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3

[CIA의 IT] ② "IT가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Thomas Wailgum | CIO

CIA가 대대적으로 쇄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IT가 있다.

CIA 취재기 2부에서는 CIA 직원들이 9/11전과 후의 환경과 이날 이후 초래된 엄청난 변화에 대한 이야기해본다.

 

원시적이었던 CIA IT 시스템

다른 정부기관들과 마찬가지로, CIA와 CIA의 IT부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CIA 요원들이, 그리고 CIA가 IT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CIA와 CIA의 IT 부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947년에 설립된 CIA의 임무는 해외에서 비밀공작임무의 수행을 통해 중요한 국가 보안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분석, 취합하여 대통령이나 군부 수반 및 다른 정책결정자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CIA는 창립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구소련과 공산주의와의 전투에 치중해 온 게 사실이다.

 

"나는 1980년대 중반에 CIA에 입사했는데, 당시 CIA는 대규모 잠복 작전에 전념하고 있었다. 당시 내 첫 임무 중 하나가 그 작전을 IT의 관점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게 일종의 천성이었던 것 같다.”

 

CIA의 CIO 알 타라슈크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해외 근무를 했다.

 

타라슈크에 따르면, 당시의 IT 업무는 주로 'Commo'라고 불리는 통신청(Office of Communications)에서 이루어졌으며, 주된 통신 수단은 2차 대전 때부터 사용해온 케이블 통신이었다.

 

타라슈크는 당시의 IT에 대해 "주로 HF(고주파) 회로를 바르게 잘 조정해서 그런 메시지들을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회상했다.

 

그는 또, “문자 기반의 매우 단순한 것이었지만, 작전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소련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CIA에 있어 격변의 사건이었다. 어제까지 적들이었던 나라들이 더 이상 적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중 일부에선 이제 우리 조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일종의 소강상태가 있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조직 감축과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라고 타라슈크는 회상했다.

 

그는 이어 “지원부서의 일부로 속해 있던 IT가 받은 타격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가 구축해 온 글로벌 인프라가 아주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CIA 정보국 사업정보전략 책임자(애널리스트)인 켄 웨스트브룩(Ken Westbrook)도 1990년대 대부분과 2000년대 초까지의 힘든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웨스트브룩은 "우리는 코소보 전쟁 때 하루 24시간을 일했다. 이 때 요원들은 정보 수집과 통신 시도 등의 단순한 일들 때문에 고분분투하며 애써야만 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CIA의 주정보처리 시스템은 CIRAS라는 것이었는데, 특정 문건의 조회 여부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조차 없는 시스템이었다.

 

검색 및 네트워킹 기능이 그야말로 '원시적'인 수준의 시스템이었다는 것. 이 CIRAS는 결국 2007년 '트라이던트'라는 이름의 보다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교체되게 된다.

 

부실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보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2000년부터의 뉴스 리포트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을 미국이 폭격하여 세 명의 사망자의 20명의 부상자를 낸 사건이, 부분적으로 CIA 관리들이 중국 대사관을 유고슬라비아 육군 창고로 착각한 데 원인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작전에 사용된 데이터가 너무 오래된 지도를 근거로 하고 있었던 데다가, 이 공격 제안이 군부에 전달되기 전 어느 누구도 이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웨스트부룩은 "나는 IT가 분석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 가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라며, “훌륭한 IT 없이는 제대로 된 분석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라고 말했다.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라"

물론 1990년대에 정보공유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부서는 비단 CIA 뿐이 아니었다.

 

9/11 위원회 보고서는 "1990년대부터 9/11이 발생하기까지, 첩보계는 국가간 테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고분 분투했다"면서, "그러나 너무 많은 중요 과제들과, 예산 동결, 낙후된 구조 및 관료적 경쟁의식 등의 결합이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에 뒤바뀌게 되었다.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과 그에 따른 전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CIA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특히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라고 불렸던 IT부서는 더욱 그랬다.

 

9/11당시 IT 인프라 담당 조직의 부장이었던 타라슈크는 “그 일로 우리 임무의 초점이 바뀌었다. 갑자기 ‘전세계전인 테러와의 전쟁’이 조직의 절대적인 아젠다가 되어 버렸다. 사명감이 다시금 돌아왔다"라고 회고했다.

 

IT 부서의 경우 그 압박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타라슈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곧, 우리의 방침도 확립됐다. 즉,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되, 뭐든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결한다. 시스템을 통합하고, 인프라를 최대한 확대하여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임무가 어떻게든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른 부서와 협력할 창조적인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인프라, 스토리지, 대역폭, 서버, 응용프로그램 및 인원확충의 요건이 치솟았다. 이에 따라, 이 부문의 수요가 두 배, 세 배 혹은 네 배로 증가하게 되었다.

 

타라슈크는 그러나 당시 자금 부족과 다운사이징 때문에,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제대로 조직된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예로, CIA의 새로운 시스템을 위한 최상의 기업 아키텍처 전략을 결정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타라슈크는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며, “그래서, 우리는 있는 것들을 한 데 모아 꾸려가야 했었다”라고 말했다.

 

2001년과 2002년 초, 브루스 버코위츠라는 이름의 전직 CIA 관리가 CIA 첩보국(DI) 정보분석가들이 어떻게 정보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더 효과적으로 IT를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결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IT 서비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또 접근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또 CIA는 애널리스트들이 IT를 쉽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가장 안 좋은 점은 “CIA의 자체 네트워크 밖에 존재하는 정보는 첩보 임무에 있어 부차적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보 공유에 의한 보안상의 위험과 “잠재적으로 기술이 위험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 정보분석가들에게는 기술이란 것이 동지라기 보다는 두려운 고민거리가 되었다고 버코위츠는 전했다.

 

그 결과, “DI 정보분석가들은 민간분야나 다른 정부 기관의 정보분석가들에 비해 새로운 정보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아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평균적으로 최소 5년 이상은 뒤쳐져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2002년 CIA는 직원들 중 선발한 한 표본집단에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물었던 적이 있다.

 

웨스트브룩에 따르면, 그 직원들이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나열했던 그 모든 것들 중, IT가 젤 마지막에 언급되었다고 한다.

 

CIA 첩보원들과 애널리스트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IT 없이 일을 해 와서 정작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느끼지 못했었던 것이다.

 

9/11 공격에 의해 허를 찔리고, 일류 IT 시스템이 부재한 정보기관은 비단 CIA뿐이 아니었다. 9/11 보고서는 미국 정부 전반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상상력, 정책, 역량 및 관리에 있어서의 실수와 태만이 존재했다.”



2008.08.13

[CIA의 IT] ② "IT가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Thomas Wailgum | CIO

CIA가 대대적으로 쇄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IT가 있다.

CIA 취재기 2부에서는 CIA 직원들이 9/11전과 후의 환경과 이날 이후 초래된 엄청난 변화에 대한 이야기해본다.

 

원시적이었던 CIA IT 시스템

다른 정부기관들과 마찬가지로, CIA와 CIA의 IT부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CIA 요원들이, 그리고 CIA가 IT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CIA와 CIA의 IT 부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947년에 설립된 CIA의 임무는 해외에서 비밀공작임무의 수행을 통해 중요한 국가 보안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분석, 취합하여 대통령이나 군부 수반 및 다른 정책결정자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CIA는 창립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구소련과 공산주의와의 전투에 치중해 온 게 사실이다.

 

"나는 1980년대 중반에 CIA에 입사했는데, 당시 CIA는 대규모 잠복 작전에 전념하고 있었다. 당시 내 첫 임무 중 하나가 그 작전을 IT의 관점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게 일종의 천성이었던 것 같다.”

 

CIA의 CIO 알 타라슈크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해외 근무를 했다.

 

타라슈크에 따르면, 당시의 IT 업무는 주로 'Commo'라고 불리는 통신청(Office of Communications)에서 이루어졌으며, 주된 통신 수단은 2차 대전 때부터 사용해온 케이블 통신이었다.

 

타라슈크는 당시의 IT에 대해 "주로 HF(고주파) 회로를 바르게 잘 조정해서 그런 메시지들을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회상했다.

 

그는 또, “문자 기반의 매우 단순한 것이었지만, 작전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소련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CIA에 있어 격변의 사건이었다. 어제까지 적들이었던 나라들이 더 이상 적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중 일부에선 이제 우리 조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일종의 소강상태가 있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조직 감축과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라고 타라슈크는 회상했다.

 

그는 이어 “지원부서의 일부로 속해 있던 IT가 받은 타격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가 구축해 온 글로벌 인프라가 아주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CIA 정보국 사업정보전략 책임자(애널리스트)인 켄 웨스트브룩(Ken Westbrook)도 1990년대 대부분과 2000년대 초까지의 힘든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웨스트브룩은 "우리는 코소보 전쟁 때 하루 24시간을 일했다. 이 때 요원들은 정보 수집과 통신 시도 등의 단순한 일들 때문에 고분분투하며 애써야만 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CIA의 주정보처리 시스템은 CIRAS라는 것이었는데, 특정 문건의 조회 여부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조차 없는 시스템이었다.

 

검색 및 네트워킹 기능이 그야말로 '원시적'인 수준의 시스템이었다는 것. 이 CIRAS는 결국 2007년 '트라이던트'라는 이름의 보다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교체되게 된다.

 

부실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보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2000년부터의 뉴스 리포트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을 미국이 폭격하여 세 명의 사망자의 20명의 부상자를 낸 사건이, 부분적으로 CIA 관리들이 중국 대사관을 유고슬라비아 육군 창고로 착각한 데 원인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작전에 사용된 데이터가 너무 오래된 지도를 근거로 하고 있었던 데다가, 이 공격 제안이 군부에 전달되기 전 어느 누구도 이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웨스트부룩은 "나는 IT가 분석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 가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라며, “훌륭한 IT 없이는 제대로 된 분석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라고 말했다.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라"

물론 1990년대에 정보공유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부서는 비단 CIA 뿐이 아니었다.

 

9/11 위원회 보고서는 "1990년대부터 9/11이 발생하기까지, 첩보계는 국가간 테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고분 분투했다"면서, "그러나 너무 많은 중요 과제들과, 예산 동결, 낙후된 구조 및 관료적 경쟁의식 등의 결합이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에 뒤바뀌게 되었다.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과 그에 따른 전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CIA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특히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라고 불렸던 IT부서는 더욱 그랬다.

 

9/11당시 IT 인프라 담당 조직의 부장이었던 타라슈크는 “그 일로 우리 임무의 초점이 바뀌었다. 갑자기 ‘전세계전인 테러와의 전쟁’이 조직의 절대적인 아젠다가 되어 버렸다. 사명감이 다시금 돌아왔다"라고 회고했다.

 

IT 부서의 경우 그 압박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타라슈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곧, 우리의 방침도 확립됐다. 즉,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되, 뭐든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결한다. 시스템을 통합하고, 인프라를 최대한 확대하여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임무가 어떻게든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른 부서와 협력할 창조적인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인프라, 스토리지, 대역폭, 서버, 응용프로그램 및 인원확충의 요건이 치솟았다. 이에 따라, 이 부문의 수요가 두 배, 세 배 혹은 네 배로 증가하게 되었다.

 

타라슈크는 그러나 당시 자금 부족과 다운사이징 때문에,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제대로 조직된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예로, CIA의 새로운 시스템을 위한 최상의 기업 아키텍처 전략을 결정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타라슈크는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며, “그래서, 우리는 있는 것들을 한 데 모아 꾸려가야 했었다”라고 말했다.

 

2001년과 2002년 초, 브루스 버코위츠라는 이름의 전직 CIA 관리가 CIA 첩보국(DI) 정보분석가들이 어떻게 정보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더 효과적으로 IT를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결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IT 서비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또 접근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또 CIA는 애널리스트들이 IT를 쉽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가장 안 좋은 점은 “CIA의 자체 네트워크 밖에 존재하는 정보는 첩보 임무에 있어 부차적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보 공유에 의한 보안상의 위험과 “잠재적으로 기술이 위험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 정보분석가들에게는 기술이란 것이 동지라기 보다는 두려운 고민거리가 되었다고 버코위츠는 전했다.

 

그 결과, “DI 정보분석가들은 민간분야나 다른 정부 기관의 정보분석가들에 비해 새로운 정보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아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평균적으로 최소 5년 이상은 뒤쳐져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2002년 CIA는 직원들 중 선발한 한 표본집단에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물었던 적이 있다.

 

웨스트브룩에 따르면, 그 직원들이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나열했던 그 모든 것들 중, IT가 젤 마지막에 언급되었다고 한다.

 

CIA 첩보원들과 애널리스트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IT 없이 일을 해 와서 정작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느끼지 못했었던 것이다.

 

9/11 공격에 의해 허를 찔리고, 일류 IT 시스템이 부재한 정보기관은 비단 CIA뿐이 아니었다. 9/11 보고서는 미국 정부 전반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상상력, 정책, 역량 및 관리에 있어서의 실수와 태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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