrates’(4.99달러)는 인기 절정의 스마트폰 앱 중 하나다. 여기서는 히포크라테스 전집(Hippocratic Corpus)도 찾을 수 있다. 의사들은 다른 의학 참조 앱들도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보아 스마트폰은 페이저에 비해 장점이 많다. 우선 스마트폰은 빌트-인 암호가 있어 페이저보다 안전하다. 스마트폰은 메시지를 수신도 하고 송신도 할 수 있지만 페이저는 메시지를 수신만 한다. 스마트폰이라면 메시지를 수신했는지, 심지어 조회했는지도 관리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스마트폰이 이동 통신 커버리지 밖에 있더라도 일단 커버리지 내로 들어오게 되면 메시지를 바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페이저의 경우 커버리지 밖에 있다면 원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하임 CEO는 “페이저는 메시지를 한번 보내면 그뿐이다. 단지 보내고 수신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은 일체의 발송 메시지에 대한 추적 기록을 IT 측에 제공한다. 병원 호출 메시지는 긴급인 경향이 있어 의사가 호출 메시지를 받았는지 여부는 지극히 중요하다. 만약 받지 않았다면 병원에서는 다른 의사에게 메시지를 발송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아울러 상황 변환에 따라 환자 증상 보고를 메시징 관점에서 이용할 수 있다.
관건은 신뢰성
그렇지만 페이저는 여러 해 동안 안정적인 것으로 검증되어온 기술이다. 반면 새롭게 유행 중인 스마트폰에는 해결해야 할 미묘한 문제들이 있다. 병원 호출 메시지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스마트폰이 신뢰성 테스트를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플래너건은 “가장 우려했던 바는 여러 이통사와 전화기들에 대한 신뢰성이었다”면서 “디바이스의 종류에 관계 없이 의사는 반드시 메시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환자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라면 호출 메시지가 시급을 다투는 문제여서 신속한 전달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플래너건은 앰컴과의 서비스-수준 합의서에서 메시지를 스마트폰에서 30초 미만의 시간 내에 수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플래너건과 앰컴은 의사들이 스마트폰으로 경보 메시지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페이저는 항상 허리 부근에 부착돼 있어 분실할 수가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지갑에 넣어두거나 아니라면 책상 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더욱 나쁜 점은 스마트폰에서는 메시지 신호를 단 1회만 보내는 게 보통이어서 스마트폰 소유자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앰컴은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기능을 만들었다. 앰컴의 호출 시스템인 모바일 커넥트는 관리자가 설정을 번복(override)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긴급으로 표시된 메시지는 (스마트폰이 무음 모드일 때도) 누군가가 이를 인식할 때까지 가청음이 계속 울리도록 한다.
커버리지 문제
플래너건은 사람들이 모두 버라이존만 이용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페이저를 전부 폐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페이저 교체 프로젝트가 수년간 진행되는 이면에는 여러 이통사의 전파 커버리지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걸림돌이 작용하고 있다.
버라이존이 AT&T나 스프린트, T-모바일보다 더 낫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냥 서던 대학의 시스템이 이전부터 버라이존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버라이존의 전파 커버리지는 병원 전역에 걸쳐 철저히 테스트가 됐다. 심지어 전화기에 손상이 있을 경우 교체 전화기를 나눠줄 수 있도록 버라이존 직원 한 명이 캠퍼스에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에모리 서던 대학교는 버라이존 스마트폰으로의 메시지 전달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 밖의 이통사, 특히 아이폰 독점 계약을 한 AT&T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메시지가 확실히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향후 2~3년 동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임 CEO는 “이통사에 따라 이동 전화 커버리지가 병원 전체 영역을 아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안에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두 번째 방식으로 이를 전송해 스마트폰에 이르게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반 이통사 및 디바이스의 메시징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으려면 플래너건과 하임은 이들 문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해결해야만 한다. 하임은 “이용자를 모두 스마트폰으로 단기간에 전환시키겠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폰 악재
올해 여름 애플은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아이폰 4를 발표했고 사람들은 이를 사려고 줄을 섰다. 여기에는 의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몇 주 후 안테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애플은 이에 대해 무성의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언론에서 ‘안테나게이트’라 불리며 궁지에 몰리자 그제서야 스티브 잡스 CEO가 나서 기자회견을 갖고 마음에도 없는 ‘고해성사’를 했다.
그 당시 앰컴은 모바일 커넥트의 아이폰 부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고 프래너건도 시범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아이폰을 준비 중이었다. 에모리 서던 대학교의 스마트폰 전환 프로그램에서는 신뢰성이 중심적 문제였으므로 안테나게이트 소식이 반가울 리 없었다.
애플이다 보니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안테나게이트는 진실이라기보다는 과장에 가까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는 유서 깊은 페이저에 비해 스마트폰은 아직 유아기도 벗어나지 못한 기기라는 냉정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
플래너건은 “그건 우리가 이제 막 다루려 하는 문제이다. 의사들은 블랙베리, 아이폰에 이어 이젠 안드로이드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또 있다. 스마트폰은 튼튼한 페이저보다 더 잘 부서지는 경향이 있다.
페이저가 부서지면 플래너건은 예비 페이저를 의사에게 즉시 지급한다. 그러나 아이폰을 동일한 전화 번호로 신속히 구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는 “현재 이에 대한 최상의 해법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말한다.
페이저 이외의 것이 다 안 된다고 했을 때 신뢰성이 담보된 페이저로 언제든 회귀할 수 있을까? 예상컨데 그렇지 않다. 플래너건은 그런 출구는 이미 닫혀버렸다고 확언했다. 위 시범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페이저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edito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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