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9

x86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②

Gary Anthes | Computerworld
전편에 이어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어떻게 해서 컴퓨팅 분야를 이렇게까지 지배하게 되었을까?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리스크(RISC) 프로세서로 촉발된 ‘리스크’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썬 스팍, IBM/애플/모토로라 파워PC, 밉스(MIPS) 프로세서와 같은 리스크(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RISC) 프로세서가 x86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했다. 리스크 프로세서의 기본 개념은 x86과 같은 시스크(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CISC) 프로세서에서 사용된 복잡한 멀티사이클 명령어 대신 극히 간단한 명령어만 사용하여 각 클럭 사이클당 하나의 명령을 실행함으로써 프로세서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원리였다.

당시 권위 있는 전문가, 언론, 그리고 인텔 경쟁 업체들은 대부분 시스크의 종말을 예언했다. 겔싱어는 “우리에겐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인텔은 서둘러 자체 리스크 워크스테이션 프로세서인 i860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860도, 다른 어떤 리스크 프로세서도 x86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80486 프로세서의 설계팀장이었던 겔싱어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9년 4월 10일 486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시장에는 이 칩에서 실행될 막대한 양의 소프트웨어들이 486을 기다리고 있었다. x86 시스크 아키텍처는 상대적으로 약간 느렸지만 리스크 시스템용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시간에 우리는 리스크 시스템보다 훨씬 더 빠른 x86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광범위한 기반,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들 덕분에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리스크 시스템은 이러한 차이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얄궂게도 이러한 리스크 시스템용 소프트웨어의 부족으로 인해, 또 80486과 펜티엄 프로세서의 대폭적인 성능 향상이 더해짐에 따라, 인텔의 i860도 다른 리스크 프로세서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인텔은 주류 마이크로프로세서 아키텍처를 하나 더 만들려 했던 시도는 실수였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컴퓨터 과학 교수이자 1980년대 주요 리스크 혁신가 중 한 명이었던 데이빗 패터슨은 리스크로 인해 많은 혁신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백스(VAX) 아키텍처는 리스크에 뒤쳐진 채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러나 인텔은 방대한 소프트웨어 기반과 기존의 아키텍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시 리스크에 널리 도입되던 개념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인텔의 탁월한 제조 능력이 한몫 했다”고 말했다.

펜티엄 버그, 부동 소수점의 재앙
리스크의 위협 못지않게 인텔의 진땀을 뺀 위기는 1994년 여름 인텔 테스트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펜티엄 칩의 부동 소수점 나눗셈 회로에서 미세한 결함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 결함은 매우 드물게 발생했고 그 영향도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인텔은 결함이 있는 칩을 리콜하지 않고 그냥 문제만 수정한 후 칩 생산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몇 달 후, 버지니아 린치버그 대학의 수학 교수 토마스 나이슬리는 자신의 PC에서 결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텔에서는 누구도 그의 문제 제기를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인텔은 이후 이러한 사실을 시인했다).

나이슬리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인터넷에 게시했고 머지않아 인텔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으며 결국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채 4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칩 리콜을 단행했다.

전 인텔 부사장인 알버트 유는 자신의 저서 ‘Creating the Digital Future’에서 “그 사건은 고통스런 통과의례였지만 결국 우리는 소비자 기업으로서의 행동 양식을 배우게 됐다”고 회고했다.

장점의 극대화 전략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 과학 교수이자 인텔 연구 고문인 토드 모우리는 1995년 인텔이 몇 가지 혁신적인 신기능을 갖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펜티엄 프로를 발표하면서 x86 역사에서 또 다른 중대한 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능 중에는 명령어 스트림을 미리 판단하여 필요한 명령어를 추론한 후 순서에 관계없이 이를 실행하는 기능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프로세서의 사용률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으며 여기에 새로운 초고속 온칩 캐시까지 결합되어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상당한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다.

모우리는 “펜티엄 프로는 명령어 세트를 변경하지 않고 리스크의 장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비결은 x86 명령어를 리스크 명령어와 비슷한 미세 동작(micro-operation)으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x86 시스템 안에 리스크 시스템을 내장한 셈이 됐고 리스크와 x86의 성능 격차는 단숨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모우리에 따르면 펜티엄 프로는 하향식 설계 프로세스의 결과다. “고속 시스템 설계부터 시작한 다음 이 시스템에서 실행되는 x86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모우리는 말했다.

겔싱어는 이렇게 비x86 아키텍처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 여기에서부터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접근 방식이 먹혀 들었다면서 “펜티엄은 아키텍처 측면에서 커다란 도약이었다. 우리는 미니컴퓨터와 메인프레임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져와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현했다. 이는 실리콘이라는 훨씬 더 좋은 재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시스템 내의 넓은 영역에 걸쳐 처리 장치를 분산시키는 메인프레임과 달리 하나의 작고 조밀한 칩에 모든 요소를 넣는 방식은 마이프로프로세서 설계자에게 더 높은 유연성을 제공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설계에 더 강력한 성능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리콘 칩의 성능은 오랜 세월 동안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발전했지만 구성 요소들을 상호 연결한 형태의 시스템은 그만한 성능 향상을 이루지 못했다.

경쟁업체들의 부상
인텔은 텃밭인 x86 분야에서도 아직 경쟁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대만의 비아 테크놀로지는 1987년 실리콘 밸리에 회사를 차리고 마더보드 및 기타 전자 부품에 사용되는 코어 로직 칩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x86 기술을 사용했다. 현재 비아는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제조하며 자체 x86 프로세서로 저전력 모바일 및 임베디드 시장을 공략 중이다.

세계 2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업체인 AMD는 약 2000년부터 인텔을 괴롭히는 경쟁 상대로 부상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AMD는 x86에 편승하는 제조업체에 불과했으며 인텔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다. 머큐리 리서치에 따르면 지금도 AMD의 점유율은 x86 호환 데스크톱 및 모바일 시장에서 약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AMD는 2000년 x86 명령어 세트의 64비트 상위 집합인 x86-64를 발표하며 기술적으로나 지명도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상위 집합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x86-64 시스템 사용자가 이 시스템에서 기존 32비트 소프트웨어를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 인텔의 64비트 프로세서는 인텔과 HP가 대형 시스템에서의 수퍼스칼라 실행을 위해 개발한 아키텍처인 아이테니엄이었는데, 아 아키텍처는 32비트 x86 기반 소프트웨어와 직접적으로 호환되지 않았다. 인텔은 2004년 자체 64비트 x86 명령어 상위 집합인 EMT64로 AMD의 위협에 대응했다. AMD와 언론은 AMD가 무엇보다 64비트 시장에서 인텔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패터슨은 “x86 명령어 세트의 유연성이 되레 인텔에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면서 “이러한 유연성으로 인해 인텔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회사가 x86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극한을 향하는 발전
현재 인텔의 x86은 컴퓨팅의 양 극단에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4월 28일 인텔은 크레이와 손잡고 인텔 x86 기반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새로운 수퍼컴퓨터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크레이는 이미 AMD의 x86 기반 64비트 옵테론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다.

4월 2일 상하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지금껏 인텔이 개발한 프로세서 중 가장 작은 아톰 x86 기반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일반적인 랩톱 프로세서의 소비 전력이 35W인데 반해 아톰의 소비 전력은 2.5W에 불과하다. 인텔은 이번 주 소형 랩톱 및 데스크톱을 위한 두 개의 새로운 아톰 칩을 출시했다.

그렇다면 과연 x86은 앞으로 30년 동안 더 번성하거나 최소한 생존할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만 보더라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설계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킬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서 깊은 저 x86의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모우리는 “x86에서 실행되는 유용한 소프트웨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다른 명령어 세트가 x86을 밀어내리라고 볼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발자취: x86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간략한 역사
인텔 x86 아키텍처의 개발을 이끈 사건과 기술을 살펴보고, 이후 30년 간 이어진 지배 기간 동안의 이정표를 돌아본다.

1947: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개발됨.

1965: 반도체 칩의 트랜지스터 수가 매년 2배로 늘어난다는 고든 무어(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발언이 일렉트로닉스지의 한 기사에 실림.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트랜지스터의 수는 30년이 넘도록 약 2년마다 2배로 늘어남.

1968: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앤디 그로브가 “인테그레이티드 일렉트로닉스(INTegrated ELectronics)”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인텔사를 설립.

1969: 인텔, 첫 번째 제품으로 세계 최초의 MOS(금속 산화물 반도체) 정적 램(RAM)인 1101 발표. 이 제품은 자기 코어 메모리의 종말을 알림.

1971: 인텔, 페데리코 패긴이 설계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비트 4004 발표. 2,000개의 트랜지스터로 이루어진 이 칩은 일본제 계산기용으로 제작됐지만 인텔 광고에서는 선견지명을 발휘 “칩 위의 마이크로프로그래머블 컴퓨터”로 칭함.

1972: 인텔, 8비트 8008 프로세서 발표. 10대였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이 칩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려고 시도하지만 부족한 성능에 직면.

1974: 인텔, 4,5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고 이전 프로세서에 비해 10배 더 빠른 8비트 8080 프로세서 발표.

1975: 알테어 8800이 8080의 첫 PC 애플리케이션이 되면서 PC 혁명이 시작됨.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8080용 알테어 베이직 언어 개발에 성공하는데, 이는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이 됨.

1976: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8비트 모토로라 6502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애플 II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x86 아키텍처는 위기에 직면. PC 제조사 코모도어 역시 인텔의 경쟁업체인 모토로라의 칩을 사용함.

1978: 인텔, 16비트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 발표. 이 프로세서는 산업 표준이 됨.

1979: 인텔, 8086의 저가형인 8088(8비트 버스 사용) 발표.

1980: 인텔, 8087 수치연산 코프로세서 발표.

1981: IBM, PC용 프로세서로 8088 채택. 훗날 한 인텔 중역은 이를 “인텔 역사상 가장 큰 승리”로 칭함.

1982: IBM, 인텔에 이어 8086 및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공급업체로 AMD와 계약.

1982: 인텔, 13만 4,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16비트 80286 프로세서 발표

1984: IBM, 2세대 PC인 PC-AT 개발. MS-DOS를 실행하는 PC-AT는 거의 10년 동안 실질적 PC 표준으로 군림함.

1985: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기 위해 동적 램 사업에서 철수하고, 27만 5,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32비트 칩 80386 프로세서를 발표. 이 프로세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

1986: 컴팩 컴퓨터, 80386 기반 PC 출시로 IBM에 앞서나감.

1987: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x86 코어 로직 칩셋을 판매하는 비아 테크놀로지 설립됨.

1989: 12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고 수치연산 코프로세서가 내장된 80486 출시. 인텔은 2000년 이후 멀티코어 프로세서 칩이 개발될 것임을 예측.

1980년대 후반: 썬 스팍, IBM/애플/모토로라 파워PC 및 밉스(MIPS) 프로세서의 리스크(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RISC) 아키텍처가 x86의 시스크(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CISC) 아키텍처를 위협. 인텔은 자체 리스크 프로세서인 i860으로 대응.

1990: 컴팩, 80486을 구동하는 업계 최초의 PC 서버 발표.

1993: 31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66MHz 펜티엄 프로세서가 출시되고 수퍼스칼라 기술이 발표됨.

1994: AMD와 컴팩, Am4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팩 컴퓨터를 위해 연합.

1995: 리스크 프로세서의 천적 펜티엄 프로 등장. 펜티엄 프로에는 명령어를 예상해 순서에 관계없이 실행하는 혁신적 신기능이 적용됨. 이러한 신기술과 초고속 온칩 캐시 및 독립적인 듀얼 버스가 결합되어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 대폭적인 성능 향상이 이루어짐.

1997: 인텔, 64비트 에픽(Epic) 프로세서 기술 발표. 또한 그래픽, 오디오, 음성 프로세싱 등의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MMX 펜티엄도 공개.

1998: 인텔, 보급형 셀러론 프로세서 출시.

1999: 비아, x86 프로세서 및 x87 코프로세서 제조업체인 사이릭스와 센토 테크놀로지 인수.

2000: 4,20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펜티엄 4 등장.

2003: AMD, x86 명령어 세트의 상위 집합인 x86-64 발표.

2004: AMD, x86 듀얼 코어 프로세서 칩 시연.

2005: 인텔, 첫 듀얼 코어 프로세서 칩 출시.

2005: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용 프로세서를 프리스케일(이전 모토로라) 및 IBM의 파워PC에서 인텔의 x86 프로세서 제품군으로 전환한다고 발표.

2005: AMD, 인텔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을 저해했다고 주장하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2008년 현재까지 계류 중).

2006: 델, AMD 프로세서 기반 시스템 제공 계획 발표.


2008.06.29

x86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②

Gary Anthes | Computerworld
전편에 이어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어떻게 해서 컴퓨팅 분야를 이렇게까지 지배하게 되었을까?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리스크(RISC) 프로세서로 촉발된 ‘리스크’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썬 스팍, IBM/애플/모토로라 파워PC, 밉스(MIPS) 프로세서와 같은 리스크(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RISC) 프로세서가 x86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했다. 리스크 프로세서의 기본 개념은 x86과 같은 시스크(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CISC) 프로세서에서 사용된 복잡한 멀티사이클 명령어 대신 극히 간단한 명령어만 사용하여 각 클럭 사이클당 하나의 명령을 실행함으로써 프로세서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원리였다.

당시 권위 있는 전문가, 언론, 그리고 인텔 경쟁 업체들은 대부분 시스크의 종말을 예언했다. 겔싱어는 “우리에겐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인텔은 서둘러 자체 리스크 워크스테이션 프로세서인 i860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860도, 다른 어떤 리스크 프로세서도 x86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80486 프로세서의 설계팀장이었던 겔싱어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9년 4월 10일 486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시장에는 이 칩에서 실행될 막대한 양의 소프트웨어들이 486을 기다리고 있었다. x86 시스크 아키텍처는 상대적으로 약간 느렸지만 리스크 시스템용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시간에 우리는 리스크 시스템보다 훨씬 더 빠른 x86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광범위한 기반,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들 덕분에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리스크 시스템은 이러한 차이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얄궂게도 이러한 리스크 시스템용 소프트웨어의 부족으로 인해, 또 80486과 펜티엄 프로세서의 대폭적인 성능 향상이 더해짐에 따라, 인텔의 i860도 다른 리스크 프로세서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인텔은 주류 마이크로프로세서 아키텍처를 하나 더 만들려 했던 시도는 실수였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컴퓨터 과학 교수이자 1980년대 주요 리스크 혁신가 중 한 명이었던 데이빗 패터슨은 리스크로 인해 많은 혁신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백스(VAX) 아키텍처는 리스크에 뒤쳐진 채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러나 인텔은 방대한 소프트웨어 기반과 기존의 아키텍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시 리스크에 널리 도입되던 개념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인텔의 탁월한 제조 능력이 한몫 했다”고 말했다.

펜티엄 버그, 부동 소수점의 재앙
리스크의 위협 못지않게 인텔의 진땀을 뺀 위기는 1994년 여름 인텔 테스트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펜티엄 칩의 부동 소수점 나눗셈 회로에서 미세한 결함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 결함은 매우 드물게 발생했고 그 영향도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인텔은 결함이 있는 칩을 리콜하지 않고 그냥 문제만 수정한 후 칩 생산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몇 달 후, 버지니아 린치버그 대학의 수학 교수 토마스 나이슬리는 자신의 PC에서 결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텔에서는 누구도 그의 문제 제기를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인텔은 이후 이러한 사실을 시인했다).

나이슬리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인터넷에 게시했고 머지않아 인텔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으며 결국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채 4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칩 리콜을 단행했다.

전 인텔 부사장인 알버트 유는 자신의 저서 ‘Creating the Digital Future’에서 “그 사건은 고통스런 통과의례였지만 결국 우리는 소비자 기업으로서의 행동 양식을 배우게 됐다”고 회고했다.

장점의 극대화 전략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 과학 교수이자 인텔 연구 고문인 토드 모우리는 1995년 인텔이 몇 가지 혁신적인 신기능을 갖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펜티엄 프로를 발표하면서 x86 역사에서 또 다른 중대한 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능 중에는 명령어 스트림을 미리 판단하여 필요한 명령어를 추론한 후 순서에 관계없이 이를 실행하는 기능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프로세서의 사용률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으며 여기에 새로운 초고속 온칩 캐시까지 결합되어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상당한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다.

모우리는 “펜티엄 프로는 명령어 세트를 변경하지 않고 리스크의 장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비결은 x86 명령어를 리스크 명령어와 비슷한 미세 동작(micro-operation)으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x86 시스템 안에 리스크 시스템을 내장한 셈이 됐고 리스크와 x86의 성능 격차는 단숨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모우리에 따르면 펜티엄 프로는 하향식 설계 프로세스의 결과다. “고속 시스템 설계부터 시작한 다음 이 시스템에서 실행되는 x86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모우리는 말했다.

겔싱어는 이렇게 비x86 아키텍처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 여기에서부터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접근 방식이 먹혀 들었다면서 “펜티엄은 아키텍처 측면에서 커다란 도약이었다. 우리는 미니컴퓨터와 메인프레임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져와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현했다. 이는 실리콘이라는 훨씬 더 좋은 재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시스템 내의 넓은 영역에 걸쳐 처리 장치를 분산시키는 메인프레임과 달리 하나의 작고 조밀한 칩에 모든 요소를 넣는 방식은 마이프로프로세서 설계자에게 더 높은 유연성을 제공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설계에 더 강력한 성능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리콘 칩의 성능은 오랜 세월 동안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발전했지만 구성 요소들을 상호 연결한 형태의 시스템은 그만한 성능 향상을 이루지 못했다.

경쟁업체들의 부상
인텔은 텃밭인 x86 분야에서도 아직 경쟁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대만의 비아 테크놀로지는 1987년 실리콘 밸리에 회사를 차리고 마더보드 및 기타 전자 부품에 사용되는 코어 로직 칩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x86 기술을 사용했다. 현재 비아는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제조하며 자체 x86 프로세서로 저전력 모바일 및 임베디드 시장을 공략 중이다.

세계 2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업체인 AMD는 약 2000년부터 인텔을 괴롭히는 경쟁 상대로 부상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AMD는 x86에 편승하는 제조업체에 불과했으며 인텔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다. 머큐리 리서치에 따르면 지금도 AMD의 점유율은 x86 호환 데스크톱 및 모바일 시장에서 약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AMD는 2000년 x86 명령어 세트의 64비트 상위 집합인 x86-64를 발표하며 기술적으로나 지명도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상위 집합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x86-64 시스템 사용자가 이 시스템에서 기존 32비트 소프트웨어를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 인텔의 64비트 프로세서는 인텔과 HP가 대형 시스템에서의 수퍼스칼라 실행을 위해 개발한 아키텍처인 아이테니엄이었는데, 아 아키텍처는 32비트 x86 기반 소프트웨어와 직접적으로 호환되지 않았다. 인텔은 2004년 자체 64비트 x86 명령어 상위 집합인 EMT64로 AMD의 위협에 대응했다. AMD와 언론은 AMD가 무엇보다 64비트 시장에서 인텔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패터슨은 “x86 명령어 세트의 유연성이 되레 인텔에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면서 “이러한 유연성으로 인해 인텔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회사가 x86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극한을 향하는 발전
현재 인텔의 x86은 컴퓨팅의 양 극단에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4월 28일 인텔은 크레이와 손잡고 인텔 x86 기반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새로운 수퍼컴퓨터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크레이는 이미 AMD의 x86 기반 64비트 옵테론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다.

4월 2일 상하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지금껏 인텔이 개발한 프로세서 중 가장 작은 아톰 x86 기반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일반적인 랩톱 프로세서의 소비 전력이 35W인데 반해 아톰의 소비 전력은 2.5W에 불과하다. 인텔은 이번 주 소형 랩톱 및 데스크톱을 위한 두 개의 새로운 아톰 칩을 출시했다.

그렇다면 과연 x86은 앞으로 30년 동안 더 번성하거나 최소한 생존할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만 보더라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설계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킬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서 깊은 저 x86의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모우리는 “x86에서 실행되는 유용한 소프트웨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다른 명령어 세트가 x86을 밀어내리라고 볼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발자취: x86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간략한 역사
인텔 x86 아키텍처의 개발을 이끈 사건과 기술을 살펴보고, 이후 30년 간 이어진 지배 기간 동안의 이정표를 돌아본다.

1947: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개발됨.

1965: 반도체 칩의 트랜지스터 수가 매년 2배로 늘어난다는 고든 무어(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발언이 일렉트로닉스지의 한 기사에 실림.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트랜지스터의 수는 30년이 넘도록 약 2년마다 2배로 늘어남.

1968: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앤디 그로브가 “인테그레이티드 일렉트로닉스(INTegrated ELectronics)”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인텔사를 설립.

1969: 인텔, 첫 번째 제품으로 세계 최초의 MOS(금속 산화물 반도체) 정적 램(RAM)인 1101 발표. 이 제품은 자기 코어 메모리의 종말을 알림.

1971: 인텔, 페데리코 패긴이 설계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비트 4004 발표. 2,000개의 트랜지스터로 이루어진 이 칩은 일본제 계산기용으로 제작됐지만 인텔 광고에서는 선견지명을 발휘 “칩 위의 마이크로프로그래머블 컴퓨터”로 칭함.

1972: 인텔, 8비트 8008 프로세서 발표. 10대였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이 칩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려고 시도하지만 부족한 성능에 직면.

1974: 인텔, 4,5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고 이전 프로세서에 비해 10배 더 빠른 8비트 8080 프로세서 발표.

1975: 알테어 8800이 8080의 첫 PC 애플리케이션이 되면서 PC 혁명이 시작됨.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8080용 알테어 베이직 언어 개발에 성공하는데, 이는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이 됨.

1976: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8비트 모토로라 6502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애플 II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x86 아키텍처는 위기에 직면. PC 제조사 코모도어 역시 인텔의 경쟁업체인 모토로라의 칩을 사용함.

1978: 인텔, 16비트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 발표. 이 프로세서는 산업 표준이 됨.

1979: 인텔, 8086의 저가형인 8088(8비트 버스 사용) 발표.

1980: 인텔, 8087 수치연산 코프로세서 발표.

1981: IBM, PC용 프로세서로 8088 채택. 훗날 한 인텔 중역은 이를 “인텔 역사상 가장 큰 승리”로 칭함.

1982: IBM, 인텔에 이어 8086 및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공급업체로 AMD와 계약.

1982: 인텔, 13만 4,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16비트 80286 프로세서 발표

1984: IBM, 2세대 PC인 PC-AT 개발. MS-DOS를 실행하는 PC-AT는 거의 10년 동안 실질적 PC 표준으로 군림함.

1985: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기 위해 동적 램 사업에서 철수하고, 27만 5,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32비트 칩 80386 프로세서를 발표. 이 프로세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

1986: 컴팩 컴퓨터, 80386 기반 PC 출시로 IBM에 앞서나감.

1987: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x86 코어 로직 칩셋을 판매하는 비아 테크놀로지 설립됨.

1989: 12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고 수치연산 코프로세서가 내장된 80486 출시. 인텔은 2000년 이후 멀티코어 프로세서 칩이 개발될 것임을 예측.

1980년대 후반: 썬 스팍, IBM/애플/모토로라 파워PC 및 밉스(MIPS) 프로세서의 리스크(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RISC) 아키텍처가 x86의 시스크(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CISC) 아키텍처를 위협. 인텔은 자체 리스크 프로세서인 i860으로 대응.

1990: 컴팩, 80486을 구동하는 업계 최초의 PC 서버 발표.

1993: 31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66MHz 펜티엄 프로세서가 출시되고 수퍼스칼라 기술이 발표됨.

1994: AMD와 컴팩, Am4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팩 컴퓨터를 위해 연합.

1995: 리스크 프로세서의 천적 펜티엄 프로 등장. 펜티엄 프로에는 명령어를 예상해 순서에 관계없이 실행하는 혁신적 신기능이 적용됨. 이러한 신기술과 초고속 온칩 캐시 및 독립적인 듀얼 버스가 결합되어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 대폭적인 성능 향상이 이루어짐.

1997: 인텔, 64비트 에픽(Epic) 프로세서 기술 발표. 또한 그래픽, 오디오, 음성 프로세싱 등의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MMX 펜티엄도 공개.

1998: 인텔, 보급형 셀러론 프로세서 출시.

1999: 비아, x86 프로세서 및 x87 코프로세서 제조업체인 사이릭스와 센토 테크놀로지 인수.

2000: 4,20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펜티엄 4 등장.

2003: AMD, x86 명령어 세트의 상위 집합인 x86-64 발표.

2004: AMD, x86 듀얼 코어 프로세서 칩 시연.

2005: 인텔, 첫 듀얼 코어 프로세서 칩 출시.

2005: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용 프로세서를 프리스케일(이전 모토로라) 및 IBM의 파워PC에서 인텔의 x86 프로세서 제품군으로 전환한다고 발표.

2005: AMD, 인텔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을 저해했다고 주장하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2008년 현재까지 계류 중).

2006: 델, AMD 프로세서 기반 시스템 제공 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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