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IT 부서는 기업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다. 컴퓨터는 1940년대 영국에서 나치의 암호를 해독하고 미국에서는 대포 발사대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때로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 신기술 도입하는, 좀 더 보수적인 태도가 유익할 때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나서야 하기 마련이다. 다양한 기업 IT 범주에서 개척자들을 추적해 보았다. editor@itworld.co.kr
최초로 컴퓨터를 업무에 활용한 기업 : J. 라이온스(J. Lyons & Co.), 1951년
특이하게도 영리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최초의 컴퓨터는 항공우주나 방위산업 또는 첨단 산업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1951년 영국의 식품 및 음식 공급 기업에서 첫 선을 보였다.
J. 라이온즈는 40년대 말 2명의 임원을 미국으로 보내 컴퓨터의 잠재력을 평가했으며, 경영진은 미국이 제공하는 것을 구매하기 보다는 영국 산업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여 캠브리지(Cambridge)와 EDSAC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자체 버전인 LEO를 이용해 제과점의 운영 관리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LEO가 라이온즈에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 컴퓨터는 학문적인 용도 외에도 적용 분야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Image courtesy MaltaGC/Wikipedia
최초로 메인 프레임을 사용한 민간 기업 : GE, 1954년
GE(General Electric)는 기업용 컴퓨터로 설계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군사 및 학문 분야에서만 사용했던 UNIVAC I을 민간기업 최초로 구매한다. 당시 GE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버튼 그래드는 자신이 최신 GE 기기 공장에서 제조 제어 활동을 수행하던 UNIVAC의 첫 상용 애플리케이션용 코드를 어떻게 작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작성했다. 혼자서 일하던 그래드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회계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개발하던 팀보다 빨리 일할 수 있었다. 또한 자동화를 높여 비용을 낮추는 업무를 진행했다. Image courtesy ArnoldReinhold/Wikipedia
컴퓨터 예약을 이용한 최초의 항공사: 트랜스 캐나다 에어라인(TCA), 1963
아메리칸 에어라인(American Airlines)은 자동화 부문에서 유명한 개척자다. 탑승권 예약을 지원하기 위해 1946년 전기 기계식 리저바이저(Reservisor)를 개발했으며, 1953년도에 이미 IBM과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SABRE가 될 시스템의 개발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SABRE 개발에 10년 이상이 소요되었으며, 그 동안 트랜스 캐나다 에어라인은 영국 전기 기업 페란티(Ferranti)와 함께 수 개월 앞서 자체 개발한 리저벡(ReserVec) 시스템을 시장에 선보였다. SABRE와 마찬가지로 리저벡은 다른 항공사들이 구매할 수도 있는 제품으로 기획됐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리저벡이 완전한 고객 정보를 저장하지 않아 수동 처리 또는 보완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Image courtesy abdallahh/Flickr
최초로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한 기업: 벨 캐나다(Bell Canada), 1969년
르네 파도와 레미 란도는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최초의 전자 스프레드시트인 메인 프레임 애플리케이션 LANPAR를 작성했으며, 최초의 고객이었던 벨 캐나다의 회계사들은 주말 동안 해당 기업의 예산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었다.
LANPAR는 다른 고객도 있었지만 메인 프레임 시대가 지나가면서 대부분 잊혀졌다.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스프레드시트인 비지칼크(VisiCalc)가 독립적으로 개발되기는 했지만 처음에 참조 보내기와 자연율 계산 등 LANPAR의 주요 기능이 누락되어 있었다. LANPAR는 1092년에야 특허 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Image courtesy Bell Canada long distance equipment. Petunia_2011/Flickr
최초로 해킹을 당한 기업: AT&T, 1960년대 말
(전자 시스템의 무허가 접속권을 얻는 사람들을 칭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최초의 해커는 1960년대 말의 전화 프리커(Phreaker)였다. 프리킹(Phreaking)은 AT&T의 제어 발신음을 재현하여 접속하고 무료 통화를 이용하기 위해 전화기에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프리커는 맹인 십대들이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절대 음감이었다. 하지만 일명 캡틴 크런치라는 별명의 존 드레이퍼는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기기인 블루박스(Blue Box)를 개발하여 프리킹의 대중화에 일조했다. 초기 사용자로는 단순한 장난으로 참여했던 스티브 워즈니악(그는 바티칸에 자신이 헨리 키신저라며 전화를 했다)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무료 통화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AT&T는 1970년대 초 자사의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 해야 했다. Image courtesy Maksym Kozlenko/Flickr
최초로 인터넷에 연결한 기업 : BBN과 SDC, 1970년
인터넷 직전에 존재하던 아르파넷(ARPANET)은 1969년에 시작된 국방부 연구 프로젝트였으며 처음에 미국 남서부의 대학들을 연결했다.
BBN은 이와 관련해 초기 네트워크를 구축한 방산 계약자였으며 SDC(Systems Development Corp.)는 수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방부의 SAGE 프로젝트의 비영리 파생 기업이었다. 이 프로젝트 관련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기업으로는 메인 프레임 제조사였던 버라우프스 코퍼레이션(Burroughs Corporation)이 있다. 이 기업은 1971년 1월에 연결되었다. Image courtesy ARPANET map, circa 1977. Public domain/Wikipedia
최초로 CIO를 임명한 기업 :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1986년
알 지프는 20세기 후반기에 자성 잉크 문자 개발을 진두 지휘했었다. 은행들이 자동으로 수표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이 기술을 1960년대에 개척했으며, 이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지점에서 오후 2시에 문을 닫고 오후 내내 누적된 모든 종이 수표를 수동으로 처리해야 했다.
지프는 승진했고 결국 1986년 해당 은행 그리고 전 세계 최초의 CIO가 되었다. 이후 IBM 같은 IT 업체는 기업이 기술에 초점을 둔 임원을 영입하는 것에 열광했다. Image courtesy SRI International/Wikipedia
최초로 웹 사이트를 구축한 기업 : 넥서(Nexor), 1993년
Symbolics.com이 1985년 최초의 기업 URL을 받았을지 몰라도 최초로 기업 웹 사이트를 가진 기업은 아니었다. 그 영광은 영국의 사이버 보안 기업 넥서에게 돌아간 것 같다. 넥서가 이런 온라인 입지를 개척하는 데에는 당시 직원이었던 마티즌 코스터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코스터는 초기의 웹 매니아였으며 최초의 웹 검색 엔진인 알리웹(Aliweb)과 웹 크롤러(Web Crawler)를 차단하기 위한 robots.txt 표준을 개발했다.
1993년 5월 코스터는 www 대화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어 넥서의 "실험적 웹 서비스"를 발표했으며, 여기에는 "해당 기업에 관한 일부 영업 정보"가 포함되는 등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웹 사이트로 손색이 없었다. Image courtesy Nottingham, home of Nexor. Willednic/Wikipedia
최초로 온라인으로 안전하게 물건을 판매한 기업 : 넷마켓(NetMarket), 1994년
넷마켓이 최초로 안전한 온라인 거래를 수행한 업적이 뉴욕 타임즈를 통해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참고로 컴퓨터 장비를 온라인으로 판매했던 ISN(Internet Shopping Network)의 설립자 랜디 아담스는 자신의 기업이 1개월 먼저 최초의 거래를 실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ISN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넷마켓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누가 경주에서 이겼는지 여부에 상관 없이 모두 법률을 위반했던 것 같다. 기술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상행위는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가 인터넷 백본 스폰서십을 포기한 1995년 봄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Image courtesy Rita Molnár/Wikipedia
최초로 페이스북에서 소셜 광고를 판매한 기업 : 애플, 2005년
마크 저커버그는 초기 페이스북의 광고와 관련해 파트너였던 에두아르도 사베린의 접근방식이 불만스러웠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이스북의 첫 광고는 학생회 그룹을 위한 50달러짜리 배너였으며 여름 캠프, 온라인 포커, 칼 등에 관한 유사한 광고를 판매했다.
2007년 페이스북은 소셜 그래프에 따른 광고에 대한 주커버그의 비전과 일맥 상통하는 시스템을 출시했으며, 일련의 고급 광고주들을 모집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중개인 광고 형태는 광고주들이 자체 페이지의 트래픽을 유도할 수 있는 스폰서 그룹(Sponsored Group)이었다. 애플은 분명 처음으로 이 광고에 가입하면서 예지력을 과시했다. 아마 할인율도 괜찮았을 것이다. Image courtesy Trisha Fawver/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