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4

파이 데이 기념 : 간추린 원주율의 역사

Sarah Jacobsson Purewal | TechHive
누구나 원주율이 3.14…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값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주율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으로, 원의 둘레와 지름 간의 비율이다. 그렇다면 누가 발견했을까? 파이 데이를 기념해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이라고 알려진 원주율이 어떻게 나왔는지 간략하게 살펴 본다.


 
역사적 기록
정확하게 누가 원의 둘레와 지름 간에 일정한 비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류 문명은 기원전 2550년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550년 경에 세워진 것으로, 둘레 1760큐빗, 높이 280큐빗의 대형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의 비율은 1760/280으로, 이는 원주율의 두 배와 거의 같다. 여기서 큐빗은 약 18인치 정도인데, 사람의 팔 길이를 단위로 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이집트 학자들은 이 비율이 상징적인 이유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원주율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증거는 기원전 1900년 경의 것으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람들이 개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빌로니아는 원주율을 25/8, 3.125로 추정하고 있었으며, 이집트는 256/81, 3.16 정도로 잡고 있었다.
 
정확한 원주율을 계산해 낸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287~212 BC)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원 내의 다각형을 통해 이 계산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파이값을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우 근사한 값을 얻어냈는데, 96면 다각형을 이용해 3.1485의 평균값을 얻었다.
 
중국의 수학자 주종지(AD 429~500)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원주율의 근사치를 얻어 냈는데, 1만 2288면 다각형을 사용해 355/133이란 값을 계산해 냈다.
 
원주율의 근사치는 기독교 성경 열왕기에도 나오는데, 열왕기 7장 23절은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큐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큐빗이요, 주위는 삼십 큐빗 줄을 두를 만하며”라고 되어 있다.
 
15세기 인도의 수학자 마드하반이 현재는 마드하바 라이프니츠 공식으로 알려진 공식을 발견하는데(이 공식은 17세기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에 의해 재발견됐다). 이 공식은 4에 수렴하는 무한대의 수열을 만들어낸다. 마드하반은 소수점 11자리까지 계산해 냈다.
 
이후 1707년 웰시의 수학자 윌리엄 존스가 처음으로 그리스 문자 파이(π)를 원주율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했다. 하지만 파이 문자는 1737년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이 기호는 그리스어의 지름이란 단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컴퓨터의 발명 이전에 가장 정확한 원주율을 계산한 사람은 D. F. 퍼거슨으로, 1945년 소수점 620자리까지 계산했다. 1874년 윌리엄 섕크가 707자리까지 계산했지만, 이중 527자리만 정확한 것이었다.
 
물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파이를 계산하는 데는 이제 아무런 한계가 없어졌다. 퍼거슨이 1947년 탁상용 계산기로 710자리까지 계산한 것을 시작으로, 1999년 타카하시 카나다는 히타치 SR8000으로 206,158,430,000자리까지 계산했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2011년 10월 19일 시게루 콘도가 수행한 계산으로, 콘도는 알렉산더 이의 y-cruncher 프로그램을 사용해 10조 자리까지 계산했다. 
 


2013.03.14

파이 데이 기념 : 간추린 원주율의 역사

Sarah Jacobsson Purewal | TechHive
누구나 원주율이 3.14…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값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주율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으로, 원의 둘레와 지름 간의 비율이다. 그렇다면 누가 발견했을까? 파이 데이를 기념해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이라고 알려진 원주율이 어떻게 나왔는지 간략하게 살펴 본다.


 
역사적 기록
정확하게 누가 원의 둘레와 지름 간에 일정한 비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류 문명은 기원전 2550년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550년 경에 세워진 것으로, 둘레 1760큐빗, 높이 280큐빗의 대형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의 비율은 1760/280으로, 이는 원주율의 두 배와 거의 같다. 여기서 큐빗은 약 18인치 정도인데, 사람의 팔 길이를 단위로 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이집트 학자들은 이 비율이 상징적인 이유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원주율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증거는 기원전 1900년 경의 것으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람들이 개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빌로니아는 원주율을 25/8, 3.125로 추정하고 있었으며, 이집트는 256/81, 3.16 정도로 잡고 있었다.
 
정확한 원주율을 계산해 낸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287~212 BC)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원 내의 다각형을 통해 이 계산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파이값을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우 근사한 값을 얻어냈는데, 96면 다각형을 이용해 3.1485의 평균값을 얻었다.
 
중국의 수학자 주종지(AD 429~500)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원주율의 근사치를 얻어 냈는데, 1만 2288면 다각형을 사용해 355/133이란 값을 계산해 냈다.
 
원주율의 근사치는 기독교 성경 열왕기에도 나오는데, 열왕기 7장 23절은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큐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큐빗이요, 주위는 삼십 큐빗 줄을 두를 만하며”라고 되어 있다.
 
15세기 인도의 수학자 마드하반이 현재는 마드하바 라이프니츠 공식으로 알려진 공식을 발견하는데(이 공식은 17세기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에 의해 재발견됐다). 이 공식은 4에 수렴하는 무한대의 수열을 만들어낸다. 마드하반은 소수점 11자리까지 계산해 냈다.
 
이후 1707년 웰시의 수학자 윌리엄 존스가 처음으로 그리스 문자 파이(π)를 원주율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했다. 하지만 파이 문자는 1737년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이 기호는 그리스어의 지름이란 단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컴퓨터의 발명 이전에 가장 정확한 원주율을 계산한 사람은 D. F. 퍼거슨으로, 1945년 소수점 620자리까지 계산했다. 1874년 윌리엄 섕크가 707자리까지 계산했지만, 이중 527자리만 정확한 것이었다.
 
물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파이를 계산하는 데는 이제 아무런 한계가 없어졌다. 퍼거슨이 1947년 탁상용 계산기로 710자리까지 계산한 것을 시작으로, 1999년 타카하시 카나다는 히타치 SR8000으로 206,158,430,000자리까지 계산했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2011년 10월 19일 시게루 콘도가 수행한 계산으로, 콘도는 알렉산더 이의 y-cruncher 프로그램을 사용해 10조 자리까지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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