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용어 중에서는 잘못 사용되는 용어가 많다. 기술에 관한 대화를 하기 위해 언어학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아래에 소개할 가장 자주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와 사용 방법 정도는 숙지하는 편이 좋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삼성 기어 VR, 내년에 출시될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또는 구글 카드보드(Cardboard) 기반 기기와 같은 특수 안경이나 고글을 쓰면 실제로는 없는 무언가가 보인다. 100% 컴퓨터로 생성된 것만 보이는 경우 그것을 가상 현실(VR)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글 제품은 비디오도 재생할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위 플랫폼으로 제공된 대부분의 콘텐츠는 360도로 촬영된 동영상이다. 단순히 움직이는 평면 이미지도 있고 깊이를 표현하는 아주 정교한 3D 동영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컴퓨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카메라 세트를 사용해 촬영된 비디오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가상 현실”이 아니라 “실감나는 동영상”일 뿐이다.
360도동영상을 “가상 현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가상 현실이 아니고 “실감나는 동영상”이라고 말해야 한다.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이것도 체험형 안경 또는 고글로 분류되지만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되 여기에 인공적인, 컴퓨터로 생성된 콘텐츠를 덧붙여 보여주며 그 종류도 구글 글래스부터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HoloLens), 매릭 리프(Magic Leap)까지 다양하다.
구글 글래스는 직사각형 화면을 표시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화면에는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종의 알림이 표시된다. 홀로렌즈와 매직 리프는 컴퓨터로 생성된 콘텐츠가 실제로 현장에 존재해서 현실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가상의 사물이 실제 탁자 위에 놓여 있거나 탁자 밑을 지나간다.
이러한 경험을 일반적으로 “증강 현실”이라고 하는데 사실 대부분 증강 현실에 해당되지 않는다.
“증강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이 증강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증강 현실 앱은 표지판과 메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주는 구글의 워드 렌즈(Word Lens) 앱이다. 이탈리아에서 필자가 아이폰으로 워드 렌즈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글 글래스 버전도 있다.
“증강 현실”이라는 개념의 중심은 현실이다. 즉, 실제 사물에 대한 경험이 컴퓨터가 제공하는 정보 또는 이미지로 보강되는 것이다.
그러나 글래스, 홀로렌즈, 매직 리프와 기타 플랫폼용으로 나온 상당수 애플리케이션은 현실과는 관계 없는 사용자 경험에 정보를 집어넣을 뿐이다. 예를 들어 구글 글래스에 표시되는 이메일 수신 알림, 게임 콘텐트가 중심이 되고 현실은 단순히 게임 화면 백그라운드로 사용될 뿐인 매직 리프용 게임 등이 그렇다.
이러한 경험은 “증강 현실”이 아니라 “혼합 현실(mixed reality)”이다.
실제와 가상을 결합하는 모든 기술을 “증강 현실”이라고 칭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적합한 표현은 “혼합 현실”이다.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
“디지털 유목민”은 오래된 말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일이 가능한 덕분에 “장소에 속박되지 않고” 해외에 거주하거나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된 사람을 일컫는다. 과거 사무실 밖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일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생긴 용어다.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으로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한다. 따라서 사무실 밖에서 인터넷을 사용해 일을 하는 것은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다.
“디지털 유목민”은 “컬러 TV”, “멀티미디어 PC” 또는 “월드와이드 웹”과 같이 시대에 뒤쳐진 용어다. 모든 사람들의 인식에서 당연히 TV는 컬러고, PC에는 스피커가 있고, 웹은 전 세계로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사무실 외부에 있는 모든 사람은(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스타벅스에 있든 인도의 인터넷 카페에 있든) 당연히 인터넷에 연결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
“디지털 유목민”은 유효성을 잃은 용어다. 그때그때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은 그저 “유목민”일 뿐이다.
유니콘(Unicorn)
실리콘 밸리에서 유니콘은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IPO 전의 신생 기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생 기업이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만큼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2년 전 벤처 투자자이자 카우보이 벤처스(Cowboy Ventures)의 공동 창업자인 에일린 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그 당시 유니콘으로 분류되는 신생 기업은 40개 미만이었다.
지금 유니콘 기업은 139개 이상이다. 게다가 평가 가치가 100억 달러 이상인 신생 기업도 여럿이고 그 중 한 업체인 우버(Uber)는 무려 500억 달러를 호가해서 유일한 “우버콘(Ubercorn)”으로 분류된다.
평가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기업이 더 이상 드물지 않은 지금, “유니콘”이라는 용어도 그만 사용해야 한다.
일반인(Normals)
기업가, 기술 담당 임원, 벤처 투자자, 저널리스트를 포함해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술직이 아니거나 기술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반인”이라고 표현한다. 이 용어가 내포한 뜻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만 기술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이라는 용어는 거만하다. 기술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한 완곡한 표현이 필요해서 만들어진, 이중성을 가진 용어다.
거만함을 걷어내고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좋다. 비전문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전문가”로 충분하다. 일반 대중을 가리키는 경우라면 “평균”을 사용하면 된다. 즉, “평균적인 소비자” 또는 “평균적인 사용자”가 적합하다. 엔지니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아닌 사람을 의미할 때는 “비엔지니어”, “비개발자”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일반인”은 모호하고 거만한, 지양해야 할 완곡 어법이다.
드론(Drone)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대형 군용 항공기부터 스마트폰 앱으로 조종이 가능한 소비자용 소형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원격 조종 비행 물체라면 무조건 “드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러한 비행기 중에는 인공 지능을 사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기종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기종도 있다.
“드론”은 엄밀히 말해 인공 지능을 사용해서 스스로 항로를 정하고 비행하는 무인 비행기에만 해당되는 용어다. 즉, 비행이나 원격 조종이 아니라 자동화를 가리키는 용어다.
가장 크고 가장 값비싼 군용 “드론” 중에서도 사실 드론이 아니라 원격 조종 무인 항공기(UAV)에 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비자용 기기 중에서 “드론”은 없다. (물론 1~2년 후면 A.I.로 조종되는 일반 소비자용 드론이 판매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소비자용 드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원격으로 조종하는 기기를 일컫는 더 정확한 용어는 단순히 프로펠러의 수를 나타내는 용어인 “쿼드콥터(quadcopter)”다.
소비자용 쿼드콥터를 “드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므로 용어의 사용은 중요한 문제다. 의미를 확실하게 전달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주제로 한 대화에 정확성을 기하는 것이 좋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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