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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 블로그 | 잡스의 비전 담은 애플 에어포트에게 안녕을 고하며

Michael Simon | Macworld 2018.04.30
필자의 지하 창고 구석 어디엔가 진한 회색의 에어포트 베이스 스테이션이 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차마 넣지 못한 애플 제품 중 하나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제품이 애플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라우터가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못생긴 상자를 의미하던 시대, 곡선으로 이루어진 애플 라우터는 마치 UFO처럼 신비로웠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나서도 필자는 수년간 그 제품을 선반에 보관해왔다.

또 하나 다른 이유는 역사다. 에어포트 베이스 스테이션은 아이폰, 아이맥, 아이패드, 아이팟의 계보를 이으며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예시다. 원래 에어포트는 애플 고급 사용자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가정용 무선 네트워크가 낯선 개념이던 시기 일반 사용자를 겨냥해 설계된 제품이었다. 복잡한 설정과 구성 화면을 플로그 앤드 플레이의 간편한 시스템으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탕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의 아이북과만 작동했다. 그리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에어포트가 업계에 미친 영향은 아이북 그 자체와 비교할 만했다.

그리고 이제 에어포트는 수명을 다했다. 아마도 에어포트 같은 애플 제품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동성이 강화된 놀라운 제품
1999년 당시 아이북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루센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ies)와 공동 설계한 아이북은 플로피 드라이브가 없는 아이맥과 같았고, 위험도 그만큼 높았다. 에어포트가 그 위험과 관심을 더 높였다. 스티브 잡스는 업계보다 한 발 앞서 완전한 무선 환경을 꿈꾼 인물이었고, 에어포트는 무선 환경으로 나아갈 첫 번째 디딤돌이 되었다. 아이북에 꼭 에어포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에어포트에는 맥이 꼭 필요했고, 스티브 잡스는 에어포트를 소개하면서 가장 의외였던 노트북 제품을 골랐다.



아마 와이파이에 익숙한 고급 사용자를 주력 대상으로 한 다음, 일반 사용자층에 홍보하는 것이 훨씬 쉬운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다른 것을 원했다. 잡스는 1999년에 이미 무선 기술이 1984년의 PC만큼이나 개인적인 기술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 점을 드러낼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북의 가격은 이미 1,599달러였다. 여기에 베이스 스테이션 가격은 299달러, 설치에 필요한 에어포트 카드가 99달러로, 3개 장비를 모두 갖출 때 드는 전체 가격이 2,000달러에 달했다. 잡스는 일반 사용자, 심지어는 아이북을 사기로 결심한 사용자들도 비싼 가격에 혀를 내두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1999년 뉴욕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북은 처음부터 무선 통신 최적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최초의 컴퓨터”라는 길이 닦여져 있었다. 분명, 아이북이 길을 연 후 수많은 다른 제품이 그 뒤를 따랐다.

선 없는 미래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판매에 이익이 되는 점까지 고려하면 아마도 고급 사용자를 겨냥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력한 성능의 파워북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색상의 귀여운 노트북과 에어포트를 결합할 때, 잡스는 와이파이가 고급 기능이 아니라 보편적인 미래이며, 숙련된 사용자에 국한되지 않은 길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1999년 당시에도 에어포트는 초당 최고 11MB의 속도를 제공했다. 절대로 무시할 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완벽한 엔드 투 엔드 암호화로 개인 정보 우려도 잠재웠다. 이런 환경은 일반 사용자용 노트북에서 전례가 없었다. 커다란 조개 껍질 같이 생긴 아이북이 원래부터 목표한 지점은 아니었지만, 에어포트는 애플의 제품 포트폴리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다른 맥 제품이 에어포트 지원을 시작하기까지는 몇 개월이 더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 에어포트는 모든 기기를 넘나드는 무선 솔루션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오리지널 에어포트에서 선보였던 사용하기 간편한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에어포트 익스프레스에서 타임 캡슐(Time Capsule)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무선 제품은 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러나 복잡한 시스템을 간편화한다는 애플만의 주문은 제품이 성장해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신제품 라우터를 구입할 때 애플이 제공하는 지원 문서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근시안적인, 그리고 단선적인
에어포트가 꼭 있어야만 하는 장비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애플의 잘못이다. 최근에는 여러 대의 라우터를 구입해 가정용 메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 중 에어포트보다 뛰어난 제품은 많지 않다. 필자는 현재 오르비 제품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만에 하나를 대비해 사무실에 에어포트 익스트림 타임 캡슐을 상비하고 있다. 그리고 오르비의 설정 페이지에 들어갈 일이 생길 때마다, 에어포트 유틸리티(AirPort Utility)의 단순함이 그리워진다.

넷기어의 오르비


애플도 메쉬 시스템의 커버리지와 에어포트의 단순성을 결합한 와이파이 시스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오래 전에 이 게임을 중단헀다. 최근 나온 제품들은 카테고리를 채우는 데 급급하고, 팀쿡이 에어포트와 아이북 콤보만큼 위험을 감수한 혁신적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www.apple.com/wireless를 방문하면 404 페이지로 이동한다. 1999년에 혁명적으로까지 느껴졌던 페이지가 이제는 문자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맥이 쇠퇴했다거나, 터치 바가 쓸모 없다거나, 또는 맥북 프로 키보드가 형편 없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장기적인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다. 아이폰 X, 애플 워치, 홈팟 모두 현재 판매되고 있지만, 과연 10년 후에는 어떨까? 새로운 첨단 기능과 디자인이 가득하다고 해도 스티브 잡스가 에어포트를 통해 천명하던 비전은 이제 여기에 없다. 아이폰 X가 애플의 향후 10년을 의미하는 제품이라고는 하지만, 애플의 전반적인 비전은 분명 장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맥 프로 신제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 몇 년이나 걸린 것과 같은 이유다. 팀이나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 맥 프로의 비전이 너무나 근시안적이라서 모든 것을 치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어포트 그 자체는 성장의 토대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내놓은 수십 년짜리 계획의 첫 번째 단계로 랜선을 해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잘 수행했다. 어쩌면 필자는 먼지 쌓인 창고에서 고물 에어포트를 다시 꺼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한동안 애플의 목표와 비전이 명확하게 자리잡은 에어포트 같은 제품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므로.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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