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글로벌 칼럼 | 다시 오픈소스의 즐거움을 말하자

Matt Asay | InfoWorld
오픈소스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한 대화의 대부분은 벤처 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업이 수백만 달러를 받아 수억 달러의 수익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컬(Curl), Fio, 와이어샤크(Wireshark)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초기 개척자와의 이 대화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바로 ‘재미’다.



중요하지만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취재를 하면서,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많은 프로젝트가 개발자의 은행 잔고에 미치는 영향에 상관없이,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개발됐다는 것이다.
 

재미로 만든 드루팔

오픈소스로 큰 이익을 거둘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매우 인기 있는 웹 콘텐츠 관리 시스템인 드루팔(Drupal)과, 드루팔 관련 서비스 에퀴아(Acquia)의 설립자인 드리스 보아타르트를 보자. 2019년 기준 에퀴아의 매출은 2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치고는 꽤 큰 액수다. 드루팔을 사용해 돈을 버는 기업은 에퀴아뿐만이 아니다. 더구나, 드리스가 중점을 두는 곳은 드루팔 프로젝트임에도, 에퀴아는 드루팔 전체 코드 중 5% 미만을 기여한다. 드루팔에 중점적으로 기여하고 사업을 하는 기업이 수천 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은 드리스가 앤드워프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지난 2000년 친구와 드루팔을 출시했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당시, 드리스는 친구들과 함께 쓰는 광대역 회선 관련 정보를 공유하려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2001년 1월에 졸업하며 코드를 오픈소스화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드리스에게 계속 요청했던 개선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드리스 본인도 더 배우기 위해 오픈소스화를 택했다. 그는 “마이SQL이 출시되면서 갑자기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가 생겼고 동적 웹사이트 구축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드루팔을 개발한 계기는 웹 초창기에 웹사이트에 대한 열정과 마이SQL에서 PHP를 연구하고 학습 기회로 보고자 하는 욕구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드루팔 출시 이후 7년 동안 방과 후 그리고 퇴근 후 매일 밤과 주말마다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때도 재미를 위해서였고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라고 덧붙였다.
 

취미로 만든 컬

다니엘 스텐버그가 IRC 사용자에게 환율 정보를 서비스하려 했을 때, 그는 정확하게 의도했던 것은 ‘오픈소스’화가 아니었다. 당시는 1996년이었고 ‘오픈소스’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1998년 2월보다도 앞선다. 당시 그는 단지 작은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 기존 도구(httpget)에서 시작했다. 약간의 조정을 거쳐 다양한 프로토콜을 사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법을 출시했는데, 이것이 훗날 cURL이 된다.
 
스텐버그가 당시 이 일을 정규직 업무나 아르바이트로 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부수적인 일이었고, 재미 삼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부수적인' 프로젝트가 20년 넘게 지속해 수백 명의 공헌자를 유지하고 있고 현재 10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1백만 명이 아니라 10억 명이다. 일부 사용자는 이런저런 버그를 고쳐달라고 스텐버그에게 긴급하게 요청한다. 화난 상사 때문에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연도 있었다. 그는 이런 이들을 '내가 집에서 무보수로 만든 결과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포현했다. 불쾌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그래서 항상 즐겼고, 지금까지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필요해서 만든 Fio

리눅스 커널 개발자 옌스 악스보는 리눅스 커널의 블록 계층 작업을 지원할 툴이 필요했는데, 안타깝게도 기존 툴 중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유연한 IO 테스터(Fio)를 “성능상의 이유든 버그를 찾거나 재현하는 목적이든, 특정 워크로드를 테스트할 때 특정 테스트 케이스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 오늘날 Fio는 거의 모든 스토리지 워크로드를 모델링하도록 구성할 수 있고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됐다.
 
2005년 당시 Fio는 악스보의 스토리지 모델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첫 5년 동안 리눅스 커널 작업을 돕는(그리고 오라클, 퓨전아이오(Fusion-IO), 페이스북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된) 보조 프로젝트 Fio를 거의 혼자 수행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개발 작업 대부분을 담당하지만, 여전히 악스보의 삶과 일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프로젝트에 싫증 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 프로젝트의 효용성이 성공적이기에 즐거운 작업이다”이라고 말했다.
 
Fio는 악스보에게 여전히 ‘창조성을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다. 리눅스 커널 개발 같은 고단함 대신 ‘보조적인 일’로 사용자 영역에서 흥미로운 개발을 할 수 있다. 그는 “오픈소스는 재미있는 노동이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다른 생각

유명 오픈소스 개발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프로젝트가 “재미있고, 창의적인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사용자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창의성을 표현하고 휴식을 취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대체로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더구나 여기서 살펴본 개발자 모두 수십 년 동안 일자리를 찾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업무가 항상 각자 관리하는 오픈소스에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불현듯 궁금해졌다. 오픈소스가 수익화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오늘 살펴본 개발자가 그랬던 것처럼, 오픈소스의 재미있는 면을 재발견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editor@itworld.co.kr


2020.04.29

글로벌 칼럼 | 다시 오픈소스의 즐거움을 말하자

Matt Asay | InfoWorld
오픈소스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한 대화의 대부분은 벤처 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업이 수백만 달러를 받아 수억 달러의 수익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컬(Curl), Fio, 와이어샤크(Wireshark)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초기 개척자와의 이 대화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바로 ‘재미’다.



중요하지만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취재를 하면서,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많은 프로젝트가 개발자의 은행 잔고에 미치는 영향에 상관없이,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개발됐다는 것이다.
 

재미로 만든 드루팔

오픈소스로 큰 이익을 거둘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매우 인기 있는 웹 콘텐츠 관리 시스템인 드루팔(Drupal)과, 드루팔 관련 서비스 에퀴아(Acquia)의 설립자인 드리스 보아타르트를 보자. 2019년 기준 에퀴아의 매출은 2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치고는 꽤 큰 액수다. 드루팔을 사용해 돈을 버는 기업은 에퀴아뿐만이 아니다. 더구나, 드리스가 중점을 두는 곳은 드루팔 프로젝트임에도, 에퀴아는 드루팔 전체 코드 중 5% 미만을 기여한다. 드루팔에 중점적으로 기여하고 사업을 하는 기업이 수천 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은 드리스가 앤드워프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지난 2000년 친구와 드루팔을 출시했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당시, 드리스는 친구들과 함께 쓰는 광대역 회선 관련 정보를 공유하려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2001년 1월에 졸업하며 코드를 오픈소스화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드리스에게 계속 요청했던 개선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드리스 본인도 더 배우기 위해 오픈소스화를 택했다. 그는 “마이SQL이 출시되면서 갑자기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가 생겼고 동적 웹사이트 구축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드루팔을 개발한 계기는 웹 초창기에 웹사이트에 대한 열정과 마이SQL에서 PHP를 연구하고 학습 기회로 보고자 하는 욕구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드루팔 출시 이후 7년 동안 방과 후 그리고 퇴근 후 매일 밤과 주말마다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때도 재미를 위해서였고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라고 덧붙였다.
 

취미로 만든 컬

다니엘 스텐버그가 IRC 사용자에게 환율 정보를 서비스하려 했을 때, 그는 정확하게 의도했던 것은 ‘오픈소스’화가 아니었다. 당시는 1996년이었고 ‘오픈소스’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1998년 2월보다도 앞선다. 당시 그는 단지 작은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 기존 도구(httpget)에서 시작했다. 약간의 조정을 거쳐 다양한 프로토콜을 사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법을 출시했는데, 이것이 훗날 cURL이 된다.
 
스텐버그가 당시 이 일을 정규직 업무나 아르바이트로 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부수적인 일이었고, 재미 삼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부수적인' 프로젝트가 20년 넘게 지속해 수백 명의 공헌자를 유지하고 있고 현재 10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1백만 명이 아니라 10억 명이다. 일부 사용자는 이런저런 버그를 고쳐달라고 스텐버그에게 긴급하게 요청한다. 화난 상사 때문에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연도 있었다. 그는 이런 이들을 '내가 집에서 무보수로 만든 결과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포현했다. 불쾌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그래서 항상 즐겼고, 지금까지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필요해서 만든 Fio

리눅스 커널 개발자 옌스 악스보는 리눅스 커널의 블록 계층 작업을 지원할 툴이 필요했는데, 안타깝게도 기존 툴 중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유연한 IO 테스터(Fio)를 “성능상의 이유든 버그를 찾거나 재현하는 목적이든, 특정 워크로드를 테스트할 때 특정 테스트 케이스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 오늘날 Fio는 거의 모든 스토리지 워크로드를 모델링하도록 구성할 수 있고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됐다.
 
2005년 당시 Fio는 악스보의 스토리지 모델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첫 5년 동안 리눅스 커널 작업을 돕는(그리고 오라클, 퓨전아이오(Fusion-IO), 페이스북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된) 보조 프로젝트 Fio를 거의 혼자 수행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개발 작업 대부분을 담당하지만, 여전히 악스보의 삶과 일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프로젝트에 싫증 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 프로젝트의 효용성이 성공적이기에 즐거운 작업이다”이라고 말했다.
 
Fio는 악스보에게 여전히 ‘창조성을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다. 리눅스 커널 개발 같은 고단함 대신 ‘보조적인 일’로 사용자 영역에서 흥미로운 개발을 할 수 있다. 그는 “오픈소스는 재미있는 노동이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다른 생각

유명 오픈소스 개발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프로젝트가 “재미있고, 창의적인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사용자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창의성을 표현하고 휴식을 취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대체로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더구나 여기서 살펴본 개발자 모두 수십 년 동안 일자리를 찾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업무가 항상 각자 관리하는 오픈소스에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불현듯 궁금해졌다. 오픈소스가 수익화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오늘 살펴본 개발자가 그랬던 것처럼, 오픈소스의 재미있는 면을 재발견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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