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2

글로벌 칼럼 | 노키아에게 "노스텔지아 테크 시장은 이미 오래전 몰락했다"

John Brandon | Computerworld
필자가 노키아 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대의 일이다. 휴대전화의 외관은 전부 고만고만했고, 기기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곤 스네이크(Snake)라는 이름의 꼬리 늘리기 게임이 유일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단순한 게임을 손에 땀을 쥐며 즐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버스로 이동하던 중 휴대전화를 두고 내려 절망했던 기억도 난다. 온전한 개인 폰도 아닌 회사에서 지급받은 기기였음에도 많은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내가 휴대폰에 가진 애착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하이테크라 부르기 어려운 흑백 액정에 커다란 키보드가 달린, 휴대폰이라기보단 호출기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기계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회사 생활을 하며 우리의 모바일 라이프는 블랙베리(Blackberry)로 ‘업그레이드’ 됐다. 물론 여전히 화면은 흑백이었고, 구동되는 게임도 거의 없었으며, 키보드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말도 안되게 축소해놓은 형태였다. 이 구식 모바일 폰은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고 동작이 멈춰버리는, 낡은 앱들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전화번호나 여타 연락처를 잃어버리고 나면, 연락을 취할 다른 방법이라곤 직접 그들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페이스북 프로필에 접근해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당시의 직장인들은 이메일 서명란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놓는 경우도 드물었다. 휴대전화는 일부 얼리 어답터들의 소유물이고,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무실과 가정에 놓인 유선 전화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첫 노키아 폰을 사용하던 시절은 눈가리개를 하고 락 공연장 인근을 더듬거리며 돌아다니는 것과 같았다. 휴대폰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지금은 그 모델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 특징이라곤 배터리가 하루를 겨우 버텼다는 점 정도다. 더군다나 당시는 기기들의 충전단자 규격도 통일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다. 휴대폰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동기화하기 위해선 기기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해야 했고, 내구성 역시 조악해 카펫에 떨어진 폰이 단번에 박살 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필자에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그 갑갑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가? 신형 노키아 3310 모델은 최악의 화면에 불편한 키패드가 달린 기기다. 노란색, 오렌지색의 외관 역시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노스텔지아, 참 재미있는 말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LP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언젠가 디지털 형태로 전송되는 오디오 파일이 전축으로 재생되는 구식 LP 앨범에 비해 음역 폭이 좁으며, 특정 음역에서는 음감 역시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누군가는 2진 파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의 ‘온도’를 LP는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대중의 평가에는 순수한 기술적 측면 이외에 앨범 커버와 그 위에 얹는 전축바늘, 그리고 ‘베스트 앨범’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노스텔지아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의 대상이 피처 폰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과거의 모델에 몇 가지 새로운 기능이 더해졌고, 그 부활에 많은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눈길 가운데 긍정적인 시선이 얼마나 될 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노키아 3310이 지금까지 공개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것이 아이폰의 고객들을 뺏어올 수 있을까? 삼성 노트 7 사태의 반사이익이 노키아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6.2 인치의 대형 스크린과 새로운 앱들이 제안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노키아 폰의 소형 스크린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이 과거의 폰이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는 사실뿐이다.

필자에게 90년대는 신문물의 시대가 아닌 불편함의 시대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LP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검색에 5초만 투자하면 스프링스틴의 옛 명곡들을 언제던 즐길 수 있는데, 왜 먼지 묵은 앨범장을 뒤져야 한단 말인가?) 노스텔지아 테크놀로지의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 식빵 두께의 태블릿, 운동기구로도 쓸 수 있는 노트북? 브라운관 TV? 사라진 것들에는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혁신의 첨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발목 잡혀온 PC와 달리 모바일 환경에는 다양한 테크놀로지 혁신을 반영한 놀라운 기능들이 쉼 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기는 우리의 일상과 직업 생활 모두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디지털 조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가 그토록 즐기던 스네이크 게임 역시 이제는 컬러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는 이렇게 변해간다. editor@itworld.co.kr


2017.03.02

글로벌 칼럼 | 노키아에게 "노스텔지아 테크 시장은 이미 오래전 몰락했다"

John Brandon | Computerworld
필자가 노키아 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대의 일이다. 휴대전화의 외관은 전부 고만고만했고, 기기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곤 스네이크(Snake)라는 이름의 꼬리 늘리기 게임이 유일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단순한 게임을 손에 땀을 쥐며 즐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버스로 이동하던 중 휴대전화를 두고 내려 절망했던 기억도 난다. 온전한 개인 폰도 아닌 회사에서 지급받은 기기였음에도 많은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내가 휴대폰에 가진 애착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하이테크라 부르기 어려운 흑백 액정에 커다란 키보드가 달린, 휴대폰이라기보단 호출기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기계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회사 생활을 하며 우리의 모바일 라이프는 블랙베리(Blackberry)로 ‘업그레이드’ 됐다. 물론 여전히 화면은 흑백이었고, 구동되는 게임도 거의 없었으며, 키보드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말도 안되게 축소해놓은 형태였다. 이 구식 모바일 폰은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고 동작이 멈춰버리는, 낡은 앱들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전화번호나 여타 연락처를 잃어버리고 나면, 연락을 취할 다른 방법이라곤 직접 그들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페이스북 프로필에 접근해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당시의 직장인들은 이메일 서명란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놓는 경우도 드물었다. 휴대전화는 일부 얼리 어답터들의 소유물이고,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무실과 가정에 놓인 유선 전화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첫 노키아 폰을 사용하던 시절은 눈가리개를 하고 락 공연장 인근을 더듬거리며 돌아다니는 것과 같았다. 휴대폰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지금은 그 모델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 특징이라곤 배터리가 하루를 겨우 버텼다는 점 정도다. 더군다나 당시는 기기들의 충전단자 규격도 통일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다. 휴대폰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동기화하기 위해선 기기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해야 했고, 내구성 역시 조악해 카펫에 떨어진 폰이 단번에 박살 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필자에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그 갑갑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가? 신형 노키아 3310 모델은 최악의 화면에 불편한 키패드가 달린 기기다. 노란색, 오렌지색의 외관 역시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노스텔지아, 참 재미있는 말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LP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언젠가 디지털 형태로 전송되는 오디오 파일이 전축으로 재생되는 구식 LP 앨범에 비해 음역 폭이 좁으며, 특정 음역에서는 음감 역시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누군가는 2진 파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의 ‘온도’를 LP는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대중의 평가에는 순수한 기술적 측면 이외에 앨범 커버와 그 위에 얹는 전축바늘, 그리고 ‘베스트 앨범’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노스텔지아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의 대상이 피처 폰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과거의 모델에 몇 가지 새로운 기능이 더해졌고, 그 부활에 많은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눈길 가운데 긍정적인 시선이 얼마나 될 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노키아 3310이 지금까지 공개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것이 아이폰의 고객들을 뺏어올 수 있을까? 삼성 노트 7 사태의 반사이익이 노키아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6.2 인치의 대형 스크린과 새로운 앱들이 제안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노키아 폰의 소형 스크린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이 과거의 폰이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는 사실뿐이다.

필자에게 90년대는 신문물의 시대가 아닌 불편함의 시대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LP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검색에 5초만 투자하면 스프링스틴의 옛 명곡들을 언제던 즐길 수 있는데, 왜 먼지 묵은 앨범장을 뒤져야 한단 말인가?) 노스텔지아 테크놀로지의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 식빵 두께의 태블릿, 운동기구로도 쓸 수 있는 노트북? 브라운관 TV? 사라진 것들에는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혁신의 첨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발목 잡혀온 PC와 달리 모바일 환경에는 다양한 테크놀로지 혁신을 반영한 놀라운 기능들이 쉼 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기는 우리의 일상과 직업 생활 모두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디지털 조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가 그토록 즐기던 스네이크 게임 역시 이제는 컬러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는 이렇게 변해간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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