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30

빌 게이츠에 대한 10가지 기억①

Dan Tynan | PCWorld
친근한 괴짜와 무서운 흡혈귀를 섞어놓은 듯한 인물인 빌 게이츠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했다. 샌님이면서 냉혹한, 훌륭한 업적과 오명을 동시에 짊어진 그는 디지털의 모든 분야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그런 빌 게이츠가 6월 27일부로 자선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이 기사에서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빌 게이츠의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사건을 추려보고, 각 기로에서 그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떤 직업이 어울렸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1. 윈도우95의 시동(1995년 8월 24일)

윈도우 95의 등장과 같은 제품 출시는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작년 아이폰의 등장을 둘러싼 그 들썩임도 윈도우 95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롤링 스톤즈의 “스타트 미 업”을 사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급한 사건은 윈도우95 출시에 따라 이루어진, 약 3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초대형 마케팅 공세의 시작에 불과했다.

엄청난 마케팅 계획에 따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체를 마이크로소프트를 상징하는 색으로 덧칠했고, 하늘에서 보이도록 영국의 축구 경기장들에 윈도우 95 로고를 그렸다. 워싱턴 레드몬드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윈도우 95 발표 당일 음식, 곡예사, 광대, 기구, 놀이기구, 서커스 등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는 빌 게이츠가 있었다. 푸른색 회사 셔츠 차림으로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한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어눌한 말투로 대본의 농담을 읽어댔다.

이날 빌 게이츠의 대사 중 최고는 “윈도우95는 토크쇼 진행자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요.”였다.

다행히 빌 게이츠는 아직 개그 분야로 진출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다음 직업 : 코미디언은 제발 참아주세요.

2. 각성, 중퇴, 코딩(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의 표지에 실린 MITS 알테어 8800 사진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하버드 대학 동창 폴 앨런에게서 이 잡지를 빌려 본 빌 게이츠는 MITS 사장 에드 로버츠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폴 앨런이 알테어용 베이직(BASIC)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물론 당시 두 사람은 단 한 줄의 코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로버츠가 관심을 나타내자 두 사람은 미친 듯이 8주 만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해 후반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앨버커키로 떠나 시간당 10달러의 보수를 받으며 로버츠 밑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마침내 그는 BASIC 로열티를 통해 포르셰 911 스포츠카를 살 만큼 돈을 벌었고, 그 차를 타고 과속 및 무면허 운전으로 몇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다음 직업: 운전 학원 강사? 미안하지만 그냥 걷겠습니다.

3. 빌 게이츠, 반독점 재판의 증인석에 서다(1998년 8월 27일)

윈도우의 고질적인 문제는 메모리 관리인데, 빌 게이츠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정부 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재판에 사용된 빌 게이츠의 비디오 증언이 웹을 강타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6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14회), “모르겠습니다”(22회)라는 증언들은 명석하고 세부 사항 하나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인물이라는 빌 게이츠에 대한 정평을 무색하게 했다.

빌 게이츠는 미국 정부측 변호사 데이빗 보이스와 마주한 채 “관계”, “경쟁”과 같은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얼버무리면서 애보트와 코스텔로(역주: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콤비)의 꽁트인 “1루수는 누구냐(Who's on First)?”에 버금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말꼬리잡기로 일관했다.

빌 게이츠의 비디오 증언을 보면서 토마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3년 후 미국 연방 고등법원이 잭슨 판사의 판결을 뒤집으면서 결국 최후의 웃는 자는 빌 게이츠가 됐다.

다음 직업: 전문 증인? 이의 제기합니다.

4. 빌 게이츠: PC 월드 속지 모델(1987년 7월)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천만다행으로 누드 모델은 아니었다. 빌 게이츠는 즐겨 입는 후줄근한 스웨터가 아닌 감색 정장에 연한 자주색 셔츠,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 차림이었다.

PC 월드는 1987년 7월호에 당시 32세였던 소프트웨어 제왕의 인터뷰와 함께 속지로 이 사진을 넣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속지 모델 사진을 넣은 것은 이때가 PC 월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도 그땐 어리고 멋모르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다음 직업: 화보 모델? 눈 감고 살겠습니다.

5. 지존 억만장자의 탄생(1986년 3월 13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되던 날 빌 게이츠는 억만장자가 됐다(주식 공개 가격 기준으로 2억 3,400만 달러). 그러나 빌 게이츠는 1995년 7월 17일에 이르러서야 130억 달러 상당의 자산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했다.

이때부터 빌 게이츠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의 주식 가치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 돈이 대체 얼만큼 큰 금액인지 알아보기 위한 웹 사이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메일에 답변만 해도 빌 게이츠가 1,000달러를 준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돈을 쌓아두는 대신 윌리엄 H. 게이츠 3세 재단(이후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변경)을 설립해 다른 사람들은 입으로만 떠드는 일에 썼다.

버블 붕괴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다른 모든 기술주와 마찬가지로 폭락했고 빌 게이츠의 잔고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줄었다. 현재 빌 게이츠의 순 자산은 580억 달러로, 멕시코의 통신 사업자인 카를로스 슬림 헬루, 그리고 빌 게이츠와 브리지 게임을 즐기는 워렌 버핏에 이어 부자 서열 3위에 올라 있다.

다음 직업: 은퇴한 자선 사업가? 이 분야에선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2008.06.30

빌 게이츠에 대한 10가지 기억①

Dan Tynan | PCWorld
친근한 괴짜와 무서운 흡혈귀를 섞어놓은 듯한 인물인 빌 게이츠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했다. 샌님이면서 냉혹한, 훌륭한 업적과 오명을 동시에 짊어진 그는 디지털의 모든 분야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그런 빌 게이츠가 6월 27일부로 자선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이 기사에서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빌 게이츠의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사건을 추려보고, 각 기로에서 그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떤 직업이 어울렸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1. 윈도우95의 시동(1995년 8월 24일)

윈도우 95의 등장과 같은 제품 출시는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작년 아이폰의 등장을 둘러싼 그 들썩임도 윈도우 95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롤링 스톤즈의 “스타트 미 업”을 사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급한 사건은 윈도우95 출시에 따라 이루어진, 약 3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초대형 마케팅 공세의 시작에 불과했다.

엄청난 마케팅 계획에 따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체를 마이크로소프트를 상징하는 색으로 덧칠했고, 하늘에서 보이도록 영국의 축구 경기장들에 윈도우 95 로고를 그렸다. 워싱턴 레드몬드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윈도우 95 발표 당일 음식, 곡예사, 광대, 기구, 놀이기구, 서커스 등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는 빌 게이츠가 있었다. 푸른색 회사 셔츠 차림으로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한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어눌한 말투로 대본의 농담을 읽어댔다.

이날 빌 게이츠의 대사 중 최고는 “윈도우95는 토크쇼 진행자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요.”였다.

다행히 빌 게이츠는 아직 개그 분야로 진출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다음 직업 : 코미디언은 제발 참아주세요.

2. 각성, 중퇴, 코딩(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의 표지에 실린 MITS 알테어 8800 사진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하버드 대학 동창 폴 앨런에게서 이 잡지를 빌려 본 빌 게이츠는 MITS 사장 에드 로버츠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폴 앨런이 알테어용 베이직(BASIC)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물론 당시 두 사람은 단 한 줄의 코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로버츠가 관심을 나타내자 두 사람은 미친 듯이 8주 만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해 후반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앨버커키로 떠나 시간당 10달러의 보수를 받으며 로버츠 밑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마침내 그는 BASIC 로열티를 통해 포르셰 911 스포츠카를 살 만큼 돈을 벌었고, 그 차를 타고 과속 및 무면허 운전으로 몇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다음 직업: 운전 학원 강사? 미안하지만 그냥 걷겠습니다.

3. 빌 게이츠, 반독점 재판의 증인석에 서다(1998년 8월 27일)

윈도우의 고질적인 문제는 메모리 관리인데, 빌 게이츠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정부 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재판에 사용된 빌 게이츠의 비디오 증언이 웹을 강타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6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14회), “모르겠습니다”(22회)라는 증언들은 명석하고 세부 사항 하나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인물이라는 빌 게이츠에 대한 정평을 무색하게 했다.

빌 게이츠는 미국 정부측 변호사 데이빗 보이스와 마주한 채 “관계”, “경쟁”과 같은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얼버무리면서 애보트와 코스텔로(역주: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콤비)의 꽁트인 “1루수는 누구냐(Who's on First)?”에 버금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말꼬리잡기로 일관했다.

빌 게이츠의 비디오 증언을 보면서 토마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3년 후 미국 연방 고등법원이 잭슨 판사의 판결을 뒤집으면서 결국 최후의 웃는 자는 빌 게이츠가 됐다.

다음 직업: 전문 증인? 이의 제기합니다.

4. 빌 게이츠: PC 월드 속지 모델(1987년 7월)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천만다행으로 누드 모델은 아니었다. 빌 게이츠는 즐겨 입는 후줄근한 스웨터가 아닌 감색 정장에 연한 자주색 셔츠,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 차림이었다.

PC 월드는 1987년 7월호에 당시 32세였던 소프트웨어 제왕의 인터뷰와 함께 속지로 이 사진을 넣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속지 모델 사진을 넣은 것은 이때가 PC 월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도 그땐 어리고 멋모르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다음 직업: 화보 모델? 눈 감고 살겠습니다.

5. 지존 억만장자의 탄생(1986년 3월 13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되던 날 빌 게이츠는 억만장자가 됐다(주식 공개 가격 기준으로 2억 3,400만 달러). 그러나 빌 게이츠는 1995년 7월 17일에 이르러서야 130억 달러 상당의 자산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했다.

이때부터 빌 게이츠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의 주식 가치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 돈이 대체 얼만큼 큰 금액인지 알아보기 위한 웹 사이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메일에 답변만 해도 빌 게이츠가 1,000달러를 준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돈을 쌓아두는 대신 윌리엄 H. 게이츠 3세 재단(이후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변경)을 설립해 다른 사람들은 입으로만 떠드는 일에 썼다.

버블 붕괴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다른 모든 기술주와 마찬가지로 폭락했고 빌 게이츠의 잔고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줄었다. 현재 빌 게이츠의 순 자산은 580억 달러로, 멕시코의 통신 사업자인 카를로스 슬림 헬루, 그리고 빌 게이츠와 브리지 게임을 즐기는 워렌 버핏에 이어 부자 서열 3위에 올라 있다.

다음 직업: 은퇴한 자선 사업가? 이 분야에선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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