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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 구글의 적은 누구인가

JR Raphael | Computerworld 2018.03.26
한때 스마트워치가 미래의 기술로 주목 받는 때가 있었다. 스마트폰을 대신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전자제품,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며 여가를 보내는 방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모바일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뭐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최근의 ‘챗봇 혁명’처럼, 스마트워치를 둘러싼 유행이나 기대감 역시 그 어떤 실체도 갖지 못한 채 사라졌다. 요즘 스마트워치는 조금 비싼 피트니스 트래커가 이메일 확인까지 가능한 수준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기술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다지 혁신적이지 못한 애매한 디바이스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웨어러블 플랫폼을 완전히 갈아 엎고 새롭게 시작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 구글은 안드로이드 웨어(Android Wear)를 보다 포괄적인 웨어 OS(Wear OS)로 리브랜딩한다고 발표했다. 어느 모로 보나 크로스 플랫폼 지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전략이다.

그러나 웨어 OS를 둘러싼 구글의 과제는 단순한 이름 문제만은 아니다. 구글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초기에 보여줬던 열정이나 가능성이 사그라든 상태다. 구글이 이처럼 중도에 열정을 잃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웨어 OS가 처음은 아니다.

확신이 없는 ‘상황 인지 능력’
초기에 안드로이드 웨어에는 다른 스마트워치가 따라올 수 없는 비밀 병기가 있었다. 바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안드로이드 웨어가 출시되기 전, 필자는 스마트워치를 차별화하고 진짜 유용한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게 만들 수 있는 핵심 기능이 바로 스마트한 상황 인지 기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예측 지능 기술이야말로 구글이 다른 어떤 기업보다 강점을 보여왔던 분야이기도 하다.

“바로 손목시계 형태에 최적화되어 더 유용하게 만들어줄 구글 나우(Google Now)다. 구글 나우는 사용자가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해서 카드로 띄어준다. 사용자의 위치와 사용자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목적지 등을 기반으로 지능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글 나우의 유용함에 익숙한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은 휴대폰을 들어야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껴왔다. 구글 나우가 스마트워치에 적용되면 이런 불편함이 사라진다.”


안드로이드 웨어의 초기 시도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하드웨어 역시 개선할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워치라는 디바이스 자체가 순간 순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해 보여주는 데에 가장 최적화되어있으며, 그것을 위해 태어난 디바이스이기 때문이다. 미리 알림 기능이든, 지금 가려는 길의 도로 정체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든 말이다.

안드로이드 웨어 리뷰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정보가 유의미하게 사용되려면 적합한 맥락에서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용자가 하나하나 요청하지 않고도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안드로이드 폰에서도 터치 몇 번으로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손목에 찬 디바이스에서, 내가 일부러 찾지 않아도 정보가 제공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웨어가 문맥적 정보를 중심에, 그리고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덕분에 구글의 안드로이드 웨어는 뜬금포로 필요 없는 정보를 던져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유용하게 느껴진다.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과 같이 알림 기반 카드를 단지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액세스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강력한 웨어러블 플랫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복잡한 인터페이스에, 쓸데없이 다양한 앱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애플 워치가 등장하며 문제가 시작됐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애플 워치의 이런 단점들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출시된 애플 워치는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별로였다.) 구글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던 자신들의 플랫폼을 고수하는 대신 이를 완전히 갈아 엎고 애플의 잘못된 방식을 따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7년 안드로이드 웨어 2.0 업데이트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웨어를 타 디바이스와 차별화하며 유용하게 만들었던 거의 모든 핵심 요소들을 잃고 말았다. 예측 지능이나 알림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쉽고 빠르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웨어의 가장 큰 장점이었으나 그마저도 사라졌다. 대신 자그마한 시계 화면에서는 애초에 제대로 소화해 내기도 힘든, 이름만 그럴듯한 기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복잡한 앱, 화면 내 키보드, 몇 번을 터치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는 알림 기능 등이 그것이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구글 역시 스마트워치가 스마트폰의 축소판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두 디바이스는 엄연히 다르며, 사용자들이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구글은 출발은 제대로 했지만 도중에 옆길로 새면서 최초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상황 이해라는 새로운 개념을 잘 정제해 마케팅하고, 사람들에게 이를 이해시키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이것을 포기하고 애플의 접근을 따라 하기로 한 것이다.

구글이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또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구글의 적은 구글 자신
앞에서는 스마트워치와 구글 나우라는 찰떡궁합 기술의 매칭이 성사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지만, 사실 구글 나우 조차도 뛰어난 아이디어를 확신과 추진력의 결여로 도중에 망쳐버린 안타까운 케이스 중 하나다.

2012년 안드로이드 폰에 구글 나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모두들 이것을 ‘미래의 예측 검색 기술’로 불렀다. 구글 나우는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온갖 크고 작은 정보들을 한데 모아 유용한 정보의 보고로 탈바꿈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기술이었다. 무엇보다, 이는 구글만이 해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구글 나우는 그저 ‘피드’정도로 전락하여 제대로 된 고유 명사조차 부여받지 못할 만큼 그 명성과 지위를 잃었다. 하릴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읽을 수 있는 그저 그런 뉴스 스토리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사용자들의 일회성 관심을 끌기 위해 페이스북과 같은 경쟁 기업들을 따라 잡으려고 귀중하고 고유한 비전을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구글은 다시 한 번 구글 고유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필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5년 전, 구글 나우는 마치 우리 곁에 너무 일찍 찾아온 미래 같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글 피드는 아직도 과거를 헤매는 구시대적 유물처럼 느껴진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컨셉에 약간 다른 옷을 입혀놓았을 뿐이다. 구글이 모든 자원과 노력을 쏟아부어 이루어냈던 과거의 성과에서 오히려 한 발 더 후퇴한 것 같다.”

구글이 훌륭하고 참신한 최초의 비전을 끝까지 추구하지 못하고 중간에 경로를 변경해 실패한 사례는 이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안드로이드 7.1에서 어설프게 애플을 따라 한 앱 바로가기 기능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구글은 이러한 기능을 최대한 사용자 친화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애플을 따라잡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평가했었다. 즉, 이런 패턴은 일회성이 아니라 구글의 고질적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구글이 유연하고 제품의 변화에 개방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그 변화라는 것이 다른 기업의 방식을 따라하는 데 급급한 것일 뿐이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지닌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에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일 수 있는 뚝심도 필요하다. 설령 그 과정에서 기술을 다듬고 정제해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즉, 오늘날 구글의 문제는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라 뚝심과 끈기, 그리고 자사의 비전에 대한 확신의 부재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며, 구글 최악의 적은 그 어떤 기업도 아닌 구글 자신이 될 것이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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