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9

x86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①

Gary Anthes | Computerworld
30년 전 1978년 6월 8일, 인텔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라는 화려한 광고 문구와 함께 최초의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86을 발표했다. 과장 광고였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를 예견한 광고이기도 했다. 8086은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반 아키텍처(이후 x86으로 불림)는 기술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 사례 중 하나가 됐다.

“x86”은 인텔 및 몇몇 다른 업체들의 특정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실행하는, 기계어로 된 명령어 세트를 의미한다. 본질적으로는 칩을 위한 용어집 및 사용 규칙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8086부터 80186, 80286, 80386, 80486, 다양한 펜티엄 모델을 거쳐 현재의 멀티코어 칩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용 프로세서에 이르도록 x86 프로세서는 매번 확장된 명령어 세트를 채용했지만 각 프로세서는 이전 제품군의 프로세서와 하위 호환성을 유지했다.

8086이 등장한 이후 30년 동안 x86 제품군은 데스크톱 PC에서 서버, 휴대형 컴퓨터, 수퍼컴퓨터로 조직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x86으로 인해 수많은 경쟁 아키텍처와 칩 제조업체가 소멸되거나 비주류에 머물러야 했다. 경쟁 업체에 의해 선점됐던 시장(예를 들면 모토로라의 파워PC가 선점했던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마저도 최근에는 x86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어떻게 해서 컴퓨팅 분야를 이렇게까지 지배하게 되었을까?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의 시작
인텔의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971년 일본제 계산기용으로 제작된 4비트 4004였다. 그 직후 8비트 8008이 등장했고 1975년에는 8비트 8080 칩이 나왔다. 8080은 우편 주문 키트로 판매됐던 알테어 8800 PC에 탑재됐다. 참고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알테어 8800용 베이직을 판매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3년 후 16비트 8086이 처음 선보였다. 80년대 초반 IBM이 자사의 PC용 프로세서로 8086의 변형인 8088을 채택하면서 x86 아키텍처는 엄청난 추진력을 확보했고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전기 엔지니어이자 칩 설계자, 그리고 현재 인텔의 부사장인 패트릭 겔싱어는 PC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업계를 정신 없는 속도전으로 밀어 넣은 요소)은 1985년 32비트 80386의 등장이었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당시에는 기존 x86 모델의 16비트 주소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이 뚜렷하지 않았다면서 “사람들은 ‘32비트라니? 그건 미니컴퓨터나 메인프레임에 쓰는 거잖아’라며 우리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바보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컴팩 컴퓨터는 386 기반 PC를 출시했는데, 이 PC는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IBM의 막강한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IBM PC는 386보다 3배 이상 느린 16비트 80286으로 동작했다.

인텔에 따르면 IBM은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32비트 소프트웨어가 전무하다는 이유로 386을 냉대했다. 또한 IBM은 독자적인 16비트 운영 체제인 OS/2를 개발 중이기도 했다.

386 설계 팀의 일원이었던 겔싱어는 “x86 아키텍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IBM이 소유하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도, 운영 체제도, 하드웨어 설계도 IBM의 소유였다”면서 “세대가 넘어가면 IBM 외에는 누구도 이러한 일체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없었을 테고, 한 세대와 다음 세대 간의 호환성도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386의 등장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겔싱어는 “우리는 수직 산업에서 수평 산업으로 이동했고 그러자 비로소 세계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고 말했다.

1989년에는 386에 이어 486이 등장했다. 숫자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인텔은 1993년 기존의 명명 규칙을 깨고 5세대 프로세서의 이름을 586이 아닌 펜티엄으로 정했다. 이후 펜티엄 프로, 펜티엄 II, 펜티엄 D 등 펜티엄이라는 브랜드로 수많은 세대의 칩이 생산됐으며 이후 인텔은 보급형에는 셀러론, 고급형에는 코어 2라는 브랜드를 x86에 추가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물론 그 사이에는 속도, 성능 및 효율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가져온 설계 향상도 있었다) 이러한 칩은 모두 8086에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x86 명령어 세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성공의 요인과 배경
x86이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경쟁 마이크로프로세서 아키텍처를 제압하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지게 하면서 성공을 거둔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x86은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다. 1978년 당시는 여러 해에 걸쳐 거대하고 값비싼 메인프레임에서 보다 작고 저렴한 미니컴퓨터로 컴퓨팅의 영역이 이동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다음 단계는 데스크톱 컴퓨터였다.

게다가 x86은 훗날 인텔의 회장겸 CEO가 된 고든 무어가 1965년에 했던 예언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무어가 했던 예언의 요점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이 비용 증가 없이 2년마다 2배로 뛴다는 것이었다.

이후 무어의 법칙으로 통하게 된 이 예언은 맞아 떨어졌으며 x86은 데이터 센터에서 회사 사무실, 그리고 최종 사용자의 집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컴퓨팅 영역을 지배하게 됐다.

8086과 그 후속 프로세서는 초창기 데스크톱 컴퓨터의 두 거물인 빌 게이츠, 그리고 폴 앨런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두 사람은 1972년 조악한 8008 프로세서를 위한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후 보다 강력한 8080 프로세서용으로 마침내 개발에 성공했고 1975년 이 프로세서를 알테어 마이크로컴퓨터에 집어넣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업계를 이끌고 있는 거대한 소프트웨어 기반을 형성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실질적 협력 관계의 시작이었다. x86 아키텍처의 성공을 유도한 모든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풍부한 소프트웨어 자원이며,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리스크(RISC) 프로세서의 위협’이다.


2008.06.29

x86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①

Gary Anthes | Computerworld
30년 전 1978년 6월 8일, 인텔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라는 화려한 광고 문구와 함께 최초의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86을 발표했다. 과장 광고였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를 예견한 광고이기도 했다. 8086은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반 아키텍처(이후 x86으로 불림)는 기술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 사례 중 하나가 됐다.

“x86”은 인텔 및 몇몇 다른 업체들의 특정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실행하는, 기계어로 된 명령어 세트를 의미한다. 본질적으로는 칩을 위한 용어집 및 사용 규칙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8086부터 80186, 80286, 80386, 80486, 다양한 펜티엄 모델을 거쳐 현재의 멀티코어 칩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용 프로세서에 이르도록 x86 프로세서는 매번 확장된 명령어 세트를 채용했지만 각 프로세서는 이전 제품군의 프로세서와 하위 호환성을 유지했다.

8086이 등장한 이후 30년 동안 x86 제품군은 데스크톱 PC에서 서버, 휴대형 컴퓨터, 수퍼컴퓨터로 조직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x86으로 인해 수많은 경쟁 아키텍처와 칩 제조업체가 소멸되거나 비주류에 머물러야 했다. 경쟁 업체에 의해 선점됐던 시장(예를 들면 모토로라의 파워PC가 선점했던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마저도 최근에는 x86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어떻게 해서 컴퓨팅 분야를 이렇게까지 지배하게 되었을까?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의 시작
인텔의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971년 일본제 계산기용으로 제작된 4비트 4004였다. 그 직후 8비트 8008이 등장했고 1975년에는 8비트 8080 칩이 나왔다. 8080은 우편 주문 키트로 판매됐던 알테어 8800 PC에 탑재됐다. 참고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알테어 8800용 베이직을 판매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3년 후 16비트 8086이 처음 선보였다. 80년대 초반 IBM이 자사의 PC용 프로세서로 8086의 변형인 8088을 채택하면서 x86 아키텍처는 엄청난 추진력을 확보했고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전기 엔지니어이자 칩 설계자, 그리고 현재 인텔의 부사장인 패트릭 겔싱어는 PC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업계를 정신 없는 속도전으로 밀어 넣은 요소)은 1985년 32비트 80386의 등장이었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당시에는 기존 x86 모델의 16비트 주소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이 뚜렷하지 않았다면서 “사람들은 ‘32비트라니? 그건 미니컴퓨터나 메인프레임에 쓰는 거잖아’라며 우리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바보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컴팩 컴퓨터는 386 기반 PC를 출시했는데, 이 PC는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IBM의 막강한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IBM PC는 386보다 3배 이상 느린 16비트 80286으로 동작했다.

인텔에 따르면 IBM은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32비트 소프트웨어가 전무하다는 이유로 386을 냉대했다. 또한 IBM은 독자적인 16비트 운영 체제인 OS/2를 개발 중이기도 했다.

386 설계 팀의 일원이었던 겔싱어는 “x86 아키텍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IBM이 소유하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도, 운영 체제도, 하드웨어 설계도 IBM의 소유였다”면서 “세대가 넘어가면 IBM 외에는 누구도 이러한 일체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없었을 테고, 한 세대와 다음 세대 간의 호환성도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386의 등장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겔싱어는 “우리는 수직 산업에서 수평 산업으로 이동했고 그러자 비로소 세계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고 말했다.

1989년에는 386에 이어 486이 등장했다. 숫자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인텔은 1993년 기존의 명명 규칙을 깨고 5세대 프로세서의 이름을 586이 아닌 펜티엄으로 정했다. 이후 펜티엄 프로, 펜티엄 II, 펜티엄 D 등 펜티엄이라는 브랜드로 수많은 세대의 칩이 생산됐으며 이후 인텔은 보급형에는 셀러론, 고급형에는 코어 2라는 브랜드를 x86에 추가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물론 그 사이에는 속도, 성능 및 효율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가져온 설계 향상도 있었다) 이러한 칩은 모두 8086에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x86 명령어 세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성공의 요인과 배경
x86이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경쟁 마이크로프로세서 아키텍처를 제압하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지게 하면서 성공을 거둔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x86은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다. 1978년 당시는 여러 해에 걸쳐 거대하고 값비싼 메인프레임에서 보다 작고 저렴한 미니컴퓨터로 컴퓨팅의 영역이 이동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다음 단계는 데스크톱 컴퓨터였다.

게다가 x86은 훗날 인텔의 회장겸 CEO가 된 고든 무어가 1965년에 했던 예언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무어가 했던 예언의 요점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이 비용 증가 없이 2년마다 2배로 뛴다는 것이었다.

이후 무어의 법칙으로 통하게 된 이 예언은 맞아 떨어졌으며 x86은 데이터 센터에서 회사 사무실, 그리고 최종 사용자의 집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컴퓨팅 영역을 지배하게 됐다.

8086과 그 후속 프로세서는 초창기 데스크톱 컴퓨터의 두 거물인 빌 게이츠, 그리고 폴 앨런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두 사람은 1972년 조악한 8008 프로세서를 위한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후 보다 강력한 8080 프로세서용으로 마침내 개발에 성공했고 1975년 이 프로세서를 알테어 마이크로컴퓨터에 집어넣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업계를 이끌고 있는 거대한 소프트웨어 기반을 형성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실질적 협력 관계의 시작이었다. x86 아키텍처의 성공을 유도한 모든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풍부한 소프트웨어 자원이며,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리스크(RISC) 프로세서의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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