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닉스 40년 : 혁명적 OS의 과거, 현재, 미래 2부

Gary Anthes | Computerworld 2009.06.09

유닉스 40년 : 혁명적 OS의 과거, 현재, 미래 1부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 해커의 천국

 

유닉스의 후예들

유닉스가 비독점적 시스템으로 성장한 것은, AT&T가 1956년 연방법원의 명령으로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심지어 “적당한” 요금을 받고 라이선스를 내주는 것까지도 문제가 없었으나, 본격적인 컴퓨터 사업은 시작부터 빗장이 채워져 있었다.

 

어떤 경영진의 격려도 없는 상태에서 개발된 유닉스는 초기 AT&T 입장에서는 호기심과 법적 두통거리를 오가는 어떤 것이었다.

 

그 후 1970년대 말에 AT&T는 유닉스에 상업적으로 중요한 무언가가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변호사들은 유닉스를 기업 기밀로서 보호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며 1956년 내려진 연방법원의 명령을 더 유리하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1979년 버전 7의 발표를 시작으로, 유닉스는 그간 연구 목적으로 유닉스 소스코드를 교육과정에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대학들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프리예 대학(Vrije Universiteit)에서 유닉스 V6을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학과의 앤드류 타넨바움 교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987년 타넨바움 교수는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유닉스 클론을 작성했고, 인텔 80286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작동하는 미닉스(Minix)라는 오픈소스 운영체제를 만들어냈다.

 

솔러스는 “미닉스는 유닉스의 모든 아이디어들을 통합시켰고, 그것을 멋지게 해냈다”며, “운영체제의 내부구조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 즉 진정한 메이저 프로그래머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닉스는 1991년 리누스 토발즈에 의해 만들어지는 리눅스(엄밀히 유닉스 클론은 아니라 해도 분명 유닉스와 닮은꼴인)의 출발점이 됐다.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버클리 대학의 대학원생이자 프로그래머였던 빌 조이는 벨랩으로부터 유닉스 복사본을 입수했고, 이를 자신의 파스칼 컴파일러와 텍스트 에디터 작업을 위한 훌륭한 플랫폼으로 보았다.

 

빌 조이가 다른 버클리 사람들과 했던 수정, 확장 작업들은 버클리 소프트웨어 디스트리뷰션 (BSD) 유닉스라고 불리는 유닉스의 두 번째 메이저 브랜치를 탄생시켰다. 1978년 3월에 조이는 이 BSD 카피를 50달러 가격에 출시했다.

 

이렇게 해서 1980년까지 유닉스는 버클리와 AT&T에서 유래한 두 가지 대표적인 제품군을 갖추게 됐고, 알려진 바와 같은 유닉스 전쟁을 위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좋은 소식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어디서든 유닉스 소스코드를 사용하고 자기들의 필요나 변덕에 맞춰 재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들이 오로지 그것만 했다는 것이다. 유닉스는 급격히 증식했고, 변종은 다양화되었다.

 

1982년에 조이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공동 설립하고 SunOS라는 BSD 버전이 실행되는 워크스테이션인 Sun-1을 공급했다(솔라리스는 10년 이후쯤 등장한다). 이듬해 AT&T는 IBM AIX와 휴렛팩커드 HP-UX의 기초가 될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운영체제인 유닉스 시스템 V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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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닉스 가계도

 

유닉스 전쟁

1980년대 중반에 연방정부를 포함한 기업 사용자들은 유닉스가 이론상으로는 단일 운영체제, 포터블 운영체제인데 실제로는 그것만 빼고 전부라며 불평했다. 업체들은 그러한 불평에 편승해 맞춤 유닉스 기능과 API로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썼다.

 

1987년에, 한때 벨랩에 속해 있던 유닉스 시스템 연구소(Unix System Laboratories)는 썬과 손잡고 두 개의 유닉스 메이저 버전을 통합하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그들의 합작품인 유닉스 시스템 V R4가 2년 뒤에 출시됐고, 이는 시스템 V R3, BSD, SunOS, 마이크로소프트의 Xenix 등의 특징들을 통합한 것이었다.

 

다른 유닉스 업체들은 AT&T와 썬의 연합을 두려워했다. 여러 무리들이 X/Open, OSF(Open Software Foundation), UICOS(Unix International and Corporation for Open Systems)와 같은 명칭으로 “표준(standards)"체를 형성했다. 이들의 주장과 반박, 성과는 책 한 권은 족히 메우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서로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면서 저마다 자기들이 통합된 유닉스로 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주장했다.

 

미니컴퓨터의 창시자 고든 벨은 1988년에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를 위해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OSF에 대해 “OSF는 유닉스에서 제외된 무리들에게는 높은 마진의 코드 박물관을 유지하면서 진화하는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평가했다. OSF는 IBM, HP, DEC, 기타 AT&T와 썬의 협력관계에 대항해 연합한 단체들로 그 당시에 막 구성된 참이었다.

 

어쨌든 유닉스 전쟁은 격차를 해소한다거나 운영체제의 진정한 표준을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993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엔터프라이즈급 32비트 멀티프로세싱 운영체제인 윈도우NT의 형식을 빌어 유닉스 커뮤니티에 경종을 울렸다. 독점 운영체제인 윈도우 NT는 유닉스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썬 서버 부류들이 가진 데이터센터와 그 밖의 장소들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스크톱 주도권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용자들은 박수를 보냈고, 유닉스 업체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유닉스의 모든 주요 경쟁자들은 공통 개방형 소프트웨어 환경(Common Open Software Environment, COSE)이라는 것을 주창하며 단결했고, 대체적으로 이듬해에는 AT&T와 썬이 후원하는 국제 유닉스 그룹(Unix International Group)을 OSF와 합병시킴으로써 싸움을 그쳤다. 이 연합은 유닉스 체제의 인증기관이자, 지금은 “유닉스”의 공식적인 정의가 된 단일 유닉스 규격(Single Unix Specification)을 소유하고 있는 오픈그룹(The Open Group)으로 진화하였다.

 

실제로 업체들의 경쟁적인 습관을 볼 때, 이런 발전들로 가능한 한 많은 것에 대해 “표준화된” 유닉스를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넨바움 교수의 미닉스에서 태동한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라는 조류를 멈추게 하기에는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유닉스의 미래

가트너 그룹에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유닉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운영체제들, 즉 비용 면에서 이점을 가지고 있는 리눅스와 x86 프로세서 기반의 윈도우와의 완전한 이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결국 IT업체들이 유닉스로부터의 이반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09년 2월에 발행된 이 설문조사는 “호스트 서버 플랫폼으로서의 리눅스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윈도우도 리눅스와 비슷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유닉스만이 길고 점진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가트너의 분석가 조지 베이즈는 “유닉스가 그 길고 활기찬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 더욱 큰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리눅스는 전략상의 유닉스의 선택”이라며, 비록 리눅스가 유닉스가 겪어 온 오랜 개발과 조정, 그리고 위기극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점차 유닉스에 근접해 가고 있으며, 곧 성능, 안정성, 그리고 확장성에서 유닉스와 동일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컴퓨터월드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IT 부서의 유닉스로부터의 이반이 그렇게 빠르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대상이었던 211명의 IT 관리자 중 130명이 유닉스 사용자였으며, 이 유닉스 사용자의 90%는 유닉스에 대한 회사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고 답했다. 절반이 약간 넘는 수가 “유닉스는 필수적인 플랫폼이며, 다른 플랫폼으로 변경할 계획은 없다”라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12%만이 “유닉스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답했다. 다른 플랫폼으로의 이전을 원하는 이유로는, 주로 서버 통합을 통한, 비용절감을 꼽았다.

 

베이즈는 하드웨어에서 비용 상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x86 프로세서로의 이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즈는 “수평적이고 확장이 용이한 구조, 클러스터링, 클라우드 컴퓨팅, x86의 가상화 기술 등, 최근의 이 모든 트렌드를 조합하고자 한다면, 운영체제의 선택은 리눅스와 윈도우,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예를 들어, 최근 시스코에서 발표한 시스코 유니파이드 컴퓨팅 아키텍처(Cisco Unified Computing architecture)에서는 유니파이드 패브릭을 통한 네트워크, 스토리지, 컴퓨팅, 그리고 메모리 액세스를 지원하므로, 유닉스는 필요가 없다. 리눅스나 윈도우는 x86 기반에서 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텔은 리눅스를 대표해 유닉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닉스 상표권의 소유자이자 유닉스 시스템의 인증자인 오픈그룹은 리눅스에 대해 조금은 인정한다는 의미로, 유닉스를 “고급스런 특질과 확장성, 그리고 성능을 위한 필수 프로그램”라고 한다면, 리눅스는 상대적으로 작고, 덜 필수적인 프로그램을 위한 표준이라고 평가했다.

 

AT&T의 데이비드 콘은 여전히 유닉스를 고집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그는 파이프 기능이 추가된 1973년 이래, 유닉스의 힘은 여러 부분으로 분산되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프 라인 철학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하나의 크고 획일적인 프로그램 대신 작고 재사용이 가능한 부분을 만들고자 할 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닉스의 유산

유닉스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와는 별개로, 40여 년 전 벨랩에서 탄생한 이 운영체제는 수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며 큰 유산을 만들어왔다. 유닉스 태생의 인기 소프트웨어를 열거하면 꽤 긴 목록이 될 것이며, 여기에는 IBM, HP, 썬을 위해 개발한 운영체제들과, 애플의 맥 OS X와 리눅스도 포함된다. 또한 유닉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운영체제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NT,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양한 도스 버전들이 이에 속한다.

 

유닉스는 적은 비용으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여, 많은 신생업체들의 성공을 도왔다. 유닉스는 과거에는 인터넷 파이어월 구축의 핵심으로, 현재는 전자통신시스템의 중추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파이프라이닝과 같은 아키텍처에 대한 수많은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낳았고, 유닉스에서 파생된 Mach는 과학적이고, 분산된, 다중처리 컴퓨팅의 개발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1983년 ACM은 톰슨과 릿치의 유닉스 개발에 대해 튜링상을 수여하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유닉스의 유산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유닉스 시스템의 천재성은 그 프레임워크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이 프로그래머들이 다른 이들 위에 설 수 있게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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