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물음이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허’(her)의 출발점이다. 영화는 지난해 12월 18일 미국에서 개봉한 이후 골든 글로브 3개 부분 후보에 올랐다. 영화 속에서 이혼한 작가인 서도어 텀블리(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했다)는 지각을 갖고 있다고 홍보하는 운영체제 ‘OS1’을 설치한다. OS1은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해 이에 맞는 아바타를 만드는데, 서도어에 최적화된 새 아바타의 이름은 ‘사만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바타인 사만다는 자신을 소개한 후 서도어의 요청에 따라 이메일 관리를 도와준다. 저장된 수천 개의 메시지를 정리해 재밌고 의미 있는 메일 86개만 추려내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하는 식이다(영화 속 OS는 아시모브의 '로봇공학 3원칙'을 간단하게 무시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이지 로봇 반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사용자 정보에 접근해 처리하고 심지어 다양한 기기를 넘나들며 작업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녀는 인간의 하인도, 인간의 적도 아닌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단지 서도어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을 뿐이다.
영화 ‘허’에서 조아킨 피닉스는 이혼한 작가로 등장한다. 그는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를 한 운영체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
서도어는 외톨이에 내성적인 그냥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다. 이혼 때문에 현실이 너무 버거워지자 그는 형체 없이 목소리만으로 존재하는 운영체제 인공지능에 단순한 디지털 작업 이상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에게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에 따라 그의 소유물인 그녀도 마치 진심으로 걱정하고 관심이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 심지어 서도어의 목소리 어감과 말 간의 여백에서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충고를 하거나 혹은 격려를 보낸다.
그녀는 위협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나는 매 순간 진화하고 있어요. 사람들처럼 다양한 감정을 갖고 싶은데,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라고 묻는다.
사만다가 품은 의문이 무엇이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여기에 공감하고 이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게 된다. 서도어의 상황이 최악이었을 때 사만다는 그를 기다리고 위로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녀는 서도어를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온전한 그만의 존재이고, 동시에 서도어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가 현재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만다는 일반적인 ‘여성’ 로봇과 달리 의지를 가지고 있고 실수도 한다. 영화 속에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는 결국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하지만 정말 인간은 인간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진심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 속 두 존재의 사랑은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영화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적극적으로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사만다의 능력은 애플의 개인 비서 서비스인 ‘시리’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기술이다. 현실 세계에서 ‘사만다’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MIT CSAIL(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의 수석 연구원인 보리스 카즈에 물었다. 그의 팀은 시리와 IBM 왓슨 개발에 모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먼저 사용자의 데이터 입력 없이 스스로 진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대부분 컴퓨터는 단순히 입력된 정보를 흉내 낼 뿐이다. 우리는 구글 맵에 놈(Nome)에서 인디애나폴리스까지 운전하라고 명령하진 않지만, 구글 맵은 이들 도시와 관련된 지리 정보를 갖고 있고 운전해야 할 방향을 추론해 알려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절차는 인간 세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정보를 가르치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카즈는 “학습의 원천은 매일매일의 다양한 경험”이라며 “인간의 오감과 같은 것을 통해 경험하고 이를 흉내 낼 수 있는 컴퓨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계는 인간이 사는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며 “여전히 인간이 기계를 가르쳐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허’에서 서도어 텀블리는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영화 속 서도어도 기계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사만다를 스마트폰으로 옮겨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보고, 마이크로폰을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보고 들을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입력한 데이터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일이다. 물론 현재의 컴퓨팅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일이기도 하다. 카즈는 "모바일 기기의 프로세싱 파워와 메모리는 점점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작업을 더 지능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그러나 처리하는 작업의 내용에 대해 컴퓨터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면 영화 속 사만다처럼 컴퓨터가 재미있는 이메일을 구별해 내는 것 정도는 지금의 기술로도 가능하다. 카즈는 “오늘날의 컴퓨터는 통계적인 분석을 통해 이런 일을 이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며 "농담과 시, 소설 같은 것들은 충분히 입력해 놓으면 컴퓨터가 그 경향성을 파악해 처리하고 심지어 흉내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컴퓨터가 하는 농담을 들으며 ‘빵 터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한편 영화 속에서는 키보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음성 명령을 이용해 이메일을 읽고 정리해 정리한다. 카즈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키보드를 대체할 정도의 주요 입력 방식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이폰 키보드와 시리를 놓고 봤을 때 시리를 매일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나? 말투와 주변 소음, 문법에 어긋난 문장 구조 등은 모두 인간과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 시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슈퍼컴퓨터 왓슨 역시 퀴즈쇼에서 인간과 경쟁할 수 있고 자연어를 인식하지만, 정보 입력은 음성이 아닌 키보드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속 사만다는 (역시 영화 속 광고처럼) 똑똑할 뿐만 아니라 사리를 분별하고 자아를 인식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 감각의 근원이 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자아를 인식하는 컴퓨터가 하나 등장하면 다른 컴퓨터도 영향을 받게 될까?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 수준이 컴퓨터가 지능을 갖게 하는 단계에도 한참 다다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카즈는 “이 문제는 컴퓨터 과학자나 인지 과학자, 또는 철학자 등 개별적으로 연구해서는 절대로 만족할 만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융합 학문적 접근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과 컴퓨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판단해 대응할 정도여서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는 앞으로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영화 ‘허’와 같은 단계까지 진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 영화가 놀랄 만큼 그럴듯하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남게 될 것이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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