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8

“탄생 20주년!” USB 발명가가 이야기하는 USB의 모든 것

Gordon Mah Ung | PCWorld
인텔은 1995년 11월 15일을 USB의 생일로 부른다. 하지만 생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조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PC시대 가장 인기 있는 기술 표준 중 하나인 USB의 발명 일화는 소박하게도 집의 프린터 고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작은 사건 때문에 인텔 펠로우 아제이 바트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인 USB(Universal Serial Bus)가 탄생되었다.

바트는 “딸의 학부모 통신문 같은 것을 인쇄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가 항상 전화를 걸어 인쇄가 안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녀가 뭔가 하기는 했지만 프린터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PC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바트는 USB가 만들어진 소박한 계기, USB를 광범위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 그리고 왜 원조 USB 단자가 뒤집어 끼울 수 없도록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우리는 USB-C와 라이벌 표준 썬더볼트의 확산 속에서 연결 표준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노트북에서 무선으로 네트워크된 다른 방의 프린터에서 인쇄가 가능해진 현재 시점에서 원시적인 90년대 기술 방식을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당시 프린터는 여전히 커다란 병렬 포트로 유선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리얼, PS/2, 이터넷, SCSI 케이블과 씨름하고 있었다.

바트의 목표는 저가, 저대역폭 기기를 위한 단순한 일반적인 기술 표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업계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트의 상사는 그가 기존 표준으로 업계에서 합의를 보길 원했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IrDA 연합은 적외선을 활용했고 USB에는 퇴짜를 놨다.

바트는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혼자 이 일을 추진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바트는 애플 측에도 협력을 요청했다.

USB vs. 파이어와이어
인터넷 역사가들은 USB와 파이어와이어(FireWire)와의 경쟁관계를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대 뉴욕 양키스의 끝없는 대결처럼 그릴지 모르겠지만, 바트는 인텔의 경영진이 애플과 함께 협력할 방법을 모색하라고 계속 주장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파이어와이어 개발에 들어서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공동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애플은 무언가를 조정하거나 우리와 일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파이어와이어와 USB는 근본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방식으로 달랐다. 파이어와이어는 P2P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표준으로 이는 모든 기기마다 강력한(그래서 비싼) 컨트롤러를 내장해야 함을 의미했다. 고급형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프로 키보드 혹은 스테레오 시스템은 파이어와이어 칩의 비용을 감수할 수 있었지만, 마우스, 키보드, 조이스틱의 경우는 힘들었다.

USB는 PC의 복잡성을 담고 개별 주변기기의 비용을 낮추도록 설계되었다. 바트는 “우리는 25센트 칩을 가진 기기와 작동되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몇몇 거대 기업들에게 거절당한 인텔은 점진적으로 USB 시행 포럼(Implementers Forums)을 마이크로소프트, DEC, 노텔, 컴팩, IBM, NEC와 함께 결성했다.

미비한 운영체제 지원이 초기 USB를 어렵게 하다
지원 속에서도 USB를 당시 운영체제에 통합시키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USB 컨트롤러는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1996년에 출시되었다.

윈도우 95에 지원되었던 USB는 엉망진창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컴퓨터에만 탑재되어 팔린 윈도우 95 “OEM 서비스 릴리즈 2.1”버전에서만 USB를 지원해서 소매판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USB 컨트롤러들의 드라이버는 다운로드도 불가능했다. 1998년 윈도우 98 출시가 도움이 되었지만 바트는 USB가 1999년 윈도우 98 SE에서야 안정성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바트는 “윈도우 98 SE에 접어들면서 USB가 제대로 지원되기 시작했다. 윈도우 XP는 완전히 USB를 광범위하게 일반화시켰다”라고 말했다.

애플조차도 합류했다. 1998년 애플은 첫 아이맥에 자체 ADB와 지오포트(GeoPort) 단자를 대신해 USB와 자체 파이어와이어 포트를 탑재시켰다.

구형 USB 타입A 커넥터(오른쪽)와 새로운 USB 타입C(왼쪽)

유비쿼터스 USB
바트는 원래 USB가 시리얼 포트와 병렬 포트를 대체하려는 목표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USB는 디스플레이 단자와 네트워킹까지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와이파이가 대부분 전용 이더넷 포트를 대체했지만, 사람들은 유선연결에는 이더넷-USB 아답터를 사용한다.

바트는 “나는 언젠가, 언젠가 USB가 이 모든 것들을 지원해 몇 개의 USB 단자만으로 하려고 하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우리가 당시 가졌던 비전은 대부분 현실화되었다”라고 말했다.



2015.11.18

“탄생 20주년!” USB 발명가가 이야기하는 USB의 모든 것

Gordon Mah Ung | PCWorld
인텔은 1995년 11월 15일을 USB의 생일로 부른다. 하지만 생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조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PC시대 가장 인기 있는 기술 표준 중 하나인 USB의 발명 일화는 소박하게도 집의 프린터 고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작은 사건 때문에 인텔 펠로우 아제이 바트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인 USB(Universal Serial Bus)가 탄생되었다.

바트는 “딸의 학부모 통신문 같은 것을 인쇄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가 항상 전화를 걸어 인쇄가 안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녀가 뭔가 하기는 했지만 프린터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PC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바트는 USB가 만들어진 소박한 계기, USB를 광범위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 그리고 왜 원조 USB 단자가 뒤집어 끼울 수 없도록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우리는 USB-C와 라이벌 표준 썬더볼트의 확산 속에서 연결 표준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노트북에서 무선으로 네트워크된 다른 방의 프린터에서 인쇄가 가능해진 현재 시점에서 원시적인 90년대 기술 방식을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당시 프린터는 여전히 커다란 병렬 포트로 유선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리얼, PS/2, 이터넷, SCSI 케이블과 씨름하고 있었다.

바트의 목표는 저가, 저대역폭 기기를 위한 단순한 일반적인 기술 표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업계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트의 상사는 그가 기존 표준으로 업계에서 합의를 보길 원했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IrDA 연합은 적외선을 활용했고 USB에는 퇴짜를 놨다.

바트는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혼자 이 일을 추진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바트는 애플 측에도 협력을 요청했다.

USB vs. 파이어와이어
인터넷 역사가들은 USB와 파이어와이어(FireWire)와의 경쟁관계를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대 뉴욕 양키스의 끝없는 대결처럼 그릴지 모르겠지만, 바트는 인텔의 경영진이 애플과 함께 협력할 방법을 모색하라고 계속 주장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파이어와이어 개발에 들어서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공동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애플은 무언가를 조정하거나 우리와 일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파이어와이어와 USB는 근본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방식으로 달랐다. 파이어와이어는 P2P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표준으로 이는 모든 기기마다 강력한(그래서 비싼) 컨트롤러를 내장해야 함을 의미했다. 고급형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프로 키보드 혹은 스테레오 시스템은 파이어와이어 칩의 비용을 감수할 수 있었지만, 마우스, 키보드, 조이스틱의 경우는 힘들었다.

USB는 PC의 복잡성을 담고 개별 주변기기의 비용을 낮추도록 설계되었다. 바트는 “우리는 25센트 칩을 가진 기기와 작동되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몇몇 거대 기업들에게 거절당한 인텔은 점진적으로 USB 시행 포럼(Implementers Forums)을 마이크로소프트, DEC, 노텔, 컴팩, IBM, NEC와 함께 결성했다.

미비한 운영체제 지원이 초기 USB를 어렵게 하다
지원 속에서도 USB를 당시 운영체제에 통합시키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USB 컨트롤러는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1996년에 출시되었다.

윈도우 95에 지원되었던 USB는 엉망진창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컴퓨터에만 탑재되어 팔린 윈도우 95 “OEM 서비스 릴리즈 2.1”버전에서만 USB를 지원해서 소매판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USB 컨트롤러들의 드라이버는 다운로드도 불가능했다. 1998년 윈도우 98 출시가 도움이 되었지만 바트는 USB가 1999년 윈도우 98 SE에서야 안정성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바트는 “윈도우 98 SE에 접어들면서 USB가 제대로 지원되기 시작했다. 윈도우 XP는 완전히 USB를 광범위하게 일반화시켰다”라고 말했다.

애플조차도 합류했다. 1998년 애플은 첫 아이맥에 자체 ADB와 지오포트(GeoPort) 단자를 대신해 USB와 자체 파이어와이어 포트를 탑재시켰다.

구형 USB 타입A 커넥터(오른쪽)와 새로운 USB 타입C(왼쪽)

유비쿼터스 USB
바트는 원래 USB가 시리얼 포트와 병렬 포트를 대체하려는 목표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USB는 디스플레이 단자와 네트워킹까지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와이파이가 대부분 전용 이더넷 포트를 대체했지만, 사람들은 유선연결에는 이더넷-USB 아답터를 사용한다.

바트는 “나는 언젠가, 언젠가 USB가 이 모든 것들을 지원해 몇 개의 USB 단자만으로 하려고 하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우리가 당시 가졌던 비전은 대부분 현실화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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