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레전드급 IT 제품 25선 : 서비스편

Dan Nystedt | PCWorld 2009.04.08

베테랑 노병들처럼 죽지 않고 장수하는 컴퓨터 제품들이 있다. 이 제품들은 이미 화석처럼 업데이트 되지 않지만, 시장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미국 밖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들의 상표로만 남은 경우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들을 제외한 세상 모두가 흘러갔지만, 스스로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강박적인 팬들 덕분에 살아남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는 25가지 IT 제품을 꼽아보았다. 몇몇 제품들은 특정 하드웨어와 고전 소프트웨어들이고, 개중에는 사용자들이 한 때 수백만 명에 달했던 서비스들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품 군이 통째로 포함된 경우도 있다. 필자는 아직도 어떤 방식으로든 구입이 가능한 제품들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블록버스터급은 아니지만 아직도 미국 내에서는 확고한 입지를 갖추고 있는 제품(예를 들면 AOL이나 WordPerfect)들은 제외했다.

 

여러분이 필자와 비슷하다면, 아마 여기 나온 모든 제품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며 흥미로워하게 될 것이며, 다른 제품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조금 슬퍼질 것이다. 그것은 이 제품들 모두가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긴 하지만, 그 시절에 우리들 중 몇몇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탄: 하드웨어 부문

2탄: 소프트웨어 부문

3탄: 서비스 부문

 

 

알타비스타(AltaVista)

 

AP7549.JPG그 때 그 시절: 1995년 12월 출시 직후, 최초의 인기 웹 검색 엔진이 된, 전설적인 컴퓨터 회사 디지털 이큅먼트 코퍼레이션(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연구 프로젝트다.

 

곡절의 세월: 디지털은 검색엔진의 모회사라기에는 이상했지만, 알타비스타를 내놓으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98년 역시 검색엔진 모회사라기에 어색한 컴팩(Compaq)이 이를 인수하면서 알타비스타를 전문 검색엔진에서 야후 같은 포털로 변모시키려고 했다. 2000년 컴팩은 이것을 인터넷 회사 투자회사인 CMGI에 팔았고 이 회사는 후에 알타비스타를 오버추어 서비스(전 GoTo.com)에 매각했다. 2003년 오버추어에서 야후를 인수했을 때, 알타비스타는 대부분의 인지도와 사용자를 잃게됐고, 구글이 등장해 이미 알타비스타가 개척했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거물급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에: 아직도 알타비스타닷컴은 존재하지만, 그 트래픽은 미미하고 모습만 바꾼 야후의 도플갱어에 불과한 듯하다. (야후의 쿼리와 알타비스타의 쿼리를 비교해 보라.) 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에서 위대한 기술로써 출발한 이 사이트는 이제 이름만 남았다.

 

AP02D1.JPG웹반(Webvan)

 

그 때 그 시절: 초기엔 원대한 야망과 막대한 경비 그리고 관리팀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눈길을 끌었던 식료품 배달 인터넷 회사이다. 또 이 회사의 서비스 품질을 사랑해 마지않았던 필자의 적지 않은 지인들도 이 회사를 꽤나 좋아했다.  

 

곡절의 세월: 최첨단 물류시설에 쏟은 수십 억 달러는 결국 순식간에 별로 건질 것 없는 투자가 되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업 결정(CEO가 축출되었을 때 그의 퇴직수당에는 연간 37만 5,000달러도 포함되었다, 평생동안) 끝에 웹반은 2001년 파산을 선고했다.

 

지금은 어디에: 본지의 글을 쓰기 전까지는 Webvan.com이 아마존닷컴 제국의 전초기지로써 비부패성 재료만으로 만든식료품을 여전히 판매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상하게도 아마존에는 신선식품만을 배달하는 아마존프레쉬라는 사이트도 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옛날 방식으로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며 식료품을 구입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다.

 

컴퓨서브(CompuServe)

 

AP7826.JPG그 때 그 시절: 최초의 주요한 소비자 온라인 서비스이다. 1979년에 시작한 이 서비스는 메시지 게시판, 뉴스와 정보, 전자상거래와 기타 웹형 특성을 웹이 존재하기도 훨씬 전에, 그리고 AOL이 있기도 전에 제공했다.

 

곡절의 세월: 1990년 AOL의 부상으로 컴퓨서브는 규모면에서 제2의 온라인 서비스가 되면서 제1의 위치보다 재미는 덜 했을 것이다. 그 후 바로 컴퓨서브는 인터넷에 대응해야 했다. 다른 독점형 서비스처럼 컴퓨서브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ISP가 되었다. 그리고 웹이 소비자로 홍수를 이루면서 한때 부산스러웠던 컴퓨서브의 메시지 게시판은 버려진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1997년 AOL이 컴퓨서브를 사들였고 컴퓨서브의 탄탄한 국제적 네트워크는 AOL의 인프라 확충에 도움이 되었지만, 컴퓨서브 커뮤니티는 점차 줄어갔다.

 

지금은 어디에: 넷스케이프처럼 컴퓨서브는 AOL이 살짝 곤란한 프로젝트에 붙이는 명패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제는 헐값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ISP이자 제 기능을 상실한 포털사이트일 뿐이다. 컴퓨서브는 “핵심 브랜드”라고 반복적으로 소개되는 가운데 8살이 되었다는 언급도 없이 컴퓨서브 7.0이 “최신버전”으로 크게 선전되고 있다. (이상하게도 컴퓨서브의 홈페이지는 이 회사가 1996년 문을 연 지 몇 달 되지 않아 폐쇄시켰던 가짜 AOL인 Wow라는 로고 또한 싣고 있다. 누가 이것을 그리워하는지, 또 찾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믿을 수 없다.) 수많은 아라비아숫자와 알 수 없는 콤마로 구성된 ID를 사용한 당시 컴퓨서브의 이용자들에게 이는 매우 침통한 결말이다.

 

AP4A91.JPG프로디지(Prodigy)

 

그 때 그 시절: AOL이 하나의 현상이 되기 전 보다 주류의 컴퓨서브 대안인, 1990년의 극단적 소비자 중심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시어스 로벅(Sears Roebuck)과 IBM의 공동벤처이다. 컴퓨터광들은 (“스토디지(Stodigy)”라면서) 이것을 비웃었지만, 프로디지는 일반 미국인들이 모뎀에 주목하지도 않던 시대에 수많은 사용자를 가입시키곤 했다.

 

곡절의 세월: 프로디지가 등장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인터넷은 프로디지(컴퓨서브, 델피, 지니 그리고 결국 AOL)와 같은 독점적 서비스를 골동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프로디지는 인터넷 특성을 추가하기 시작했고 1997년 본격적인 ISP로 재탄생됐다. (또 Y2K버그를 고치는 쪽보다는 원래의 프로디지 서비스를 폐쇄했다.) 이후 ISP로써는 어느정도 괜찮은 실적을 보였는데, 1998년에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2001년 SBC(현재의 AT&T)가 프로디지를 사들여 이 브랜드 이름은 물러나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에: 브랜드 이름이 남쪽으로 갔다. 멕시코의 유력 정보통신 회사인 텔멕스(Telmex)가 프로디지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데, 동영상 사이트와 MSN과 공동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포털의 형태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한번 만든 계정을 삭제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prodigy.net 이메일 주소를 보유하고 있는 일부 미국 SBC 고객이 아직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VCR Plus+

 

AP24CC.JPG그 때 그 시절: 영구적으로 12시를 번쩍였던 VCR에 대한 모든 농담을 기억하는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VCR Plus+는 VCR에 내장되어 특수 원격제어 형태의 애드온이었는데, 신문과 TV 가이드의 TV 편성표에 등장했던 코드를 입력해 비디오 녹화장치 프로그래밍을 단순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VCR Plus+ 발명업체 젬스타 디벨롭먼트(Gemstar Development)는 1999년 97억 달러에 TV 가이드(TV Guide)를 사들였다.

 

곡절의 세월: VCR Plus+의 명운은 VCR의 운명에 달려 있었다. 1990년대가 저물면서, TV 프로그램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대신 대여하거나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게 됐다. 결국에는 비디오 테이프가 DVD로 대체되기 까지 했다. 1990년대 말경 티보(TiVo)와 릴레이TV(ReplayTV) 때문에 TV 팬들은 테이프를 갈지 않고도 수 시간이나 되는 쇼를 녹화할 수 있게 됐다. 젬스타의 창립자 헨리 유엔은 회계스캔들 후에 해고되었고 그 후 실종됐다.

 

지금은 어디에: VCR Plus+의 현재 소유자는 오락물 녹화를 지원하기보단 방지하는 기술로 더 유명한 회사인 매크로비전(Macrovision)이다. TVGuide.com과 VCRPlus.com 그리고 신문의 TV 편성표에 나온 코드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500개나 되는 채널과 TV 가이드가 있는 시대에 신문의 TV 편성표는 일반적으로 신문보다 훨씬 더 구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 VCRPlus+로 VCR을 만들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AP5BDA.JPG서킷시티(Circuit City)

 

그 때 그 시절: 1949년부터 시작된 소비자 가전 대형상점 체인이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전 매장이었다.

 

곡절의 세월: 주요 단어 “베스트”와 “바이”를 합친 경쟁업체가 등장한 마당에, 서킷시티는 노련한 영업사원을 해고시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저임금의 신참들로 대체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다. 거의 모든 주요 가전 소매업체가 결국 힘든 시기를 맞으면서 세력기반 철수와 함께 청산절차를 밟는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어디에: 미국의 북쪽으로 진군 중이다. 서킷시티는 현재 전국적으로 몸집만 큰 텅 빈 체인점으로 남아있지만, 이 기업의 캐나다 자회사 더 소스 바이 서킷시티(The Source by Circuit City)가 750개의 막강한 상점을 거느리고 있다(혼란스럽게도 이 체인점들은 예전의 라디오쉑 캐나다(RadioShack Canada)이다). 이 달 초 벨 캐나다(Bell Canada)가 더 소스를 매입하기로 하면서 동일한 이름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서킷시티에 의한” 부서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것을 없앤다고 해도 서킷시티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폐쇄된 이 사이트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서킷시티는 온라인 상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그헤드 소프트웨어(Egghead Software)

 

AP6D7C.JPG그 때 그 시절: 이상한 이름과 더 이상한 마스코트(아인슈타인처럼 생긴 의인화된 계란인 에그헤드 교수, 아니면 평생을 계란 머리로 살도록 저주를 받은 보통 사람이었나?)를 지닌 전국에 걸친 소프트웨어 체인점이다.

 

곡절의 세월: 대부분의 기술 소매업체처럼 에그헤드도 결국 고난의 시기를 맞게 됐다. 1998년 상점의 문을 닫고 온라인 활동만을 유지했는데, 2001년에는 결국 파산을 선언하면서 사이트도 폐쇄했다. (해커가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침입한 이후의 나쁜 평판이 이 사이트의 사망을 재촉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에: 사업이 붕괴된 후에도 에그헤드라는 이름은 610만 달러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아마존닷컴이 2001년 이를 사들였다. 이 유통업계의 거물은 Egghead.com에서 계속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아마존 자체 사이트의 소프트웨어 섹션이지만, 에그헤드의 8년 전 몰락을 모르고 있는 충성 고객들을 의식해 에그헤드의 로고를 보란 듯이 내걸고 있다. 안됐지만, 그 교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해리 맥크라켄은 PC월드의 전 편집장이었으며, Technologizer.com에 IT의 여러 측면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dito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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