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현실적 근거가 없는 피해액 추산이다. 미국영화협회가 지나가는 토렌트 사용자의 멱살을 붙잡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처럼, 닌텐도도 다른 웹사이트들에 ‘알아서 몸 사리라’는 경고의 의미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두 사이트는 닌텐도의 모든 ROM을 제거했으며, LoveRETRO의 경우 아예 사이트를 폐쇄했다.
두 사이트는 시작일 뿐이다. EmuParadise는 ‘주의를 기하기 위하여’ 웹사이트에서 모든 ROM을 철수하겠다고 이번 주 발표했다.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이만큼 유서와 뿌리가 깊은 커뮤니티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수십 년 동안 고전 게임 보존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 온 ROM 커뮤니티를 이렇게 뒤흔들어서 닌텐도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포위 공격
“법적 회색지대”는 필자가 에뮬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수도 없이 사용한 표현이다. 이를 보다 법적인 언어로 바꿔 설명하면 이렇다. 엄밀히 말해, bsnes나 PCSX2같은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것은 합법이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BIOS나 ROM을 폐기하는 것 역시 합법이다.
그렇지만 현행법 하에서 BIOS 또는 ROM을 배포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불법이었다. 사실, 닌텐도가 에뮬레이션 사이트를 고소하는 행위 자체는 철저하게 법적 근거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그것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법적 근거를 가진 행동이라고 해서 반드시 고까운 시선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법도 없다.
닌텐도가 이번 소송을 통해 얻게 될 것이 무엇인가 보면, 사실 거의 제로에 가깝다. LoveRETRO에게 게임 당 15만 달러의 피해액 보상은 회사를 망하게 할 정도의 액수이겠지만, 닌텐도에게 이 정도 돈은 한 끼 회식 비용이다. 게다가 이 돈을 실제로 받을 수 없을 것이란 걸, 닌텐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 역시 옛날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닌텐도 위 버추얼 콘솔(Wii Virtual Console)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정식 닌텐도 고전 게임을 구매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 시즌은 닌텐도의 NES 미니와 SNES 클래식 콘솔이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한 올해 말 닌텐도는 구독 서비스인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을 출시할 계획이다.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은 1년 단위로 가입한 사용자에게 복고 게임 셀렉션을 배포하는 형식이다.
결국 우리는 현대의 게임 해적 행위 속으로 다시 한 번 발을 들이게 된다. “이게 실제로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합법적 옵션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닌텐도 게임을 구매할까?” “닌텐도가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닌텐도는 그렇다고 보고 있는 모양이다. 에뮬레이션을 자사의 직접적 경쟁 상대로 점 찍은 듯 하다. 뭐,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 역시 과거에 농담 삼아 SNES 라이브러리 전체를 포함하는 라즈베리 파이 레트로게이밍 콘솔을 제작할 수 있는데, 대체 누가 SNES 클래식과 30개가 넘는 게임을 구매하겠느냐고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닌텐도에게 정말 어떤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설령 피해가 있다고 해도 큰 규모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닌텐도의 소송 제기 이유 중에서 가장 말이 되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게임들
하지만 닌텐도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한 산업의 역사나 전체 생태계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인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게임 보존이라는 핵심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산업이 그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렵고 서투르다는 것은 무척 역설적인 일이다. 아날로그와 달리 1과 0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는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히 데이터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곳 아니었던가? 필름 아카이브이든, 문서 보관이든, 항상 문제는 물리적인 요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셀룰로이드가 부식되고, 화재에 전소되고, 종이가 습기를 머금거나 강한 빛 때문에 손상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게임은 그런 물리적 손상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 여겨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아니, 신경 쓴 사람이 있긴 있었지만, 너무 소수였고, 그들조차도 종국에 가서는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지난 10여년 동안은 크래쉬 밴디쿠트(Crash Bandicoot)나 발더스 게이트 II(Baldur’s Gate II), 홈월드(Homeworld), 그리고 시스템 쇼크(System Shock) 같은 클래식 게임들의 리마스터 및 리메이크들이 출시되며 상황이 조금 나아진 편이다.
클래식 게임을 리마스터링 하는 데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게임을 리마스터링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 1%라 할 수 있는 게임들만이 리마스터링된다. 가장 악명 높은, 혹은 가장 사랑 받았던 게임들, 그리하여 두 번째, 세 번째, 아니 네 번째 리마스터링을 해도 팔릴 그런 게임들 말이다. 물론, 이런 게임들이 대게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2018년인 현재 ‘완다와 거상(Shadow of the Colossus)’이 2005년 그대로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리마스터링에는 분명히 ‘선택’이 작용한다. “80년대 히트곡 모음집”같은 것을 구매해 놓고 그 음악들만이 80년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돈 되는 게임만을 선택하는 업체들에게 선택 과정을 맡긴다면 마리오나 스카이림, 바이오쇼크 같은 게임밖에는 플레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게임의 역사는 이보다 더 길고 방대하다. 콘솔 세대가 여덟 번 바뀌고, 수십 개의 PC 플랫폼이 생기고 사라질 동안 우리 곁을 지나간 수천 가지 게임의 그 길고 방대한 역사를 닌텐도는 단 몇 번의 소송으로 뿌리까지 지워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닌텐도 입장에서야 슈퍼마리오 월드의 다섯 번째 카피를 팔고 돈을 벌면 그걸로 족하겠지만, SNES 셰도우런(Shadowrun)을 원하는 게이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디에 가야 셰도우런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시크릿 오브 에버모어(Secret of Evermore)는?
이런 게임들이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에뮬레이션 덕분이다. 그 누구도 에뮬레이션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닌텐도도, 그 누구도 말이다. 에뮬레이션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에뮬레이션을 이용하는 이용자 때문이 아니라 실제 게임 소유권을 지닌 이들이 대체재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의 등장으로 해적판 음악이나 영화 파일 공유가 줄어든 것을 생각해 보라. 나를 포함하여 많은 PC 해적들은 GOG.com의 편리함에 매혹되었고, 우리는 소위 ‘어밴던웨어 (abandonware)’라 불리는 것들을 다운받았다.
하지만 GOG.com은 여전히 PC 게임만을 취급하고 있다. NES나 SNES 게임은 찾아볼 수 없고, 닌텐도가 통제하지 않는 플랫폼은 말 할 것도 없다. 아타리(Atari)라는 이름의 기업에서는 기꺼이 베스트 게임 컬렉션을 내놓을 용의가 있지만, 아까 말했듯 이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클래식들 중에서도 잘 팔릴 만한 ‘상위 1%’에 속하는 게임들뿐이다. Vectrex나 TurboGrafx 게임은? 이런 게임을 나서서 출시하겠다는 기업은 없다. 아무도 리마스터링하지도, 리메이크하지도 않는다.
결국 에뮬레이션 커뮤니티가 할 수 밖에 없다. 게임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이들 게임을 아카이브에 저장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구동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것이 학문적인 관심이든,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서였건, EmuParadise같은 사이트가 아니었다면 게임 산업의 역사는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이들이 기꺼이 나서서 했다.
아무리 닌텐도가 뭐라고 해도, 아카이브는 남을 것이다. 2~3개의 ROM 사이트를 폐쇄시킨다 해도, 매니아들에게는 그것조차 감수해야 할 약간의 불편함일 뿐이다. 인간의 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데미지를 우회하는 놀라운 역량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닌텐도가 굳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해서 닌텐도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에 비해 이로 인해 사라지는 것의 가치는 가격을 메길 수 없을 정도이다. 에뮬레이션은 지난 수 년간 모두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눈감아줘 온 관행과 같은 것이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플레이어들뿐 아니라 게임 업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에뮬레이션 덕분에 사람들은 잘 모르거나 낯선 게임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아주 오래된 게임에 대한 흥미를 다시금 갖게 되었으며,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존재했던 시스템에 감정적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노스탤지어라는 정서에 그 어느 업체보다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닌텐도라면 이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 인터넷은 캐슬바니아(Castlevania)의 사이먼 벨몬트(Simon Belmont)가 올해 스매쉬 브로(Smash Bros)에 나올 것이라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NES Mini나 3DS(그리고 닌텐도의 마지막 버추얼 콘솔 이니셔티브)가 있는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캐슬바니아를 편리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다. 물론 캐슬바니아는 3DS의 버추얼 콘솔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다. 하지만 닌텐도가 스위치의 버추얼 콘솔 죽이기에 나선 판국에 3DS 캐슬바니아가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위 버추얼 콘솔은 2019년 중단될 예정이며, 이와 함께 상당수 게임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백 번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
에뮬레이션과 고전 게임은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동하는 주제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우리집 PC에 에뮬레이터를 깔아 주셨던 기억이 있다. MAME, ZNES 등. 2000년도 전후의 일이었는데, 이 때는 마침 EmuParadise가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브랜드도 없는 싸구려 게임 패드와 중급 PC, 그리고 수백 개의 게임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에뮬레이션이 아니었다면 1년에 게임 한두 개를 플레이할 수 있을까 말까 했던 어린이에게는 금광과도 같은 보물단지였고, 게임에 대한 소장 욕구에 불을 붙여 준 아이템이었다. Zaxxon과 1942, 각종 아케이드 게임을 정신 없이 플레이 하다 보니 어느덧 뉴저지 교외에서는 이들 게임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져 있었다.
게임 팬의 입장에서 봐도, 그리고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봐도 닌텐도의 행보는 추하게 느껴진다. 게임 산업의 역사에 대한 불필요한 공격이고, 특히 사람들의 추억을 먹고 사는 업체가 보인 행보이기에 더욱 실망스럽다. 이처럼 공허한 승리가 어디 있겠는가?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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