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나온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는 진실에 대한 집착을 깔끔하게 내다 버린 영화다. 그러나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인공을 맡고 ‘웨스트 윙(West Wing)’의 아론 소킨이 월터 아이작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각본을 만들었으며,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의 대니 보일이 감독한 이 영화가 지금까지 나온 스티브 잡스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달 초 제한 상영에 이어 이번 주 금요일 미 전역에서 개봉된다.
영화는 각기 40분으로 구성된 3개의 씬으로 나뉘며 각 씬 바로 앞에는 1984년 첫 매킨토시 출시, 1988년 NeXT 컴퓨터, 그리고 1998년 아이맥까지 잡스가 무대에 올라 제품을 발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각 씬에는 1976년 애플이 처음 설립된 차고 등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도 있다. 아타리(Atari) 시절과 인도에 머물던 시기 또는 이후 암 투병 등 캐릭터 개발과 관련된 내용은 대부분 빠졌고 대신 이 3개의 씬이 심층적인 캐릭터 분석을 위한 주 무대 역할을 한다.
3개의 기간을 연결하는 요소는 인물, 즉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 워즈니악, 전 애플 CEO 존 스컬리, 매킨토시 개발자 앤디 허츠펠드, 마케팅 임원 조안나 호프만, 전 연인 크리산 브레넌, 그리고 잡스와 브레넌의 딸인 리사 등이다. 애플이 과거나 지금이나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회사인지를 감안하면 남녀가 균형을 이룬 이러한 배역, 특히 수십 년 동안 잡스와 함께 한, 숨은 공신인 호프만의 등장은 반가운 요소다. 케이트 윈슬렛은 폴란드계 액센트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통찰력과 도덕성을 갖춘, 공감적이면서 강인한 호프만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한, 마이클 스틸버그도 박학다식함 뒤에 숨겨진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 앤디 허츠펠드를 그대로 그렸다.
그 외의 다른 배역은 허구성이 강하다. ‘잡스(Jobs)’를 보면 ‘70년대 쇼(That Seventies Show)’의 켈소가 스티브 잡스라는 부분은 적응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애쉬튼 커처는 잡스의 연설 패턴이나 특이한 몸짓까지 완벽하게 연기했다. 반면 마이클 패스벤더는 잡스의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노골적이며 대립을 즐기고 다혈질적인 워즈니악을 연기한 세스 로건 역시 마찬가지다.
워즈와 스컬리(‘마션(Martian)’에도 나온 제프 다니엘스가 연기함)는 잡스의 실패를 면전에 대고 퍼부으면서 NeXT가 실패할 것이라고 악담하고, 잡스가 관여하지 않은 덕분에 애플 II가 20년 애플 역사상 가장 큰(그리고 유일한) 성공작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차고 장면에서 잡스가 애플 II에는 확장 슬롯이 없어야 한다며 폐쇄성을 요구하자, 워즈는 “그건 네 성격의 결점이지, 컴퓨터에 그 결점까지 넣을 필요는 없어”라고 쏘아붙인다.) 지금도 애플 II를 사용하는 필자로서는 이렇게 다른 시각의 이야기가 반갑다. 잡스는 실제로 천재이고 잡스 없이 지금의 애플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잡스가 손을 대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것은 엄연히 근거 없는 낭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워즈와 스컬리는 잡스에게 이렇게 반기를 들 기회가 없었다. 1985년 잡스가 애플을 떠난 이후 잡스와 스컬리가 대화를 나누었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스컬리의 반복적인 등장은 설득력이 없다. 워즈 역시 1985년 애플을 떠났지만 영화에서는 1998년까지도 애플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불과 3개의 씬으로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예술적 허용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진실과 동떨어진 예술적 허용이 지나치게 많아서 역사적인 정확성에 대해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원재료에 대한 충실함이 재미있는 이야기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코믹 북 스타일의 각색 또는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잡스는 과대망상, 지배, 관계, 실패, 성공에 관한 날카롭고 매력적인 캐릭터 연구가 된다. 세세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이러한 큰 테마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게 들어맞는다.
패스벤더는 초창기의 교활하고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완고한 성격부터 1998년 마지막 씬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성격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테마를 매끄럽게 연기한다. 그 과정에서 잡스는 NeXT의 실패, 픽사의 성공, 로렌스 파웰과의 관계를 거치면서 애플에 복귀했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유능한 제작진이 동원됐다. 영화는 정지 장면이 드물고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많은, 소킨 특유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각본에 따른다. 캐릭터와 단편적 상황을 각양각색으로 혼합했다는 점 외에는 아이작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 과연 맞는지 의심스러운 장면이 상당히 많다.
보일은 시대별로 다른 카메라를 사용했다. 1984년은 거친 16mm, 1988년은 더 고운 35mm, 그리고 마지막 1998년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눈으로 35mm와 디지털은 구분이 어려웠지만 1984년 영상은, 특히 이후 씬에서 이 시대로 회상하는 장면에서 뚜렷이 구분됐다. 밥 딜런과 그의 음악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애착을 반영한 듯, 밥 딜런 중심의 사운드트랙이 영상을 뒷받침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필자는 잡스 이야기, 그리고 잡스를 헐뜯고 신격화하는 두 진영 간의 싸움에 대해서는 진력이 나도록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아마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할리우드는 진실이 아니라 픽션을 다루는 곳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몇 가지 진실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훌륭한 픽션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티브 잡스 영화 중 가장 매혹적이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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