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시될 당시 크레용은 주로 2018년형 9.7인치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학교에 판매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12일, 애플과 로지텍은 크레용 판매 범위를 넓히기로 결정했다. 아이패드 사용자에 따라서는 꼭 학생이 아니어도 크레용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크레용은 애플 펜슬보다 좀 더 실용적이고, 내구성도 훨씬 좋다. 무엇보다 가격도 69.99 달러로, 애플의 펜슬보다 30달러가량 더 싸다.
애플의 9.7인치 아이패드만 있다면 설치도 쉽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크레용은 꼭 애플의 9.7인치 아이패드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니 아이패드 프로를 굳이 살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기로 한 게 로지텍의 결정인지 애플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 아이패드 가까이에 크레용을 가져다 대고, 크레용 ‘지우개’ 근처에 있는 파워 버튼을 2초정도 꾹 누르면 기기 간 연결이 자동으로 이루어 진다.
이렇게 사용이 쉽다 보니 로지텍에서도 별도의 설명서 없이 QR 코드만 하나 포함해놨다. 궁금한 점은 QR 코드를 스캔하면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척 직관적이어서 설명서를 볼 필요조차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런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측면에서는 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존에 아이패드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블루투스 리스트에서 애플 펜슬을 제거해야 크레용을 쓸 수 있다.
길고 납작한 디자인
이름은 ‘크레용’이지만, 실제 모습은 크레용보다는 목수가 사용하는 연필 같이 생겼다. 애플 펜슬의 원통형 디자인과 달리 크레용은 6.5인치 메탈 바디에 두께는 0.3인치로, 길고 납작한 디자인이다. 바디 양 끝은 다소 과감한 오렌지색으로 마감하였으며 펜 촉은 플라스틱으로, 충전 포트가 있는 끝부분은 고무 캡으로 막고 있다.
애플 펜슬의 라이트인 충전 방식(펜슬 뒤쪽의 플러그를 아이패드 라이트닝 포트에 바로 꽂아서 충전하는 방식)을 싫어하던 이들은 크레용의 충전 방식이 훨씬 마음에 들 것이다. 크레용의 충전 포트는 모든 라이트닝 케이블을 사용해서 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포트를 막는 고무 캡이 크레용의 전원을 켤 때 사용되는 버튼에 붙어 있어 애플의 펜슬 뚜껑과 달리 잃어 버릴 염려도 없다.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캡을 뜯어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크레용의 디자인은 전적으로 실용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크레용은 애초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납작하게 만들어야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목수들이 쓰는 연필 역시 작업대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든다. 게다가 설령 바닥에 떨어진다고 해도, 크레용 양 끝의 눈에 띄는 오렌지색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내구성도 어마어마하다. 어찌나 튼튼한지 데스크톱에 대고 드럼스틱으로 써도 휘거나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장담하건대, 아이들이 필자 같은 성격이라면 절대로 얌전하게 크레용을 써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애플 펜슬의 경우 이렇게 편하게 막 써도 된다고 보장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끝부분에 있는 충전기 캡이 먼저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필기구
물론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세련되거나, 화려한 맛은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버 메탈 바디 양 끝을 오렌지색으로 마감한 크레용과, 매끈한 곡선을 자랑하는 애플 펜슬의 디자인은 절대 모를 수 없을 만큼 대조적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로지텍의 크레용은 도로공사 현장에 세워 두는, 꼬깔 모양의 도로 표지판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크레용은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까지도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크레용의 경우 감압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애플 펜슬처럼 사용자가 연필을 세게 누르는지, 약하게 누르는지에 따라 선 굵기가 달라지는, 섬세하고 유려한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크레용의 경우 거의 모든 선 굵기가 동일하며, 크레용을 낮게 기울여서 글씨를 쓸 때만 가늘어진다. 하지만 이 정도도 일반적인 글쓰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물론 이런 필기구로는 개개인의 필체의 멋스러움까지 살리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크레용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위해 만든 제품이고, 그 주요 목적은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고, PDF에 하이라이트를 하는 것이지 토드 맥팔레인(Todd McFarlane) 같은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림 그리기가 주 목적이라면 그냥 좀 더 열심히 일해서 애플 펜슬을 사는 게 훨씬 낫다.) 크레용은 최소한 자신의 원래 목적에는 무척 충실한 제품이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족함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응 속도도 무척 훌륭해서, 애플 펜슬에서와 같은 그런 지연도 없었다. 글씨를 쓰면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그 자리에 선이 그어 진다. 애플 펜슬과 달리 충전할 때 초록색 불이 깜빡이기 때문에 충전이 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100% 충전이 되고 나면 약 7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며, 2분 정도만 충전기를 꽂아 놓아도 30분은 쓸 수 있다. 애플 펜슬과 마찬가지로 팜 리젝션(글씨 쓸 때 손바닥을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우수하기 때문에 스크린에 손바닥을 대고 글씨를 써도 된다. 최소한 정확도 측면에서는 애플 펜슬이나, 실제 연필을 쓰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크레용, 2% 부족한 부분
정작 아쉬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요즘은 연필과 종이로 글씨를 쓰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필자는 아직도 연필과 종이의 감촉을 사랑하는 ‘노인네’ 중 하나다. 그런 이유로 그 어떤 스타일러스 보다 더 실제 연필과 종이의 감촉을 훌륭하게 재현해 낸 애플 펜슬을 좋아했다. 실제 연필과 같은 무게감, 실제 연필과 같은 얇은 바디. 게다가 6.92 인치라는 길이는 화가의 붓이나 캘리그라피 펜과 같은 밸런스를 느끼게 해준다. (물론 크레용도 길이는 이것과 거의 비슷하다.) 애플 펜슬의 원통형 바디는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을 극대화 시킨다.
반면, 크레용은 아까도 말했지만 목공용 연필로 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써 보면, 팔로미노(Palomino)같은 고급 필기구 제조사들이 왜 이런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길고 납작한 크레용의 디자인은 오랜 시간 글씨를 쓰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나무에 자를 위치를 표기하고, 치수를 측정하는 데 적합한 디자인이다. 혹은 학교에서 교과서에 중요한 부분을 표시할 때 쓰는 하이라이터 같은 디자인이기도 하다. 물론 크레용으로도 글씨를 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크레용을 쓰다 애플 펜슬로 넘어가면, 발에 안 맞는 구두를 신고 뒤뚱 뒤뚱 걷다가 맞춤형 구두로 갈아 신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용은 훌륭한 제품이다. 애플 펜슬과 같은 우아함은 없지만, 충분히 그 목적에 충실하다. 나는 크레용을 ‘작업용 스타일러스’라고 부르고 싶은데,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뿐 아니라 보다 활동적인 환경에서 아이패드를 가지고 일하는 어른들에게도 적합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크레용을 사용하면 부속 부품을 잃어버릴 일도 없고, 땅에 떨어져도 금방 찾을 수 있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크레용은 2018년형 아이패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라면(그리고 애플 펜슬은 이 경우를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애플의 스타일러스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애플 펜슬의 섬세한 감압 센서와 유려한 원통형 디자인, 적절한 무게감은 이상한 충전 방식과 잃어버리기 쉬운 마그네틱 캡을 용서하고도 남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다면 라이트닝 케이블 없이도 언제든지 충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가격 차이도 사실 ‘고작’ 30달러다. (물론 크레용을 학생 할인을 받아 산다면 50달러까지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돈을 아끼려는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로지텍 크레용 역시 70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이니 ‘저가형’ 스타일러스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가격이 아니라 내구성을 원하는 사용자라면, 망설임 없이 크레용을 구매하길 바란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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