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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 애플의 가격 정책, 프라이버시는 ‘권리’가 아닌 ‘사치품’인가?

Leif Johnson | Macworld 2018.11.12
애플은 자타공인 프라이버시를 ‘근본적 인권’으로 여기는 기업이다. 지난 봄 WWDC직전 CNN 과의 인터뷰에서 CEO인 팀 쿡 또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경쟁 업체들의 데이터 수집을 “통제 불가능한” 광기라고 비난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자주 감시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참으로 대담하고, 확신에 찬 워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당시에는 ‘역시 애플’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의 말은 너무나 당연했기에 정당하게 느껴졌고, 또 우리가 듣고 싶어했던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케임브릿지 애널리티카 스캔들과 우버, 야후 등 기업의 데이터 유출 사건 같은 것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고 있다. 맞춤형 광고로 ‘브라우징 경험을 개선하겠다’며 사용자들의 지메일 내용을 훔쳐 보는 구글은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기업들이 넘쳐 나는 판국이니 애플 CEO의 저러한 발언은 우리에게 정의의 사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솔직히, 해마다 따라가기가 벅찬 속도로 아이폰 가격을 올리고 있는 애플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에 ‘프라이버시 보장’을 판매하고 있는 애플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순수한 뜻으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애플이 올 해 출시한 기기들의 가격은 한 제품 당 전년 대비 150달러 가량 증가하였다. 이러한 가격 인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단지 돈이 아까워서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애플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에 접근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애플 제품의 디자인은 물론 뛰어나다. 아이폰의 사양이 시장 최고 수준임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디자인이나 사양만 따지자면 ‘반드시 애플 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구글의 픽셀 3가 더 낫고, 그 밖에도 배터리 수명을 크게 잡아먹지 않으면서도 올웨이즈-온 디스플레이를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폰들도 많다. 비디오 게임 플레이만을 위해서라면 고가의 맥북보다 차라리 싸구려 윈도우 노트북이 더 나을 때도 많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서는 그 어떤 기업도 애플을 대신할 수 없다. 그 동안 애플은 말 뿐 아니라 행동을 통해 프라이버시 보호를 정말로 중시한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FBI의 수사 요청에도 아이폰 기록을 제공하기를 거부한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또한 터치ID의 지문 정보는 기기 내에만 저장되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애플의 프라이버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iOS및 맥OS에 안티-지문 저장 소프트웨어와 지능적 추적 예방 기능을 포함시켜 데이터 수집가들이 사용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거나, 사용자 데이터를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모든 맥에는 사용자의 파일을 암호화 해주는 파일 볼트 2(File Vault 2)가 포함된다. 물론 애플 기기도 생성되는 데이터 중 일부를 보내기는 하지만,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는 안드로이드 기기가 구글에 보내는 데이터의 1/10도 채 안 되는 정도이며 그나마 송신되는 데이터 조차도 특정 기기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없도록 하는 보호 장치가 되어 있다.

프라이버시: 기본 인권인가, 가진 자를 위한 사치품인가?
이처럼 프라이버시 보호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애플임에도, 저가형 모델을 내놓으며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의 선구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애플의 분기 보고서를 보면 최근의 기기 가격 인상으로 인해 아이폰 판매량이 답보세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수익은 급등했다는 내용이 있다. 한때는 “인류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창의적 마인드를 위한 툴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세계에 기여하겠다”던 기업이 보이는 행보 치고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애플의 가격 정책은 한 마디로 ‘프라이버시란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사치품’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어느 모로 봐도 ‘인류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임은 물론이다.

뭐, 솔직히 프라이버시라는게 원래 그렇다. 단순히 개인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비싼 스마트폰만 그런 건 아니다. 외출할 때 북적이는 버스나 전철 대신 자가용을 타는 일, 옆집 대화 소리가 다 들리는 원룸 대신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 적용된 단독 주택에 사는 일 등. 프라이버시 보호에는 물론 개개인의 선택도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부유한가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 세대에게는 자가용도 집도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애플 역시 자사의 프라이버시 안전 기기를 호락호락한(?) 가격대에 내놓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고 말이다.

특히 애플 생태계에 더 깊이 발을 담근 사람일수록 문제는 심화된다. 예컨대 처음에는 아이폰만 샀던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보안상의 ‘빈틈’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다른 애플 기기들, 예컨대 맥북을 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녀를 위해 아이패드를 사 주게 되고, 아이패드를 샀으니 애플 펜슬은 덤으로 따라 올 것이다. 구글이나 아마존의 저가형 스피커보다 데이터 전송이 적은 홈팟까지 구매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이미 애플에 갖다 받친 돈만 수천 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해마다 새로운 기기가, 해마다 더 비싼 가격으로 출시된다. 아무리 애플 고객들이 ‘비싸도 산다’고는 하지만, 한계는 있다. 물론 아직은 그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희망은 있나?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애플의 일장 연설이 진심이었다면 저가형 제품들도 내놓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내가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 한 이유는, 최소한 애플도 고객들의 지갑 사정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소한 1만 달러를 호가하는 애플 워치 에디션 이야기는 쏙 들어 갔으니 말이다.

대신 애플은 학생들을 위해 애플 펜슬이 지원되는 329달러 아이패드를 내놓았다(애플 펜슬은 원래 아이패드 프로에서만 지원됐었다). 또 최근에는 플래그십 모델인 아이폰 XS와 거의 유사한 스펙을 지녔으면서도 250달러나 더 저렴한 아이폰 XR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비싼 폰인 것은 변함 없지만, 그래도 애플이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제스처를 보여 주었다. 물론 생각만 한다는 것이지 아이폰 SE같은 기기를 업데이트 하는 것과 같은 액션은 취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신형 맥북 에어를 보면 애플의 저가형 제품은 더욱 보기가 어려워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맥북 에어는 충분히 좋은 랩탑이지만, 1,200 달러가 넘는 제품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교육용 ‘저가형’ 맥북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1,200달러 맥북 에어를 ‘투자’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겠지만, 이미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월세를 내느라 하루 하루가 빠듯한 학생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차라리 899달러에 델 XPS 13을 구매하거나, 749달러인 Asus 젠북(Zenbook)을 구매하겠다고 생각할 법하다. 어쩌면 400달러인 Acer R3 크롬북도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설령 이들 기기가 애플 기기만큼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보호해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선을 행할 힘
우리는 애플에게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을 기대한다. 팀 쿡은 애플이 “선을 행할 힘을 가진 기업” 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애플은 환경 문제에도 적극적인 대책을 취할 만큼 진보적인 기업이고, 환자들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개발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고객 데이터 유출 뉴스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수백만 명의 개인 정보가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며, 패스워드 몇 글자로 우리의 사생활이 만 천하에 공개되는 세상에서 애플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자사의 안전한 기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라인을 다각화 하는 것이다.

팀 쿡은 알고 있을까? 애플 기기의 가격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다다르기 일보 직전에 있다는 것을.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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