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전쟁 "비디오 게임기 경쟁의 역사"

McKinley Noble | GamePro Online 2009.08.30

소니 PS3의 가격 인하에 맞서 Xbox 360 역시 맞불을 놓고 나섰다. 닌테도 위 열풍 속에 사그러 들었던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 전쟁이 다시 불길이 일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기 전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과 Xbox, 닌텐도와 세가, 게임 보이와 에브리원 사이에서 벌어진 콘솔 게임기 전쟁은 게이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게임 프로는 게임 산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5가지 콘솔 게임기 전쟁사를 되돌아 보았다.

 

#5.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s 닌텐도 64 vs 세가 새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게임 라인업이 닌텐도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세가는 제네시스에 투박한 애드온을 만드는데 3년을 낭비하는 대신 세가 새턴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콘솔 게임기 경쟁에서 닌텐도가 뒤처지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9년 말이 되면서 누구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다른 콘솔 게임기들을 제치고 승리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가 다양한 히트작(마리오 64, 오카리나 오브 타임, 골든아이 007, 스타폭스 64, 퍼펙트 다크)을 내놓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CD를 사용한다는 간단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존의 카트리지 포맷을 버리고 CD를 선택한 것은 소니가 닌텐도에게 상당한 타격을 준 첫 번째 공격이었는데, 개발자들이 CD 포맷이 생산과 배포에서 훨씬 용이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부정직한 게이머들이 PS1 게임 CD를 복제하는 방법을 발견함에 따라 저작권 침해 행위가 폭넓게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니는 새로운 포맷을 이용해 이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으며,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수많은 게임 타이틀을 판매할 수 있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은 우수한 게임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게 됐는데, 크래시 밴디쿠트, 메탈 기어 솔리드, 툼 레이더, 철권, 그란 투리스모, 파이널 판타지 등이 대표적이다. 스퀘어 에닉스는 SNES의 시대가 끝나자마자 닌텐도를 버리고(아마도 적절한 순서로 타이틀 발매가 어려웠기 때문인 듯), 소니 PS1 사용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닌텐도에게는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부러진 팔로 마이클 조던을 이겨보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닌텐도로부터 가정용 콘솔 게임기의 주도권을 빼앗고 10년 동안 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승자 : 소니는 새로운 기술과 신선한 발상으로 콘솔 게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상자 : 네오지오, 아타리 재규어, 일반적인 비디오 게임 아케이드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소니나 닌텐도 게임이 아닐 경우 기술 경쟁의 길이 갑작스럽게 좁아지고 비경제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유증 : 소니는 닌텐도와 세가 새턴을 꺾음으로써 다음 10년간 게이머들로부터의 인기와 이후에 벌어질 콘솔 게임기 전쟁의 토대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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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닌텐도 DS vs 소니 PSP

 

모두 소니의 휴대용 플레이스테이션이 “게임&왓치”의 사촌쯤 되는 듯한 닌텐도의 듀얼 스크린 게임기를 참패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닌텐도는 일본에서 주말까지 DS 판매를 유보할 것을 요청받기도 했는데, 이는 아이들이 마리오 시리즈, 젤다, 드래곤 퀘스트 타이틀을 구하기 위해 학교를 며칠씩 결석했기 때문이다. 닌텐도가 수백만 타이틀을 판 것은 물론, 애니멀 크로싱이나 테트리스, 포케몬을 배우는 것은 바보같이 보일 지경이 되었다.

 

소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났던 마케팅으로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자이브 토킹 다람쥐에서부터 흑인 얼굴을 가리는 섹시한 유럽 모델에 이르기까지 소니의 PSP 광고는 불릿 타임의 철도 사고와도 같았다. 교황을 저격하고 그의 머리로 봉고 연주를 한다 해도 이보다 더 나쁜 기사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UMD가 개선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로딩 시간이 너무 길었다. PSP의 디스크 드라이브는 자갈밭에서 기어를 바꾸는 트럭과도 같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소니는 다소 성공적이지 못한 PSP를 포기하지 않았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PSP의 점유율은 상당히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용량이 줄고 다소 저렴한 버전의 갓 오브 워, 철권, 메탈 기어 솔리드는 무시할 수 없는 타이틀이며, 로코로코(LocoRoco)와 파타폰(Patapon)조차도 컬트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소니의 홍보부가 PSP 마케팅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

 

승자 : 캐주얼 게이머들은 DS를 선택했고 이 모든 비디오 게임의 넌센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상자 : 소니의 브랜드 이미지는 PS2 시대의 단순히 괴상한 인상에서부터 필사적으로 닌텐도 DS를 능가하려는 노력까지, 상당히 당황스러워졌다.

 

후유증 : 소니는 여전히 모호한 대상을 목표로 PSP를 다시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며, DS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1억 대나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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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임보이/게임보이 컬러 vs 세가 게임 기어

 

사실 세가의 게임 기어는 게임보이를 충분히 꺾을 수 있었다. 소닉 더 헤지호그라는 컬러 그래픽 게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고, 게임 기어 광고는 오바마 행정부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임보이는 크림 바른 시금치 같은 색상에도 불구하고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또한 닌텐도는 게임보이 포켓으로, 이후에는 게임보이 컬러로 결정타를 날렸다.

 

 

1990년대에는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휴대용 게임기에 150달러까지 투자하지는 않았다. 세가 게임 기어는 6개의 AA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니켈백의 최근 ‘록’ 콘서트 투어보다 다량의 유독성 쓰레기를 만들어 냈다. 게임보이는 4개의 배터리로도 10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세가의 게임 기어는 5개의 배터리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10살짜리도 어떤 제품이 유리한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닌텐도는 첫 번째 게임보이 출시 이후 이점을 잘 인식하고 2개의 배터리로도 이용할 수 있는 게임보이 포켓을 내놓았다. 이로써 게임보이는 수학 시간에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리고 포케몬이 나왔다. 이 제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의 닌텐도 광고 : 놀라운 만큼 기념비적이다.

 

승자 : 부모들은 마침내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비록 풀밭 그늘에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뿐이지만.

 

사상자  : 네오 지오 포켓 컬러, 반다이 원더스완 컬러, 그리고 게임보이의 성공에 편승하려 했던 회사들.

 

후유증  : 닌텐도는 사실상 여전히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지배자다. 하지만 브라츠 게임의 매 사이클마다 좋은 게임 타이틀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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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 vs. Xbox vs. 닌텐도 게임큐브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시장의 한쪽을 노린 제품을 들고 나오면서 소니와 닌텐도는 갑자기 궁지에 몰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은 시스템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된 것은 각각의 제품들이 모두 다른 제품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닌텐도는 마리오 게임과 뛰어난 그래픽 성능을, 소니는 여전히 오리지널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랑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PC가 있엇다는 것을 잊을 수 있는 온라인 게이밍 서비스를 갖고 있었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소니의 거대한 지지기반으로,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를 압도하고 남았다. 소니는 또 PS2를 저럼한 DVD 플레이어로 홍보했는데, 자신들은 순수하게 게임기라고 고집한 닌텐도와는 달랐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2 광고. 악몽을 소재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

 

승리자 : 소니 PS2와 서드파티 개발자. 이들은 아직도 PS2용 게임을 만들고 있다. 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셔블웨어이지만.

 

사상자 : 세가 드림캐스트. 다른 게임기보다 2년이나 먼저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많은 세가 팬들이 슬프해 마지 않았지만, 이로써 닌텐도와 세가의 라이벌 관계도 끝나고 말았다.

 

후유증 : 이 시기에 열성팬의 시대가 엄청난 힘을 받았다. 각 게임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인해 끝도 없는 진흙탕 싸움이 소파에서 인터넷 포럼 게시판으로 흘러 넘쳤다. 하지만 데이빗 린치의 PS2 광고에게만큼은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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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퍼 닌텐도 vs. 세가 제네시스

이미 패색이 짙어진 오리지널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과의 전쟁을 포기하면서 세가는 너무 센 상대와 나름 승부를 겨뤘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포기했다. NES의 트로이카인 마리오와 젤다, 메트로이드 덕택에 세가의 첫 번째 게임기는 판매 면에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말았다. 이 싸움은 마치 마이크 타이슨을 회초리로 때려눕히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세가는 제법 증가한 팬들로부터 기운을 얻어 닌텐도에 대적할 만한 것을 만들어 냈으니, 바로 세가 제네시스가 그것이다.

 

 

일본에서의 초기 판매는 별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지만, 세가 USA는 소닉 헤지호그의 성공을 잘 이용했고, 광고 캠페인을 통해 닌텐도의 위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양사의 팬들은 진지를 구축하고 서로 공격을 주고 받기 시작했으며, “세가 제네시스는 닌텐도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What Nintendon't)"는 세가의 TV 광고도 한몫을 했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반면, 닌텐도는 자사 시스템의 장점만을 강조했으며, 수퍼 마리오 월드나 크로노 트리거, 젤다의 전설 같은 초히트작들이 제몫을 해냈다. 여기에는 닌텐도만을 다루는 전문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슈퍼 닌텐도는 초대박 게임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팔려 나갔으며, 세가는 풍부한 경품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결국 16비트 게임기 시대는 처음으로 닌텐도 팬과 세가 팬이라는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잠시 동안 세가는 닌텐도에 앞지를 수 있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당시 10년 동안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승자 : 아마도 비디오 게임 산업이 될 것이다. 두 게임기 합쳐서 약 8,000만 대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사상자 : 아케이드 게임센터. 이들은 고정 고객들이 갑자기 50달러 짜리 게임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광경을 숱하게 보게 됐다.

후유증 : 물론 수퍼 닌텐도가 전쟁에서 앞서 나갔으며, 판매대수나 벌어들인 수익도 세가와 상당한 격차를 기록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세가는 닌텐도의 아성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으며, 세가의 게임기 역시 세가 제네시스가 매장에서 사라지면서 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현재 소닉은 모든 비디오 게임기에서 이용할 수 있는 타이틀이지만, 마리오는 여전히 닌텐도 제국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edito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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