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IT 산업의 주요 트렌드와 성공 사례 목록을 만드는 것은 실패 사례 목록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 2016년은 많은 아이디어가 폐기되고 많은 제품이 생존에 실패한 힘든 한 해였다. 그러나 가상 현실부터 초고속 그래픽 카드까지 멋진 소식도 많았다.
2016년에 대성공을 거둔 기술과 위대한 업적, 화려하게 부활한 아이템들의 목록을 보면서 지금 기술 업계에 꼭 필요한 낙관주의를 되살리고, 2017년에 성공할 분야도 전망해보자. editor@itworld.co.kr
진정한 차세대 그래픽
4년이나 걸렸다. 2016년에는 엔비디아와 AMD 모두 28nm공정에서 16nm(엔비디아 파스칼 GPU), 그리고 14nm(AMD 폴라리스 GPU)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는? 보편적인 가격대의 가상 현실 지원 그래픽 카드라는 꿈이 가능해졌다.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은 250달러, AMD의 라데온 RX 480은 200달러라는 놀라운 가격에 출시됐다. 1,000달러짜리 GTX 타이탄 X의 3분의 1 가격으로 대등한 성능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문 가상현실 콘텐츠를 1,000달러 미만 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고, 4K 게임을 초당 60프레임에 즐길 수 있게 됐다. PC 게이머에게 2016년은 정말 풍성한 한해였다.
PC와 엑스박스의 통합
마이크로소프트가 몇 년 전부터 언급하던 엑스박스와 PC 게임 통합이 마침내 2016년에 현실화됐다. 이제 엑스박스 플레이 애니웨어(Play Anyware)를 통해 엑스박스 원이나 PC에서 특정 마이크로소프트 게임(포르사 호라이즌 3(Forza Horizon 3), 기어 오브 워 4(Gears of War 4) 포함)을 즐길 수 있다. 저장된 게임이나 진행 상태는 두 플랫폼 간에 매끄럽게 동기화된다(서드 파티 게임 발행사 지원도 예정되어 있음). 킬러 인스팅트(Killer Instinct), 로켓 리그(Rocket League) 등을 통해 크로스 플랫폼 멀티플레이어도 개발되고 있으며 PC 제조업체들도 엑스박스 원 무선 컨트롤러 지원 계획할 수 있게 됐다. PC와 콘솔에서 모두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리밍 번들의 부상
슬링 TV가 2015년에 스트리밍 채널 번들을 도입한 후, 올해는 플레이스테이션 뷰(Vue)가 폭넓게 확장되고 AT&T의 다이렉TV 나우(DirecTV Now)가 출범하면서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훌루(Hulu) 역시 2017년에 이 움직임에 동참할 것임을 밝혔다. TV 채널 번들이라는 개념이 금방 사라질 일은 없지만, 이제 적어도 장기 계약, 고가의 셋톱박스 임대료, 뒤통수 치는 프로모션, 귀찮은 계약 해지 절차에서는 해방될 수 있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소비자는 스트리밍 번들을 통해 예산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라즈베리 파이의 폭발적 인기
지난 9월 라즈베리 파이 설립자 에벤 업튼은 값싼 미니 해킹 컴퓨터인 라즈베리 파이를 처음 만들었을 당시만 해도 1만 개 정도나 팔릴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업튼이 새삼 이런 추억담을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닌 높은 판매량 떄문이다. 라즈베리 파이는 5년도 되지 않아 1,000만 개가 팔린 초대작 히트 제품이다. 기본 상태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부품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파이로 음성 제어 전자레인지, 휴대용 게임 에뮬레이터, 값싼 스트리밍 셋톱 박스,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진 액자, 하이파이 오디오 플레이어 등을 만든 것을 보면 왜 그렇게 많이 팔렸는지 납득이 된다.
닌텐도, 설 자리를 찾다
참담한 위 유(Wii U) 판매량과 3DS 휴대용 게임기의 판매량 하락세 사이에 끼어 힘든 몇 년을 보낸 닌텐도가 2016년 마침내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닌텐도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실상 게임 개발과는 거의 관계가 없음에도 다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독자적인 게임으로는 슈퍼 마리오 런(Super Mario Run)이 최초 히트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콘솔 영역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던 닌텐도 클래식은 재고가 동나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닌텐도의 연말 수요 예측 실패 탓도 있음) 향후 출시 계정인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는 콘솔 게이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17년에 어떤 성적을 낼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일단 닌텐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은 분명하다.
10억 대의 아이폰(그리고 엄청난 수익)
아이폰의 전성기는 지났다는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폰의 총 누적 판매량이 지난 7월 10억 대를 돌파했다. 현대 스마트폰 시대를 연 제품에 걸맞는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애플이든 다른 어느 회사든 한 가지 기술 제품이 이처럼 성공하고 많은 변화를 이끈 다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간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가상현실의 현실화
몇 년 동안의 전시회 시연,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홍보, 그리고 필연적인 출시 지연 끝에 2016년, 가상 및 증강 현실 헤드셋이 마침내 현실 제품으로 나왔다. 3월에 오큘러스 리프트가, 4월에는 HTC 바이브가 출시됐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이 10월 그 뒤를 따랐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증강 현실 헤드셋은 소비자용 제품은 아니지만 3,000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는 개발자라면 역시 구매할 수 있다. 이들 기술이 주류 시장으로 부상하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리겠지만,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미래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데스크톱 브라우저 전쟁, 크롬의 독주
2015년까지는 구글 크롬이 가장 인기 있는 데스크톱 웹 브라우저라고 확언할 수는 없었다. 넷 애플리케이션(Net Applications) 지표에서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선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5월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크롬이 브라우저 전쟁에서 확고부동한 선두로 올라선 것이다. 수 개월 후, 크롬은 넷 애플리케이션 추산에서 점유율 50%를 초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발디(Vivaldi)나 마이크로소프 엣지 같은 새로운 대안이 데스크톱 브라우저 시장에 흥미를 더하고 있지만, 그래도 크롬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AI 알파고의 이세돌 격파
인공지능은 2016년의 핵심 테마였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같은 기술 대기업들이 모두 머신러닝과 가상 비서 기술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가장 선명하게 알린 주인공은 다름아닌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고였다. 알파고는 빼어난 바둑(Go) 실력으로 세계 챔피언인 이세돌을 게임 스코어 4:1로 격파했다. 딥마인드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자회사다. 오래 전부터 연구자들은 첫 수에만 361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바둑이 인공지능에 있어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이세돌은 알파고의 압도적 승리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기술에게는 승리였지만 인간에게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사건이었다.
AMD 라이젠(Ryzen)의 위용
새로운 젠(Zen) 아키텍처 기반의 라이젠 칩이 나오면 AMD는 CPU 시장의 패자라는 멍에를 벗어날 수 있을까. 최초의 소비자용 라이젠, 코드명 서밋 릿지(Summit Ridge) 8코어 칩은 초기 벤치마크에서 인텔의 기함 코어 i7 6900K CPU를 앞선 성능을 보였고 전력 소비량도 훨씬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AMD는 가격, "부스트" 속도 등 라이젠에 대한 핵심 정보 일부를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만으로도 CPU 시장이 다시 경쟁 체제로 돌아갈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라이젠이 2017년 1분기 공식 출시된 후 그간의 화려한 홍보 문구에 맞는 실제 성능을 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